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돌아오지 않는 계절
다시 여름이 되었다. 언제나 돌아오는 여름이지만, 이 계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바뀌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봄-여름-가을-겨울-봄...의 순환하는 흐름으로서의 계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금같이 새로운 여름이 돌아오면, 평년 같은 여름을 예상하기보다는, 돌출적인 여름을 염려한다. ‘올해는 얼마나 더울 것인가’, ‘가장 더운 여름 기록을 이번 여름이 갱신할 것인가’ 등 평년 같지 않은 여름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 여름의 길목에서 무성하다.
실제로 돌출적인 올해 여름은 현재 진행형이다. 가까운 중국 북경은 가장 더운 6월을 맞고 있다. 한 달 중 최고기온이 35도를 상회하는 날짜가 보름이나 되는 기록적인 6월 폭염을 경험하였다. 미국 남부의 주들도 혹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체감온도가 39도에서 51도 사이에 해당하여 위험단계의 경보가 텍사스, 루이지에나, 미시시피, 알라바마, 테네시, 조지아, 플로리다, 알칸소, 캘리포니아, 아리조나 등 동서를 불문하고 미국 남부의 거의 모든 주에서 발효되었다. 문제는 돌출적 여름에 대한 염려가 올 여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평생 동안, 더 더운 여름을 염려하는 시간만 앞으로 남아 있을 확률이 높다.
돌아보면 이제 순조로운 흐름을 가진 것은 이 세계에 남아 있지 않는 것 같다. 예측 불가능한 경제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동·서, 남·북, 여·야의 대결 구도 속 정치적 불안정도 일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묵묵히 순환하는 계절과 기후가 있었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 이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지는 형국이다. 봄꽃들이 느닷없이 피고, 환절기가 봄 세 달을 장악한 상황에서, 마른장마와 기록갱신의 고온의 여름에서, 비빌 언덕이 허물어져 버린 느낌을 받는다. 때 아닌 가을장마가 맑아야 할 하늘을 뒤덮고 있을 때, 봄기운과 강추위가 시소를 타며 겨울이 지나갈 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는 것들이 사라져버린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여 이 위기의 시대를 살아갈 것인가?
지구인류학과 몸의 기후학
지난달 28일부터 대전 카이스트와 기초과학연구원에서 열린 동아시아환경사(East Asian Environmental History) 학회에서는 새로운 용어와 개념들이 논의되고 있었다. 전에 없던 용어들은, 지금의 상황이 인류가 아직 경험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상황임을 말하고 있었다. 계절이 순환하지 않고, 돌아올 그 무엇이 다시 오지 않는다면 새로운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학회 3일째 기조강연을 맡은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의 위르겐 랜 교수는, 인류학을 전공하는 필자도 들어보지 못한 “Geoanthropology”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하였다. “지구인류학”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Geoanthropology는 그가 연구소장으로 있는 연구소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제 인간에 대한 연구와 지구에 대한 연구를 따로 하는 시기는 지났다는 것을 랜 교수는 강조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무엇을 기대할 수 없는 시대는 기존의 연구 주제를 넘어서는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다. 막스프랑크 지구인류학연구소에서는 지구와 인류를 아우르는 학제 간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동안 지구시스템과학(Earth System Science, ESS)은 기후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학제적 연구로 자리를 잡았다. 시스템의 관점에서 지구기후현상을 바라본다. 그 시스템에 사람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에 더해서 지구인류학은 기후현상에 있어 인간 활동과 인간의 기술의 역할을 강조하며, 지구와의 연결성(Human-Earth System) 속에서 바라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지구는 기온이 상승하고, 상승한 기온이 다시 인간에 영향을 미치는 연결고리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려는 관점이 지구인류학이라는 용어에는 포함되어 있다.
본 연재 글에서 필자는 최근 “몸의 기후학”이라는 제목 아래 몇 번의 글을 쓰고 있다. 몸의 기후학도 전에 없던 용어이지만, 지금 요구되고 있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기후변화는 몸과 기후의 밀접한 연관을 드러내게 한다. 이것은 지구와 인류의 관계가 전에 없이 드러나는 상황과 유사하다. 그리하여 지구인류학이라고 하는 몇 년 전만 해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이 제시되는 상황과 맞닿아있다.
몸의 기후학은 몸과 기후의 관계를 다시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기후 따로, 몸 따로의 논의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동아시아의학에서 풍한서습조화가 몸 밖에도 사용되고 몸 안에도 사용되는 용어라는 것은 몸의 기후학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특히 돌아오지 않는 계절이 된 돌출적 여름이 인류의 앞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몸의 기후학 관련 논의는 더욱 요구되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서병(暑病)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을 지난 연재 글에서 제시한 바 있다(이전 연재글 <인류세의 한의학> 19, 20. “몸의 기후학” III, Ⅳ 참조). 서병의 문제가 새롭게 제기될 앞으로의 기후위기시대에, 몸과 기후의 적극적 관계의 관점에서의 논의는 크게 요구되고 있다.
그러한 논의가 더 많은 연구와, 임상과 연결되어야 하며, 관련 교육 또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건강 문제는 단지 서병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본격적 여름을 맞아 서병과 관련된 이슈들을 이번 지면에서는 언급하고자 한다.
동아시아의학에서 서병에 대한 논의가 체계적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은 기후위기 시대에 커다란 자산이다. 서양의학에서도 최근 서병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다.
앞으로의 서병이 과거의 서병과 다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활성화하고, 그와 연결하여 보다 심도 있는 논의와 연구를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서병(暑病)에 대한 본초로 알려져 있는 향유(香薷)에 대한 본초학적 연구도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의 미증유의 혹서 상황에서의 향유의 대처 가능성에 대해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내경(內經)』의 서병에 대한 언급에 있는 정신과질환과 관계된 부분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상한론(傷寒論)』에서도 단지 외감을 넘어, 관련 정신과질환의 논의가 있는 것과 같이, 서병도 관련된 보다 다양한 문제에 대한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경』은 말하고 있다. 『내경』에는 “因於暑汗煩則喘渴靜則多言”이라는 문장이 있다. 서병에 감촉되어 생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적 문제(다언(多言)과 같은)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문장이 「생기통천론(生氣通天論)」에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몸의 생기는 하늘과 통한다. 몸의 기는 몸 밖의 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몸의 기후학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장기간의 혹서를 위한 한의학 네트워크
연구, 교육, 임상과 함께 한의사협회 등의 의료단체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처로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적극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서병의 논의가 적극적으로 진행된다고 하더라고, 그것이 실제 서병을 앓는 (혹은, 앓을) 사람들과 만나지 못한다면 무의미하다. 미증유의 고온의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때 한의학은 어떤 대처를 강구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예를 들면, 서병에 특히 노출되기 쉬운 취약지역의 주민들에게 통치방 형식의 처방(생맥산과 같은 처방)을 나누어주는 활동도 한의사협회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방문진료에 대한 한의계의 관심과도 연결해서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협회 중앙회 아래, 각 시도군의 지부, 분회 조직을 통해 체계적으로 서병에 대한 예방 및 대처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활동을 통해 확보된 데이터는 다시 한의학의 기후위기 대처에 대한 연구로 선순환 될 수 있을 것이다.
기후문제가 건강문제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의료가 어떻게 건강문제에 대처하는가라는 문제는 앞으로 의료들의 존재 방식과 관련하여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한의학은 무엇을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논의와 실천이 앞으로의 기후위기 시대에, 한의학의 존재 이유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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