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여의도 책방-39

기사입력 2023.04.20 15:22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한의사는 의사인가? 치유자인가? 시술자인가?

    신미숙4214_web.jpg


    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5월 초 토론회 참석차 국회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반가운 동기의 연락. 그는 바로 교내외의 거의 모든 궂은 일을 도맡아가며 모교 병원을 20년째 믿음직스럽게 지키고 있는 한방부인소아과 양 교수다. ‘저출생 극복을 위한 국가 난임치료 지원 활성화 방안’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토론회의 주최자는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이다. 출산 의지가 높은 난임부부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활성화함으로써 저출생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대표적 난임치료법 중에서 시험관 아기 시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반면 한의 난임치료는 지자체별 지원에 그치는 상황이라 보다 국가적인 차원으로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의 난임치료에 대한 예산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여 건보를 확대 적용하는 대책의 필요성을 피력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토론회의 첫번째 발제자로 나선 양 교수는 ‘지자체 한의난임치료 성과와 제도적 한계’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7월 전남도청 김대중강당에서 열린 ‘제11회 인구의날 기념행사’에서 양 교수는 전라남도한의사회 한의난임치료 지원사업단장으로서 도내 난임여성 130명 중에서 16명에게 출산의 기쁨을 안기고 최대 현안인 인구 감소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도지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난임 관련 한의약 지원사업에 관해서는 2019년부터(『의협, 서울시 한방난임치료 지원사업 중단하라』, 쿠키뉴스, 조상우 기자, 2019.12.18.) 2022년까지도 (『의-한, 국시원 한방물리요법 이어 ‘한방난임사업’으로 갈등 번져』,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2022.11.29. 『한의약 난임치료 국가 지원놓고 의-한 갈등』, 메디포뉴스, 손락훈 기자, 2022.11.30.) 비과학적인 한의학과 위험한 한약처방에 혈세를 쏟아부어서야 되겠느냐는 의협의 우려와 경고가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지자체와 지역단위별 한의사회의 협력으로 난임부부 한의치료 지원사업 성과 보고대회는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진주시한의사회, 난임 한의치료 역량 강화-대상자 발굴 확대』 뉴스경남, 유용식 기자, 2023.01.20.). 


    저출생 해법으로서의 한의 난임치료 사업은?


    “한방난임치료에 대한 임상연구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했다는 한의계의 주장과 달리 이 연구는 다수의 전문가가 지적했듯이 단순한 증례집적에 불과하다. 객관적으로 근거의 수준이 낮은 연구이며 여과되지 않은 정보에 불과하다. 7주기라는 기간 동안 임신율을 1주기 동안 인공수정 임신율과 단순비교해 놓고 비슷한 효과를 보였다고 주장했다지만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 연구 디자인으로는 자연임신인지, 한방난임치료의 효과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약 성분이 무엇인지, 침 치료가 어떤 영향을 미쳐 임신에 도움되는지 과학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고서에 나와 있고 오랫동안 사용해왔으면 안전하고 효과가 있는 것인가”, “정부가 혈세를 투입하고도 전세계적인 망신을 자초한 한방난임연구의 일련의 과정은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전통 의술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위해를 끼치고 국민에게 사회적 비용을 부담시키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난임을 포함한 한방부인과학의 비전문가인 나로서는 위와 같은 의협의 일관된 비판에 하나하나 대적할 논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지자체의 대민복지 혹은 포퓰리즘에 편승한 정책에 한의협이 곁불을 쬐는 것이라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02.jpg

     

    『지난해 합계출산율 0.78명.. 역대 최저』(mbc뉴스, 2023.02.22.), 『합계출산율 0.78명, 20년 뒤 대한민국 존속 가능할까』(jtbc뉴스, 2023.02.22.), 『합계출산율 0.78명에 화들짝 놀란 언론』(미디어오늘, 2023.02.23.) 등 지난 2월 말, 280조를 쏟아붓고도 0.78명에 머무른 대한민국 합계출산율 관련 뉴스들이 모든 미디어를 장식했다. 출산을 아예 하지 않는 절망적인 이 시대를 힘들게 걸어가고 있을 난임부부들을 떠올려보았다. 체외수정-배아이식(IVF-ET: In Vitro Fertilization-Embryo Transfer)의 반복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수년이 다 되도록 임신이 되지 않아 고통스런 날들을 보내고 있는 환자들을 진료실에서 적잖게 만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더 일찍 다른 방법들도 시도해 볼걸 그랬다는 후회 섞인 한숨에 어떤 위로를 보태기조차 무척 조심스러웠다. 


