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의 한의학 <25>

기사입력 2023.11.0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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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의 기후위기IV
    섭씨 1.5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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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 교수

    경희대 기후-몸연구소, 한의대 의사학교실


     

    목표 수정, 기후위기 극복의 위기


    섭씨 1.5도 이하로 기온 상승을 제한하려는 목표가 폐기될 위험에 처해있다. 탄소 배출을 줄여 산업화 이후 치솟는 기온을 1.5도 아래로 묶어두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파리협정 이후 인류사회가 매진(?)하던 기후위기 대처의 목표가 수정되어야 한다는 연구들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앞 문장에 매진이라는 단어에 물음표를 붙였다. 그 말을 편하게 쓸 수 없는 이유 때문이다. 파리협정 이후로 1.5도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데는 매진을 하였다. 그리하여 기후위기 극복의 논의에서 1.5도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하지만 실제 1.5도 상승을 막으려는 인류사회의 실천에 대해서는 매진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불일치 속에서 기온 상승의 기울기를 꺽으려는 목표는 물 건너가고 있다.


    지난 연재 글에서 “기온중심주의”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기온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중요한 테마이지만, 기온 담론이 놓칠 수 있는 내용들을 환기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다. 무엇보다도 수치화된 기온은 기후위기의 연결성을 분절하는 효과가 있다. 어는점과 끓는점 사이를 100등분한 온도는 컨텍스트가 사라진, 산술적 구간이다. 그 100등분한 단위에서 하나 반이 1.5도다. 1.5도는 체감하기 쉽지 않다. 오늘 최고 기온이, 어제보다 1.5도 높다고 해도 우리는 그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없다. 1.5도 이하로의 기온 상승 제한 목표 달성이 멀어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1.5도가 체감하기 어렵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섭씨 1.5도는 엄청난 무게의 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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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섭씨 1.5도를 채우는 것들


    주방에서 물의 온도를 높일 때와는 달리, 지구 대기의 온도를 1.5도 올리는 데는 엄청난 물리적인 무게가 작용한다. 이 무게는 기온을 올리는 데 주된 역할을 하는 쓰레기만 살펴봐도 분명히 드러난다. 기온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산화탄소도 쓰레기다. 인류가 에너지를 얻기 위해 태운 탄화수소의 쓰레기다. 쓰레기는 “어떤 것의 생산량이 자연의 분해 능력을 웃돌 때” 발생하는 것이다1). 여기서 분해 능력은 분해흡수하는 자연의 능력을 말한다. 분해되면 흡수할 수 있고, 흡수할 수 있도록 분해한다. 인류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바다와 숲과 같은 지구의 분해흡수 장치의 능력을 초과하여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류세”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쓰레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플라스틱, 이산화탄소, 핵폐기물이2) 바다에, 대기에, 지층에 분해흡수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시대가 인류세다. 그 쓰레기들을 배출한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시대다.


    이 쓰레기들은 인류가 쓰고, 태우고, 폭발시킨 것들의 잔해다. 이 남은 것들의 물리적 무게만 해도 대단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행하는 이산화탄소 배출 보고서에 따르면3) 2022년 한 해 동안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368억 톤이다. 태우고 남은 것들이 배출되는 대기에는 산소도 있고 질소도 있지만, 이것은 이산화탄소만 모아서 무게를 측정한 경우다. 표준 온도와 기압에서 이 이산화탄소를 공간에 채운다면, 한 변이 1미터인 박스 113조 개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작년 한 해 대기에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무게는 그 자체로 무겁다. 이와 같이 산업화 이후 엄청나게 뿜어낸 이산화탄소의 무게를 지구의 분해흡수 능력은 감당할 수 없었다. 1.5도는 100등분된 온도기 구간에서 하나 반의 구간이지만 그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이 무겁다. 이산화탄소는 쓰고 남은 쓰레기다. 그 쓰레기에 연결된 석탄, 석유, 천연가스를 생각하면 그 무게는 우리가 아는 숫자 단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 어마어마한 중량에는 근대 이후 인류의 문화문명이 또한 연결되어 있다. 특히, 쓰고 버리는 문화가 주요하게 작용한다. 근대 이전에도 다양한 인류의 문화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쓰고 버리기에 여러 지역의 인류문화가 동의한 적은 없었다.


