[신간]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

기사입력 2024.07.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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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쾌와 투병 사이에 존재하는 ‘회복사회’
    ‘이야기하기 방식’으로 우리 자신의 고통 이해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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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신문=주혜지 기자] “아픈 사람은 질병을 이야기로 만듦으로써 운명을 경험으로 전환시킨다”


    암을 겪은 사회학자가 이야기하는 ‘아픈 몸’


    이 책의 저자 아서 W. 프랭크(1946~ ) 사회학자는 몸의 사회학 분야, 특히 질병의 경험과 서사, 생명윤리, 임상윤리, 돌봄윤리에 대해 연구를 계속해 왔다. 1991년에 프랭크는 39세에 겪은 암과 심장질환 투병 경험을 담은 회고록을 출간했고, 몇 년 후 암 재발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불안과 공포를 겪고 치료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질병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 대해 숙고하게 되었다고 한다.


    몸의 윤리 : 이야기하기와 이야기듣기


    질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증언의 행위다. 이는 질병의 경험과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질병을 ‘극복’하였거나 질병으로부터 ‘생존’한 것 이상의 윤리적 무게를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질병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증인이다. 그들은 자신의 질병을 일차적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나아가 타인에게 증언해야 할 도덕적 책임을 짊어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증언을 들어줄 청자/독자의 존재다. 저자는 홀로코스트 증언을 예로 가져와 고통을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의 어려움을 논의한다. 


    질병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이야기를 듣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질병의 이야기는 단지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만의 몫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상처를 듣고자 하는 타자의 의지가 필요한 협업이다. 저자는 아픈 몸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기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타자와의 공감과 연대를 통해 타자를 치유할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책임의 윤리라고 말한다. 화자가 질병 이야기를 개인적 경험의 역사로서 증언하고, 청자가 그 증언을 받아들여 또 다른 타자에게 증언하는 과정을 통해, 아픈 몸이 하는 증언은 아픈 몸에서부터 시작하여 다른 아픈 몸으로 이어지는 윤리적 실천이 된다.


    당신도 회복사회(remission society)의 일원


    이 책에서 제시되는 주요 개념 중의 하나인 ‘회복사회’는 우리가 단순히 질병을 나와 무관한 것, 설령 나에게 오더라도 지나가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회복사회는 ‘완쾌’와 ‘투병’ 사이에 존재하며 양쪽 모두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을 집합적인 의미로 가리키는 용어다. 구체적으로 회복사회의 구성원들은, 질병을 앓았던 경험으로 인해 재발의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 당뇨병이나 알레르기 등으로 식이요법 등의 관리를 계속 해야 하는 사람들, 각종 인공기관과 함께 사는 사람들, 만성질환자, 장애인, 폭력과 중독으로부터 “회복 중인” 사람들, 그리고 이들의 가족들까지도 포함한다. 


    한국 사회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였고 젊은 층을 포함하여 만성질환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설령 질병에서 회복되었다고 하더라도 질병의 트라우마적 효과를 살아가는 내내 겪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본다면 살아가는 동안 회복사회에 단 한 번도 속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회복사회의 개념은 건강이 정상이고 질병이 이상이라는 위계적 이분법이 허구적이라는 것과 질병의 직·간접적 경험이 언제라도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아픈 몸은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


    질병의 경험이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부여되는 시련이 아니라 인간인 이상 언제든지 질병과 ‘함께’ 살아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아픈 사람이 자기 자신과 세계를 이전과는 다른 틀로 새롭게 인식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는 점도 받아들이게 된다. 질병을 앓고 있거나 앓았던 사람은 그 사람의 삶을 안내해 주던 지도와 나아갈 목적지를 상실하기에 새로운 지도와 목적지를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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