    출산 의지가 높은 난임부부야말로 가까운 가족들로부터는 물론이고 직장에서든 지역에서든 그들이 속한 모든 커뮤니티에서 보호받고 존중받고 지원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합리적인 대안 중의 하나로서 한의학적 치료가 보다 설득력을 갖추려면 어떤 요건들이 더 필요할까? 소소한 효과를 떠나, 환자들을 상대로 그것도 난임 여성들을 상대로 하는 이러한 전국적인 건강사업이 윤리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혹은 의학적인 기준에서 유효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도전적인 질문들은 계속될 것이다. 5월 초에 열리게 될 이번 토론회가 부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내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국회에 근무하게 되면 도서관도 자주 가고 관심있는 주제들에 관련된 의원회관의 각종 세미나에도 가끔은 참석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진료시간 내내 잠시도 쉴 틈이 없는 데다가 점심시간에도 출근 직전 혹은 직후 그리고 퇴근 직전에 이르러서도 갑자기 방문하시는 이런저런 분들 덕분에 진료실을 떠나 도서관에 가는 것은 큰 맘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도서관이 가까이 있어서 가장 좋은 건 웬만한 신간, 구간, 희귀본, 절판본도 국회에는 한두권쯤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소장하고 싶은 책은 바로바로 구입하는 편이라 일단 갖춰 두고 싶은 허황된 전시욕을 주체하지 못할 경우 서평이나 책표지, 저자 이름만 보고 홀랑 구입했다가 가슴이 쓰려오는 후회감도 자주 맛보았다. 그 후론 ‘서두르지 말자, 내가 안 사줘도 저 사람 책 사줄 사람들 많다’라고 스스로를 잠시 억누른 후 일단 도서관에서 책을 휘리릭 스킵리딩 해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책은 차분히 구입해도 절대로 늦지 않았고 그 판단이 대개 옳았다. 


    캉길렘, 의사가 아닌 철학자로서 의학에 접근 


    01.jpg

    『의대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2023년 2월)라는 신간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서 도서관 3층 사회과학자료실에 들렀다. 성형외과전문의(경영학박사 겸 사회복지사)의 한국 성형외과 업계에 대한 고백록, 현재 의료계의 현황에 대한 비판 그리고 사관학교 의대의 필요성에 대하여 본인의 뚜렷한 주관을 간략하게 기록해 놓은 책이었다. 

     

    따로 구입은 안 해도 될 책임을 확인하고 몇 가지만 메모하고 책을 원래 있던 곳에 두고 나오려는데『캉길렘의 의학론』이라는 노란색 표지의 얇은 책이 눈에 띄었다. 목차를 보니 “치유에 대한 교육은 가능한가?”라는 챕터가 있었고 잠시 서서 읽을 수 있는 쉬운 내용이 아니어서 진료실로 복귀한 후 “조르주 캉길렘”으로 검색된 자료들을 살펴보았다.『캉길렘의 의학론』(2022년 7월)과『생명에 대한 인식』(2020년 6월) 그리고 그의 제자가 쓴 그의 평전『조르주 캉길렘』(2023년 3월)까지 동시에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솟구쳤고 며칠 후 받아든 책들에 아주 잠시 행복했지만 세 권 모두, 상당히 어려운 책들이었다.  


    조르주 캉길렘(Georges Canguilhem)은 프랑스의 의사이자 과학철학자이다. 1943년 의학박사 학위논문이자 대표저서인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에서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은 단지 생리학과 병리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존재와 무, 선과 악의 문제와 같은 서양의 전통적인 형이상학과 맞닿아 있다”고 하며 “정상적인지 아닌지의 경계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개인이 판단해야 하는 부분도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캉길렘은 의학 교육에 의해 형성된 접근 방식을 발전시킨 20세기의 몇 안 되는 철학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실용적이고 엄격한 과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제자이며 미셸 푸코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 치유는 환자와 의사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간주된다. 치유는 환자가 의사에게 기대하는 것이지만, 환자가 항상 얻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지식의 산물인 의사의 능력에 근거하여 가지는 희망과, 의사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인정해야 하는 한계에 대한 인식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바로 이 점이 의학적 사유의 모든 구체적 대상 중 의사들이 가장 다루지 않은 문제가 치유인 주된 이유다. 

    - 의사와 치유자에게 치유와의 관계는 정반대다. 의사는 공식적으로 치유한다고 주장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치유를 경험하고 인정하는 것은 환자다. 치유자가 무면허라 하더라도 치유자의 능력은 다른 이들의 경험으로 입증된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 위해 미개사회로 갈 필요는 전혀 없다. 프랑스에서조차 자연의학은 의과대학의 문전에서도 항상 번성했다. 

    - 의사들은 자신들의 권고와 치료적 행동이 엄격하게 객관적인 토대 위에 있다고 확신하지만, 이는 의사들이 가지는 최악의 주관적인 직업적 환상이다. 

    - 시대가 어렵고 탈출구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비전문적 치료시술자가 양적으로 증가했다. 과학의 적대자인 이들 시술자는 의사들을 비난했으며, 의사들이 무시하거나 그들에게 결여된 것을 자신들은 갖고 있다고 우쭐댔다. 