    기온의 상승은 근현대 인류문명 자체와 연결되어 있다.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는 상전벽해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초가, 기와집이 부서지고 고층 아파트가 올라간다. 모두 수제였던 생산품들이 공장에서 대량생산된다. 공장 건물 자체도 크고 육중하다. 과거에 전주나 안동에서 서울 가기는 많은 준비가 필요한 먼 길이었다. 이제 고속도로가 뚫리고, 고속기차가 질주한다. 한반도 내 뿐만 아니라, 비행기가 연결하는 세계는 그야말로 지구촌이다. 이 아파트와 공장과 비행기 자체가 무겁다. 그 무거운 것들을 올리고, 돌리고, 띄우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에너지를 엄청난 양의 탄화수소를 태우고 폭발시켜 얻었다.


    섭씨 1.5도는 간명한 수치이지만, 그만큼 상승하기까지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것들이 동반되어 있다. 그 무게의 반작용으로 1.5도가 올라갔다. 엄청난 무게의 쓰레기들이 있었고, 그 셀 수 없는 중량의 쓰레기를 만들기까지 인간들의 행위가 있었다. 대다수의 인류에게 버릴 결심을 하게 하는 생각의 방식이 그 쓰레기들을 가능하게 했다. 


    인류가 지구의 온도를 바꾸고, 지구사를 집필하는 역할을 할지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인류는 인류사만 저술하는 역사가였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사까지 손을 대고 있다4). 큰 획을 그어 인류세라는 시대가 탄생하였다. 인류세는 근현대문명이 쓰레기로 기록하는 시대다. 그 기록에 섭씨 1.5도 상승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지금 기입되려고 한다.


    무거운 1.5도


    기후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섭씨 1.5도 상승은 매우 무겁게 다가온다. 인류세는 “기후변화”의 의미가 중의적인 시대다. 기후는 기본적으로 변화한다. 대서(大暑)에서 대한(大寒)으로, 입동(入冬)에서 입하(入夏)로 그 기의 정황이 바뀐다. 그러므로 기후변화라는 말은 동의반복일 수 있다. 기후라는 말에 이미 변화의 의미가 담지 되어 있는데, 다시 변화를 붙이는 것은 중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의 기후변화는 중복의 혐의를 벗는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는, 본래 변화하는 기후의 마땅함을 벗어나는 변화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까를 걱정하는, 여름마다 기록 갱신이 일어나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한로(寒露, 10월 8일)가 지나고, 상강(霜降, 10월 23일)이 지나도 낮 기온이 20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여름 기후가 한없이 팽창하는, 경험하지 못한 변화이기 때문이다5). 


    인류세의 1.5도는 순환하는 기후의 마땅함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기온 상승의 기준이 되는 온도다. 그래서 기후변화의 티핑포인트로서 주목받아온 온도다. 인류는 두려운 갈림길에 직면해 있다. 한쪽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있고, 다른 한쪽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나락으로 이어진 길이다. 인간들이 투기하는 쓰레기가 인류를 후자의 길로 등떠밀고 있다.

     

    기후위기는 연결의 위기다. 단지 온도 구간의 하나 반이 아니라, 기온 상승은 지금의 현대문화문명 자체와 연결되어 있다. 지금의 상황은 고열 증상의 근본 원인이 장부에 있는 상황이다. 근원이 되는 근현대 인류문명의 쓰레기 생산, 투기(投棄) 문화에 진단과 변증의 시선이 가있어야 할 때이다. 장부의 문제가 심각한데, 그 증상의 하나로 드러나는 열만을 처치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 근본원인에 대한 심각한 논의와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다음 연재글 “연결의 기후위기 V”에서 계속).


     

    1) 후지하라 다쓰시(2022) 『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효를 생각한다』 참조. 

    2) 인류세는 아직 공식적 지질시대 명은 아니지만, 조만간 공식명으로 지정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인류세가 하나의 지질시대로 명명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되는 쓰레기로는 핵실험 후 자연으로 분해흡수되지 못하는 플로토늄이 대표적이다.

    3) International Energy Agency (2023) “CO² Emission 2022”

    4) 디페시 차크라바티(2023)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  참조.

    5) 2023년 11월 2일 서울의 최고 기온은 25.9도를 기록했다. 또 하나의 기록 갱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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