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의 한의학 <4>

기사입력 2022.01.0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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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氣候)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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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한의학에서 ‘관계’에 대한 강조는 분명하다. 기혈, 한열, 수화, 기미, 보사 등 짝으로 이루어진 한의학의 언어들 자체가 관계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기진맥진’과 같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우리말에도 한의학의 ‘관계’는 잘 드러난다. 기와 맥이 다 소진되어 버린다면 사람이 운신을 하지 못할 것이다. 당장 쓸 수 있는 기운뿐만 아니라 그 기운을 지지하는 기반들까지 (기진맥진에서 맥은 기와 쌍을 이루는 영혈에 가깝다) 소진되었다는 표현에는, 한의학의 몸에 대한 이해가 동적인 기운과 (비교적)정적인 유형체들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한의학의 관계의 관점은, 정(精)과 신(神)의 관계 속에서 사람 존재를 표현하며, 수승화강의 수화의 관계를 통해 고무적인 존재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풍, 한, 서, 습, 조, 화의 여섯 가지 기운도 관계 속에 있다. 이 중 하나의 기운이 돌출되어 몸이 아프면, 다른 기운들과의 관계 속에서 돌출된 기운을 돌본다. 생장수장의 사시도, 흐름 속에서 관계성을 강조한다. 담(痰), 울(鬱) 적(積), 옹(癰) 등의 문제에 관해서도, 개별적인 담, 울, 적, 옹 보다는, 그러한 뭉침과 쌓임이 나타나게 된 관계들 즉, 기, 혈, 정, 수곡, 기거, 칠정의 연관을 돌아보는 것이 한의학에서 관계의 중요성을 말한다. 한의학의 관계의 언어들은, 한의학이 가지고 있는 어떤 시선을 드러낸다. 이 시선은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데 있어 의미 있는 바라봄의 방식을 제공한다. 

     

    지금 기후위기에 대한 많은 논의는 탄소에 집중되어 있다. 탄소중립, 탄소저감, 탄소제로, 탄소세 등 기후위기 시대의 많은 용어들이 탄소를 주된 문제로 지목하며, 줄임과 제거를 강조하고 있다. 기후위기 서사의 무대에서 탄소는 주범의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탄소는 죄가 없다. 지구상 존재들의 활동으로 배출된 탄소가, 다시 흡수되는 순조로운 흐름이 유지되어야 지구상의 생물, 무생물, 만물들이 존재할 수 있다. 탄소의 남[出]과 듦[入]은 지구의 거대한 호흡에 해당한다. 호흡이 들숨과 날숨의 ‘관계’이듯이, 지금 기후위기의 문제는 이 관계의 순조롭지 못함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기후위기에 관한 여러 말들의 추이를 살펴보면, 지목된 탄소 주범 뒤로, 진짜 주범들은 숨어버리는 형국이다. 글래스고 유엔 당사국회의(COP26)에서 탄소를 저감한다고,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며1), 탄소를 지목하는 시선은, 무엇보다도 관계의 문제를 간과하게 한다. 물론 탄소 저감은 중요하다. 하지만 있는 탄소를 줄이는 것은 기후위기 응대의 일부에 불과하다. 저감(低減)이라는 말도 그렇다. 저감은 지금 있는 것을 (즉 탄소를) 줄인다는 의미에 방점이 있다. 탄소포집기술이나 탄소세, 그리고 탄소시장 등은, 있는 탄소를 줄이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방법론들의 예시이다. 이 저감의 담론과 방법들에는 탄소 중심의 사고가 여전히 존속되고 있다. 

     

    탄소 중심의 관점에는 역사가 있다.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가 시작되던, 산업혁명기에는 태울 수 있는 탄소만 보았다. 마치 광신적인 탄소 태우기 교도들처럼 땅을 파고, 바다의 해저를 뚫어 잘 타는 탄소 확보에 집착했다. 그리고 탄소를 열심히 태웠다. 그후 200여 년이 지난 지금, 기후위기에 직면하여 태울 탄소에 대한 집착은 바뀔 조짐이 보이지만, 탄소에 집중하는 태도는 여전하다. 이제는, 없애야 하는 탄소에 집중하는 경향이 대두되고 있다. 이번에는, 마치 탄소 절제의 금욕주의가 기후위기의 담론을 장악한 형국이다. 시대는 바뀌고, 탄소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탄소에 꽂힌 시선은 그대로다. 발전, 성장에서 변화, 위기로 판이 뒤집어지는 반전을 경험하고 있지만, 탄소에 대한 애증이 여전히 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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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온’에 대한 논의에도 유사한 ‘집중’이 관찰된다. 기후위기는 기온 상승의 위기로 간주되곤 한다. ‘1.5도’ 기온이 지금 기후위기 논의의 핵심에 있다2). 기후위기에서 기온의 상승이 큰 문제이지만, 기온에 집중된 시선이 너무 집착적이라는 것이 또한 문제다. 기후도 기온으로 보면 많은 것을 놓친다. 하지만 지금 기후위기의 논의에서 기후는 기온으로 환원되곤 한다. 기후위기는 기온 상승의 위기이고, 그 주범은 탄소라는 것이 지금의 주된 테마이다.