    - 의사들은 자기 환자들의 정서적 곤경을 인내심을 갖고 물어보는 일에 소홀하기 때문에(그들이 원래부터 그렇다기 보다는 시간이 없어 그러하다), 정신신체적 문제라고 주장하며 등장한 최초의 치료자에 비해 그들이 열등하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 미래의 의사를 위한 대학병원 수련에서 ‘쾌활한’ 소통에 대한 교육과 인간적 접촉 능력에 대한 검사와 시험이 도입되어야 할까? 그것이 아니라면 의욕에 넘치는 의사와 준의료인으로 구성된 건강팀이 자신의 몸과 일, 집단에 대한 각 개인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담당해야 하는가? 

    - 인간적 접촉은 자율신경계의 생리학처럼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쾌활한’ 소통 능력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 의료직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불평등한 선택 기준을 새롭게 확립하는 것이 될 것이다. 

    - 건강을 탈의료화하려는 조직적 운동이 그 목적과 정반대되는 결과를 얻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 과학적 의료의 일부 실천을 비판하기 위해 자연의학의 효력을 무분별하게 찬양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캉길렘은 의사로서가 아니라 철학자로서 의학에 접근했고 직접적인 의학 수련을 통해 전적으로 그리고 단순하게 하나의 지식으로 환원되지 않는 기술에 대한 해명을 얻고자 했다. 의학을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이라기보다는 여러 과학들의 교차점에 있는 기예 혹은 기술로 여겼다. 의학의 ‘탈인간화’에 대한 대항으로서 순진한 대중들의 거부반응이 나타나는데, ‘소위 인간을 중시한다는 비밀스러운 자연주의적 공상’에 뒤이어 ‘정규 의사로부터는 얻을 수 없는 효과를 보았다’고 자격 없이 주장하는 치유사들의 흥미로운 제안에 노출되고, 이에 동조하기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대중들은 한의학·한의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캉길렘은 자연의학을 미개사회로, 비전문적 치료시술자와 무면허 치유자를 과학의 적대자로 간주하고 있는 셈이다. 자연의학을 한의학으로, 비전문적 무면허 시술자를 한의사로 등치시킬 수는 없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현실적으로 한의학, 한의사에 대한 의사들의 인식, 대중들의 인정이 이 정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동시에, 캉길렘의 표현을 변용하여 반박해 보자면 24년차 임상한의사인 나는 분명히 30초 진료하는 대학병원의 교수들보다는 소위 인간을 훨씬 중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렇다고 비밀스러운 자연주의적 공상가는 아닌데다가 다른 의사로부터는 얻을 수 없는 효과를 내게서 보지 않았느냐며 환자에게 억지스런 주장을 한 적도 없다. 

     

    03.jpg

     

    대신 전문 시술자이며 면허 있는 치유자로서 스테로이드 주사 직후의 목잠김과 안면홍조, 약 복용 직후의 전신 가려움증을 겨우 탈피하고도 여전한 우측 후두통, 어깨통증, 팔저림으로 내원한 한 여환을 3주간 치료해가며 큰 고비는 넘겼다는 다행스런 순간을 함께 했으며 여의도의 한 대형병원 신경외과의 반복적 주사치료에 호전악화를 반복했던 퇴행성 디스크 남환을 3개월간 지극정성으로 치료를 한 결과, 처음으로 통증 없는 한 주를 보냈다는 간증을 들어야 했다. 나는 치료를 했을 뿐인데, 환자는 치유되었다고 표현하였다. 나는 의사인가? 치유자인가? 시술자인가?   

    ‘건강을 탈의료화하려는 조직적 운동’이라는 표현은 캉길렘이 의학을 공부하던 시절의 프랑스를 반영하는, 그 시절에 국한된 표현일 것이다. 


    오늘날, 그 어느 나라보다도 대한민국은 모든 일상이 통으로 의료화되가고 있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속에 서 있다. 그 틈새의 어정쩡한 한의사들은 철저하게 주변인으로 배경으로 가장자리로 끄트머리로 찌끄레기로 밀려나고 있는 느낌이다. 이 와중에 <대법원, 말기암 환자에 산삼약침 주사한 한의사 실형 확정>(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2023.04.15) 기사가 하루 종일 포털 대문에 걸려 있었다. 말기암–산삼–약침–한의사–실형, 단어 하나하나가 논란의 임팩트를 뿜어내는 듯하다. 


     

    몇 주 전에는 프랜차이즈 한의원 경영컨설팅업체가 사기 대출 혐의로 압수수색 당했다는 뉴스가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간호법 강행하면 총파업’이라며 거리로 나온 의사, 간호사들의 시위소식이 의약계의 모든 뉴스를 뒤덮어버렸다. 의사-간호사간의 파워-머릿수 전쟁을 그 누가 감히 이길 수 있으랴?! 의약뉴스 탭에서 눈과 마음을 엔터테인먼트쪽으로 움직여 본다. 3시간 동안 키아누 리브스만 보인다는『존윅4』 정도면 잠시 탈현실을 해볼 수 있으려나?! 오늘은 황사도 미세먼지도 없는 메가박스 킨텍스점으로 고고씽!!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