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뿐만 아니라 한의학의 길은 다양하다”
김민준 동국대학교 한의학과 3학년
[편집자주]본란에서는 전국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학생회연합 소속 학생들에게 학업 및 대학 생활의 이야기를 듣는 ‘한의대에 안부를 묻다’를 게재한다.
경혈학 연구실에 대한 관심
경주에서 한의대 생활을 할 때만 해도 연구를 하거나 논문을 쓰는 것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고, 관련해서 사실 잘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랬던 필자가 연구실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일산에 올라와서부터다. 경주에서 한의대 3년의 생활을 마치고 일산에 올라와서 방을 구하기 위해 우연히 친한 선배 집에서 하루 자게 됐다.
그 당시 일산에 올라왔으니 스스로 ‘이제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자’며 이런저런 활동을 찾아봤었고, 특히 ‘연구’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선배가 경혈학 연구교실에서 활동 중이라 저녁 내내 연구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떤 연구를 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고, 교수님에 대해서도 아예 몰랐으며 당연히 연구실 분위기도 알지 못했다. 궁금한 것이 많았기에 연구실에 관한 이야기를 몇 시간에 걸쳐 들었다. 그 선배는 컴퓨터 책상 앞에 앉은 채로 논문을 보면서 얘기를 했는데, 영어로 된 논문을 술술 읽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그 선배에게 들었던 내용을 요약하자면 ‘정말 친절하고 재밌는 교수님과 즐거운 연구실 분위기, 그리고 연구할 때만큼은 모두 진심인 곳’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혈학교실은 실험 보조 위주로 하는 경주 연구 장학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행히도 필자는 평소 침에 관심이 있었기에, ‘경혈학’이라는 교실이 친숙하게 다가왔고 그렇게 선배의 조언을 받은 채로 연구실에 지원하게 됐다.
학부생 연구원으로서의 첫 과제
간략한 면담을 거치고 연구실의 일원이 됐다. 김승남 교수님께서 읽어보라고 주신 논문들이 학기 중의 첫 과제였다. 평소 영어를 싫어하던 필자는 수능을 마친 뒤 영어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을 가진 채로 살고 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연구를 하거나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른 논문들을 많이 읽어봐야 하는데, 당시에는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영어 자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논문 읽기는 매우 어려웠고, 나름 한 줄씩 해석하면서 키워드를 정리해 봤지만,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 수업이 끝나고 저녁에 집에 와서 논문을 읽었는데, 논문 한 편을 읽는데 최소 2∼3일, 많게는 5일까지 걸렸다.
그런데도 이왕 시작한 일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논문에 쓰인 용어들과 친숙해지는 시간을 가졌고, 지금 생각해 보면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물론 교수님께서 주신 논문들을 읽어보긴 했지만 어려워서 읽는데 의욕이 점점 떨어지고 당장 필자가 할 수 있는 주제가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으며 의사소통을 중요시하는 교수님과는 다르게 필자는 평소 메일을 잘 보지 않았기에 많이 잘릴 뻔 했었다.
첫 방학
학부생 연구원으로서 첫 방학을 맞이하고 거의 방학 내내 등교하면서 노트북을 켰다. 일단 연구에 대해 잘 모르기에 가서 오래 앉아있기라도 하자는 생각에 아침부터 등교해서 저녁까지 내내 학교에 있었다. 교수님과의 오랜 상담 끝에 Review 논문을 써보기로 했으며, 그 주제는 평소 필자가 관심이 있던 소화계통 질환에 대해 쓰기로 했다.
처음에는 막막해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경혈학교실에서 선배들이 썼던 논문을 열심히 읽어봤다. 물론 주제는 달랐으나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 등을 공부할 수 있었다. 한 주제에 대해 그렇게 많은 논문이 있는지 몰랐고, 필자가 생각한 주제와 맞지 않는 논문들을 열심히 제외하는 데에만 며칠이 걸렸던 것 같다.
여름방학 때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Quality assessment’를 작성하기 위해 논문들을 세심하게 읽어본 것이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서 논문들을 평가하는데, 용어도 낯설고 기준에 따라 논문을 읽기 위해선 하나하나 자세히 읽어봐야 해서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렸었다. 이때가 방학 때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경혈학교실만의 분위기가 논문 작성을 하는데 지치지 않도록 큰 도움을 줬다.
연구실에 계신 교수님들과 고희재 박사님, 이세리 대학원생의 논문에 대한 아낌없는 조언 및 격려 덕분에 끝까지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추가로 이런 조언과 격려 외에도 방학 때 거의 매일 등교하면서 이쪽 분야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듣다 보니 연구실에서는 무엇을 하고 어떤 실험을 하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고, 평소 한의대생들만 만나다 보니 세상을 좁게 봤었다는 반성도 했었다.
논문의 완성
2학기엔 크게 활동하지 않고, 겨울방학이 돼서 활동을 재개했다. 겨울부터 논문 작성을 시작했는데, 처음 논문을 써서 그런지 상당히 어려웠다. 일반적인 영어 문장이 아니라 논문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를 써야 하는 것에 괴리감이 컸으며, 글을 쓰는 행위가 오랜만이라 어색했다. 완성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을 때마다 오히려 교수님과의 면담을 통해 수정할 것은 늘어갔다. 나름으로 열심히 수정했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진전이 없어서 이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이세리 대학원생과의 회의를 통해 논문을 차차 완성할 수 있었다.
이렇듯 혼자만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었다고 생각하며,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호기심과 새로운 경험을 위해 연구를 시작했고 중간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었으나 완성된 논문을 보니 보람이 있었다. 단순히 논문을 끝냈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인가 맡은 일을 꾸준히 해서 성공했다는 것에 뿌듯했다.
경혈학 연구교실
동국대는 학부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연구프로그램이 잘 짜여져 있으며, 특히 경혈학 연구교실은 자율성을 중요시하는 연구실 생활이니만큼 방학 때 각자 시간 맞춰 등교해 자신이 원하는 주제와 관련 논문을 찾고, 주제를 깊이 생각해 보며 교수님과 의사소통을 통해 연구하는 곳이다. 단순히 논문을 검색하는 능력이 높아지고 잘 읽게 되는 정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구활동을 통해 성실함과 책임감을 기를 수 있었고 다양한 각도로 생각할 수 있던 경험이었다.
마치며
보통 한의학도들에게는 학부생 연구원 혹은 연구장학과 같은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며 필자 또한 그랬었다. 게다가 한의대생은 그 미래를 한의사라는 하나의 길로 한정 지어 생각하기 쉽다. 물론 한의학 공부도 중요하지만, 공부는 학생 때 말고도 쉽게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뿐만 아니라 한의학의 길은 다양하다.
한의대생에게 당연히 한의대를 왔으니 한의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만 하지 말고 연구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활동을 접해보면서 안목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필자도 아직 한의학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소중한 경험을 같은 한의대생들에게 알림으로써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가 있을 수 있으며 일단 도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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