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결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순환신경내과 전임의
지난달 15일부터 19일까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제26회 세계신경학회(World Congress of Neurology·WCN)’에 포스터 발표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세계신경학회는 World Federation of Neurology에서 격년으로 주최하는 신경학 분야의 가장 큰 국제학술대회로, 지난 3년간의 팬데믹으로 모든 오프라인 학회가 중단됐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오프라인 학회가 재개되기 시작해 올해 본격적인 모든 학회의 re-opening이 진행됐다.
세계신경학회 역시 지난 2021년 학회가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형태로 개최됐으며 올해 4년 만에 다시 오프라인 학회가 온라인과 병행된 hybrid 형태로 다시 열리게 됐다. 필자의 전공 분야인 신경학에서 가장 큰 학회인 만큼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던 학회였는데, 이번에 포스터 발표가 채택돼 좋은 기회를 참여하게 됐다.
다양한 신경학 관련 연구성과 발표
학회는 △Scientific Session △Plenary Lecture △Teaching Course △Free Paper 등 여러 강연이 서로 다른 신경학 주제에 대해 9개의 강연장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주 강연장에서는 Scientific Session이 열렸는데, 강연자들의 발표 주제에 대한 연구 성과, 리뷰 및 최신 지견 업데이트가 주를 이뤘으며, 보조강의장에서 열린 Teaching Course는 각 주제에 대한 텍스트북 수준의 강의를 하는 방식이었다.
참여자들은 학회 일정표를 보며 원하는 주제의 강의를 찾아다니면서 들을 수 있었다. 강연은 주제별로 90분씩 3명의 연자가 25분 강의 후 15분간의 Q&A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 시간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Q&A 시간에는 질문자들이 줄을 서서 질문과 토론,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을 강연자에게 던졌고, 강연자는 매우 진지한 태도로 성의 있게 답변에 임했기 때문이었다. 신경학 첨단(尖端)의 장에서, 나름의 탑을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내가 아직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이며 갈 길이 먼지 다시 한번 겸손해지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강연을 들으며 인상적이었던 점은 강연자들의 의학에 대한 열린 사고였다. 많은 신경학 분야가 기존의 약물 치료가 한계를 갖거나 유의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강연자들의 다수는 여기에 솔직했으며, 때에 따라서는 기존의 약물 치료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비약물요법을 전문으로 하는 의학자도 있었고, 대안적 치료를 탐색하는 의사도 있었다. 예를 들면 치매의 비약물요법에 대해 강의한 Aida Gonzalez UCL 신경학연구소 박사는 치매는 약물을 사용한 ‘치료’의 영역이 아니며, 비약물요법을 사용한 ‘재활’에 의한 장애의 완화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역설했다.
편두통의 침 치료 가능성 ‘확인’
또한 침 치료나 herb요법을 강연 중 다루는 강연자도 있었다. Elizabeth Leroux 몬트리올 신경과 클리닉 의사는 편두통의 비용 효과적 치료에 대해 강연하던 중 침 치료에 대해 언급했는데, 침 치료는 편두통 치료에 기존 약물치료에 준하는, 혹은 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고, 또한 편두통 예방의 가능성을 갖고 있어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으나 현재까지의 근거는 질적 향상이 필요하며 또한 치료가 지속될수록 비용 부담이 존재한다고 했다. 침 치료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우리나라보다 훨씬 고비용인 캐나다 의료를 감안하면, 이 캐나다 신경과 의사는 침 치료의 편두통에 대한 치료적 가능성을 확인했고 근거의 질 향상을 촉구했다고 할 수 있다.
청혈단의 뇌졸중 재발 억제 포스터 발표
강연과 더불어 채택된 초록들의 포스터 발표가 큰 전시장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채택된 초록 수가 거의 1000개에 달해 포스터 발표가 이틀씩 두 번으로 나눠 진행될 정도였다. 포스터 발표 주제는 모든 신경학 분야에서 역학조사, 기초실험연구, 증례 보고, 임상연구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했다.
우리 교실에서 발표한 연구는 ‘Recur rence prevention effect of herbal prescription Chunghyuldan on ischemic stroke: A retrospective cohort study’였다. 허혈성 뇌졸중 예방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청혈단의 모든 TOAST(Trial of Org 10172 in Acute Stroke Treatment) 분류에 따른 청혈단의 허혈성 뇌졸중 재발 억제 효과를 후향적으로 분석한 연구로, 이 결과가 SCIE 학술지 Medicine지에 채택돼 출판될 예정이며, 이번 세계신경학회에서 선제적으로 성과를 공개했다. 쉽게 찾아보기 힘든 대체의학을 주제로 한 발표여서인지 관람자들의 이목을 끌었고, 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herbal prescription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청중도 있었다. 필자의 짧은 실력에 말하고자 하는 많은 내용이 잘 전달됐을지 염려가 됐지만, 이 넓은 신경학 바다에 우리의 한의학이 미약하지만 하나의 물결을 일으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맥길대 신경학연구소 참관
학회 일정이 종료돼 가는 18일 저녁에는 몬트리올에 소재한 The Neuro라고 불리는 맥길대학교의 신경학 연구소이자 신경과 병원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모든 병원 내부를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CT 및 MRI 촬영실과 이곳에서 Penfiled 박사가 간질 수술을 위해 직접 사람의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하며 반응을 관찰했던 수술실, 그리고 The Neuro 연구소에서 개발한 고해상 3D 디지털 뇌 해부 영상인 BigBrain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다. 특히 BigBrain은 뇌를 20μm(머리카락 굵기 정도) 단위로 얇게 슬라이스한 영상을 3D형태로 재구현한 것으로, 추후 상용화된다면 현재의 MRI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교한 진단영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됐고, 추후 우리 병원에서도 이러한 기기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한의학을 세계로
사실 세계신경학회에 참석하기 전 필자와 같은 전통의학 또는 대체의학 발표자나 강연자가 있기를 내심 기대했었다. 하지만 포스터 발표 중 그러한 주제를 담은 발표는 볼 수 없었고, 강연자 중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학회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추후 점차 더 많은 한의사 및 한의과학자들이 세계신경학회를 비롯한 여러 유수 해외학회에 강연자로 초청되고, 또 그들의 한의학 연구 성과를 발표하러 참여하는 날이 오기라는 희망을 가득 안으며 귀국했다.
마침 다음 세계신경학회는 2025년 서울에서 개최된다. 2025 WCN은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수많은 신경과학자 및 의사들에게 한국에는 한의학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수한 의학의 한 갈래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세계신경학회에 참여할 기회를 주시고 지원해 주신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순환신경내과학교실 교수님들께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많이 본 뉴스
- 1 한의사 레이저 의료기기 사용 ‘혐의 없음’
- 2 상속세 신고는 어떻게?
- 3 2025년도 서울시 한의약 사업 예산 ‘17억원’ 확보
- 4 “파킨슨병 한의치료의 과학적 근거 및 새로운 접근방식 제시”
- 5 성남시의료원, ‘한의과 운영 재개’ 약속…“내년 상반기 충원”
- 6 원광대 한방병원, 일원통합의학과 신설…통합의료 선도 나선다
- 7 한의약 기반 줄기세포 활성 ‘재생약침’ 개발
- 8 한의협, ‘제1회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자율규제 TF’ 개최
- 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한의진료로 위로와 치유의 손길
- 10 “통합의학과 첨단 기술로 도약하는 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