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약으로 중증 동상 치료 가능…부작용도 낮아”

기사입력 2023.09.1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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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헌주 원장, 故김홍빈 대장 등 동상환자 치료하며 한의치료 효과 입증
    중증 동상에 대한 한의치료 논문, SCI(E) 저널 ‘EXPLORE’에 게재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SCI(E) 의학저널 EXPLORE(IF=2.4)에 게재된 ‘중증 동상에서 절단을 방지하고 조직 재생을 촉진하는 침술과 한약치료’라는 제하의 논문 저자 중 한 명인 박헌주 광주중앙한의원장을 만나 소감과 치료 진행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박헌주 원장은 히말라야를 5차례 등반해 그중 에베레스트(8850m)와 초오유(8201m) 정상에 오르기도 한 산악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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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동상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한의대 본과 4학년 때 히말라야에서 열 발가락에 심각한 동상에 걸린 후배 2명의 동상 치료과정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모두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치료받다 절단 결정이 내려지자 그 중 1명은 절단을 거부하고 무면허 시설에서 치료했다.

     

    매일 동상 부위를 식염수로 세척하고 고압산소치료, 항생제 소독 및 드레싱이 진행됐다. 병원에서는 동상을 염증으로 보고 감염 부위 확산을 차단하는 위주의 처치를 하고 있는 반면, 무면허 시설에서는 새살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며 피부의 자연고사법을 채택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경중의 차이는 있었지만 병원에 있었던 대원은 예정대로 발가락 10개를 통째로 절단하고 피부를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았는데, 무면허 치료를 선택한 대원의 경우 병원 진단보다 발가락 손실이 적었으며 피부 이식도 하지 않았다. 이후 해당 대원의 권유로 여러 명의 산악인들이 대학병원 대신 무면허 의료시술을 선택하는 아이러니가 이어졌다. 당시 그 시설에서 했던 치료 중 침술치료가 있는 걸 보면서 큰 동기부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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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중증동상을 치료한 한의사로 알려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장애인 세계 최초로 8000m 14좌를 완등하는 등 세기적 위업을 달성해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 헌액된 故김홍빈 대장이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다. 2010년 마나슬루 정상 등정 과정에서 코와 귀에 심각한 동상에 걸린 김 대장은 성형외과에서 코와 귀를 절단해야 하고, 어쩌면 고글을 착용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이미 열 손가락을 동상으로 잃은 경력이 있는 데다 고글을 착용하지 못하면 등반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어 김 대장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당시 초짜 한의사인 저를 찾았다.

     

    이후 한의치료 전 과정 동안 일체의 양방치료는 하지 않고 한약과 침, 뜸 그리고 한약 연고로 일관되게 치료를 진행했다. 53일만에 거의 기적적으로 코와 귀가 대부분 회복된 것은 김 대장의 저에 대한 믿음과 한의치료에 대한 저의 확신 때문이었다. 이후 김 대장은 한의약 전도사가 돼 히말라야에서 동상에 걸린 산악인들을 저희 한의원에 소개하고, 이곳에서 치료한 환자가 또다시 새로운 동상환자를 소개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Q. 동상 치료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지난 10여 년간 중증 동상환자를 치료했는데 너무나 힘들었다. 한 환자에게 근 2∼4시간 동안 매달리다 보면 한의원이 마비되곤 했다. 또 동상 부위가 괴사되면서 생기는 고름 등으로 발생하는 악취는 상상 이상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염증이 극렬해지는 단계가 되면 통증으로 환자의 고통도 심해지고 염증성 부종이 손과 발을 지나 팔다리까지 확산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었다. 봉와직염이나 골수염 2차 감염 등으로 발전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며칠간 밤잠을 설치는 경우도 많았다.


    Q. 해외저널에 논문을 기고하게 된 계기는?

     

    치료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감당해야 할 무게가 너무 커서 몇 년 전부터 치료를 중단키로 했다. 사진을 전송하며 꼭 치료받고 싶다는 환자를 이제 동상 치료 안 한다며 병원으로 가시라고 했다. 막무가내로 전 가족이 동원돼 한의원으로 밀어닥치며 울면서 하소연하는 경우 어쩔 수 없이 치료했다.

     

    그러던 차에 경희대 이상훈 교수가 저의 동상 치료기를 보고 미국에 논문으로 게재해 보자는 제안을 했다. 치험례를 널리 알려 한의치료의 우수성을 홍보하자는 취지였다. 이번 논문은 전적으로 이 교수님과 연구원으로 계셨던 하서정 박사님의 공이 컸다.

     

    사실 그동안 너무 지쳐 동상 치료는 포기상태인 데다 해외저널에 논문 게재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고 게재할 실력도 안 됐다. 지난해 10월부터 두 분과 함께 팀을 꾸리고 제가 치료한 중증동상 환자 중 8케이스를 가지고 작업을 진행했다.

     

    수백여 장에 이르는 치료사진과 날짜별 진료일지를 보내는데 그걸 분석하고 정리하고 편집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았을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Q. 괴사성 동상 치료과정은?

