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희 동신대 한의과대학 학생
한의과대학에 입학한 후 ‘한의학개론’을 들으며 인상 깊었던 내용은 ‘생긴 대로 병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살아온 방식이나 가치관 등이 전부 밖으로 드러나 그의 인생이 된다는 것이 나름대로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근 4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봤을 때, 한의학을 대하는 태도는 놀랍게도 입학 후로부터 살아온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예과: 새로운 생활 속 다방면의 활동
대학을 계속 옮겨 다니다 연고가 아예 없는 지역의 한의과대학에 입학함에 따라, 항상 조급함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혼자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이런 고민은 예과 1학년 때부터 본과 3, 4학년 선배님들을 자주 뵙고 한의학 및 한의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차츰 해결됐다.
고학년 선배님들과 친하게 지내며 한의원 참관, 한방병원 임상시험 참여 등 저학년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대외활동을 많이 접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활동은 한의건강검진 서비스 출범을 위한 빅데이터 수집 임상시험의 참여자 및 보조 인력으로 일했던 것이다. 한의계에서도 한의학만의 방식으로 건강검진 서비스를 도입하고자 5년에 걸친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지난 2020년부터 시작했고, 나주 동신대학교한방병원에서 진행한 건강검진에 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한의학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같은 시기 병원의 다양한 임상연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연구원들과도 라포를 쌓으며 졸업 후 연구쪽 진로를 선택하면 어떠한 장단점이 있는지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운 좋게도 저학년 때부터 한방병원의 시스템이나 체계에 익숙해졌고, 학문적인 부분은 잘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배우는 학문이 실제로 정형화된 체계 속에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껴 학업에도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다.
본과: 계속된 이색 활동에서부터 더 넓은 세상으로
본과에 진입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한의학적인 내용을 배울 수 있었다. 예과 때와 마찬가지로 학과 공부에 성실히 임했으며, 병원에서 일할 때 연이 닿았던 부인과 교수님 덕분에 증강 현실을 이용한 터치스크린식의 경혈 교육 기기 및 난임사업 등 학부생과 실제 임상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예과 때에 이어 진행할 수 있었다.
저학년 때 넓은 세상을 봤던 경험은 한의학을 배우는데 긍정적으로 기능했고 그런 경험을 자교 한방병원에서 했다는 점은 이내 애교심으로 이어졌다. 후배들이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코로나 시기 제대로 이뤄지지 않던 교내외 여러 학사일정을 다시 바로잡고 싶다는 목표가 생겨서 올해는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학생회장이 되고 나서 가장 크게 변한 점은 자교 혹은 광주권 활동에만 국한돼 있던 활동을 전국 단위로 넓힐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전국 한의과대학 및 한의학전문대학원 연합(이하 전한련) 소속 위원으로 활동하며 타 한의과대학 학생회장들과 소통으로 한의계 전체의 크고 작은 이슈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한의학교육에 눈뜨다
개인적으로 꾸준히 과외와 학원 알바 등을 통해 누군가를 교육한다는 것이 익숙했었고, 신입생 때 갈팡질팡하던 시기에 선배님들의 조언을 통해 갈피를 잡을 수 있었기에 저 역시 그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었다. 또한 이미 대내외적으로 좋은 인프라가 구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학년 학우들로 연결이 잘 되지 못한 점이 아쉬웠기에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전한련 내에서도 교육과 관련된 활동을 도맡았다.
한편 학생회장이 되고 나니 학생대표의 입장으로 한의과대학 인증평가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인증 평가와 한의학교육의 방향성을 엮어서 지난 여름방학 때 전국 12개 한의과대학을 방문해 각 대학의 커리큘럼을 비교하고 다가올 한의과대학 인증평가를 대학별로 어떤 컨셉으로 대비할지에 대해 면담을 시행했고 겨울방학 때 자료집을 제작할 계획이다.
학교 내부적으로는 2023학년도부터 개정될 교육과정 개편에 대해 12개 한의과대학 면담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대표의 입장에서 의견을 피력했고, 재학생들의 학업 보조를 위해 각종 과목 오리엔테이션 및 한국어문회 한자 급수 스터디를 직접 기획했다.
한의학교육과 병행한 향후 계획
올해 교육 관련 활동을 통해, 현재 한의학교육이 과도기에 있으며 향후 몇 년 동안은 과도기 속에서 한의과대학 인증평가와 맞물려 한의과대학의 전반적인 운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을 알게 됐다. 앞으로의 새로운 인증 기준에는 보다 더 많은 학생의 의견이 반영돼야 하고 수요자 중심의 한의학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학생들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졸업을 앞둔 본과 3학년이 됐지만, 새로운 인증 내용 중 상당수가 임상실습 과목 컨텐츠 및 현황을 다루고 있는 만큼 졸업 전까지는 꾸준히 임상 관련 인증 항목에 대한 자문위원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졸업 후에는 임상 한의계의 일선에서 신졸 한의사들이 배웠던 교육이 얼마나 한의사의 역량과 관련이 있는지 조사하는 일을 보조할 생각도 미약하게나마 가지고 있다.
거울과도 같은 한의학의 매력
이 같은 이유로 한의학은 마치 거울과도 같이 제가 활동해온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의 지난 4년이 저를 한의학교육에 관심 가지게 만들었듯이 모든 한의대생, 심지어는 한의사라 할지라도 개개인의 추억과 경험이 쌓여 한의사로서의 진로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저학년 때부터 운 좋게 외부 활동을 진행하다 학생회장이 되고 교육 관련 업무를 통해 관련 진로를 선택하게 된 제 이야기는 하나의 예시에 불과할 뿐, 한의학은 이미 개개인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선배님들께서 한의계에 크고 작은 공헌을 해주셨기에 지금 적어도 한의학교육만큼은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과도기를 겪을 수 있게 됐다. 수백년 전의 경험이 근대를 비추고 수십년 전의 활동이 현대 한의계를 비추듯 한의학은 끊임없이 과거의 결실을 미래로 비춰왔다. 개개인의 서사를 모아 후대로 또 다른 빛을 비출 수 있도록 거울의 일부분으로서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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