     기본적으로 식염수 세척, 자락사혈, 자침, 직접구, 연고도포, 습윤드레싱 그리고 한약처방이다. 자락사혈은 종창, 부종, 울혈 등의 상황에 따라 시술 여부를 결정하고 나머지는 거의 루틴이다. 동상 초기와 경계 부위가 명확해지면서 울혈이 심할 때 사혈이 아주 유효하다. 경계선상의 정상 부위만 종창이 심해지면 괴사 부위로 혈류순환이 안되기 때문이다. 자침은 경락유주에 따른 침과 수상 부위 경계 주위로 산침한다.

     

    직접구도 아주 중요한데 미립대 크기로 괴사 부위의 염증반응을 도모하기 위해 3∼5장 화상을 입힐 정도로 시술한다. 검은색으로 변해 조직이 위축되고 냉기가 도는 경우 직접구로 해당 부위에 인위적으로 화상을 입힌다. 그 부분에서 고름과 진물이 발생하면 좋은 징조로 판단한다. 보통 유침은 40분 이상이다. 마지막으로 당귀를 주재료로 한 한의약 연고를 두텁게 습윤드레싱한다. 이 과정이 보통 2시간 정도 소요되며 급성기 집중치료기 때는 1일 2회 치료하기 때문에 하루 4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한약은 환자상태에 따라 당귀사역가오수유 생강탕을 기본방으로 십전대보탕, 계지사물탕, 계강양위탕, 보중익기탕 등 기혈을 보하는 처방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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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환자들의 반응은?

     

    수년 전까지는 환자들이 귀국 직후 양방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다 절단 결정이 내려지면 지인들의 소개로 한의원을 찾았다. 대부분 ‘대학병원 화상전문병원에서도 치료 못하는 걸 설마 한의원에서 할 수 있겠어?’라고 반신반의하며 방문한다. 어차피 절단한다니까 침도 한번 맞아보자 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도 놀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는 게 눈에 보이면 한의치료를 신뢰하게 된다. 결국 절단 예정 부위보다 반마디에서 2마디 또는 완벽히 복원되는 결과에 놀라워하며 한의약 마니아가 된다.

     

    환자들은 대부분 서울, 경기, 대구, 부산 등 타 지역 환자들이다. 수도권 환자들은 한의원에 입원실이 없어 인근에 1∼2달 정도 달방을 잡아놓고 치료한다.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부작용과 후유증이 적고, 비용도 비교적 저렴하면서 탁월한 치료효과에 만족해 한다.

     

    Q. 괴사성 동상의 한의학적 치료원리와 장점은?

     

    그동안 진행된 양방의 중증동상 치료는 조직재생을 촉진하기보다는 염증의 확산 차단, 감염의 방지가 주목적인 듯했으며 많은 부분 절단수술로 귀결됐다.

     

    동상 초기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표피의 보존이다. 거대한 물집이 생겼더라도 표피를 걷어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병원을 거쳐서 온 환자들은 대부분 수포가 발생한 표피를 걷어내고 진물을 다 닦아내 버리고 소독하고 내원한다. 이럴 경우 나무의 껍질을 벗겨버리는 것처럼 피부는 금세 말라비틀어져 버리며 괴사가 급속히 진행된다.

     

    저는 그 대신 병소 부위를 일부러 자극해 염증이 더 극렬해지게 한다. 한의학의 활성화 요법이다. 그래서 직접구의 경우 아예 화상을 입힐 정도로 한다. 자락사혈도 막힌 물꼬를 터주고 괴사처를 활성화하는 목적으로 십선 십정혈과 울혈처에서 집중적이고 과감하게 한다. 또 연고로 습윤드레싱을 진행해 병소에서 진물이나 고름이 발생한다. 한의치료는 침, 뜸, 한약, 사혈요법 등이 한데 어우러져 괴사 부위의 재생을 촉진하고 조직을 복원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또한 괴사 부위는 자연탈락되며 기존 피부상태 그대로 아물기 때문에 절단에 비해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적다. 피부이식에서 오는 이질감이나 감각기능 장애도 최소화한다. 물론 절단수술에서 오는 트라우마와 경제적 손실도 줄일 수 있다. 자연탈락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치료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단점은 있다. 히말라야 8000m 14좌를 완등한 김미곤 대장 등 저희 한의원에서 동상을 치료한 산악인들은 이후에도 별다른 후유증 없이 히말라야 등지에서 왕성하게 산악활동을 펼치고 있다.

     

    Q.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한의사로서는 동상과 화상 등 각종 염증성 질환에 한의치료가 패러다임의 작은 변화라도 가져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염증 제거와 감염 예방이라는 목적 아래 표피를 걷어내고 소독하고 절단하고 피부이식하는 현재의 치료형태에 대해 한번 되돌아봤으면 한다. 한의치료가 피부조직을 재생, 복원하는데 효과가 높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동상은 물론 화상 욕창 등 각종 염증성 질환에 피부조직을 재생하는데 효과가 보고되고 있는 한의치료를 적극 활용하면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최소화해 국민건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증례보고는 한의학적 동상 치료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한 것으로서 향후 이에 대한 후속 연구 및 지원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개인적 소망으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8000m 급 히말라야 정상에 도전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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