    탄소, 기온에 집착된 시선을 돌아보기 위해서, 기후의 본래 의미를 강조해야 한다. 기후 안에 내재한 관계의 관점을 드러내야 한다. 이전 글에서 논의했었지만, ‘기후’는 기의 상황이다. 기후에 관계된 여러 행위자들과 행위들의 작용 반작용이 모여 기의 상황은 드러난다. 또한 ‘기후’는 가변성을 전제한다. 조건들의 관계에 따라 기의 상황은 변화한다. 기의 상황을 보려하는 시선에는 그 관계를 보려하는 시선이 내재해 있다. 이것은 탄소, 기온에 집중하는 시선과 차이가 있다. 햇볕, 비, 구름, 바다, 공기 등등 그리고 생물 무생물이 얽혀서 기후를 만든다. 사람이 태운 탄소가 기후를 위기에 몰고 가지만, 발전과 이득의 욕망이 그 태움의 집착에 “관계”되어 있다. 

     

    기의 상황은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한의학의 관계 강조가 말하고 있듯이, 순조로운 흐름은 순조로운 관계들에 조응한다. 순조로운 흐름의 관계를 통해 존재들은 건강하게 존재한다. 그 관계가 흔들리고 하나의 부분이 돌출될 때 문제가 생긴다. 몸이 아프고, 지구는 더워진다. 기후위기가 탄소가 과잉된 돌출의 사태라면, 그 돌출이 드러나는 관계를 돌봐야 할 것이다. 관계의 시선은 탄소에 집중된 시선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시선을 제공한다. 탄소가 대기 중에 과잉되게 하는 관계들을 보게 한다. 무엇보다도, 관계를 놓치면 근본 원인을 돌아볼 수 없다. 근본 원인이 남아 있다면 위기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근본 원인에 대한 고찰 없는 해결은 봉합에 불과할 것이다. 일시적 봉합에 안주하고 있을 때 위기는 사라지지 않고 상존한다.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관계를 놓치는 집착의 시선 그 자체다. 태울 탄소에 집착할 때도 탄소를 구하기 위해 파헤친 땅과 바다가 생명에 미치는 관계를 생각하지 못했다. 탄소의 에너지가 낳은 성장과 풍요에 대한 집착은, 태운 탄소의 그을음과 생명의 관계를 보지 못하게 했다. 흡수되지 않는 대기 중의 탄소에만 집착할 때, 그 탄소 발생을 가능하게 한 태도, 생각, 욕망, 시선의 문제, 또한 그것들과 연결된 인간들의 다양한 행위들은 간과되기 쉽다. 상황은 위기상황인데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면 위기는 지속될 뿐이다. 그 생각이 지지하고 있는 행동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생명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이다. 이 시선에 효능이 있다. 약과 침으로 효능의 결과가 드러나지만, 약과 침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한의학의 시선이다. 바라봄 자체가 효능이고, 그러므로 한의학의 의료는 효능있는 시선의 체화다. 다른 의학들도 마찬가지다. 각 의학들이 몸을 바라보는 시선 안에 이미 효능이 내재해 있다. 이러한 효능들을 가진 의학들의 시선 중에, 특히 한의학은 관계의 시선이 두드러지는 의학이다. 한의학의 관계의 시선은 기후위기 시대에 하나의 문제에(이 문제는 곧잘 근본 원인의 결과물이다) 고정된 시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효능이 있다.

     

    기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과 관계된다. 의학의 존재 이유가 고통을 경감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기후에 대해 말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한의학이 할 말이 있다면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고통을 경감하고 생명을 살리는 의학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1) 여기서 ‘이러쿵 저러쿵’은 당사국회의 기간 동안,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참여한 시위에서 가져왔다. 말만 앞세우고 실제 실천은 부재한 당사국들의 입장을 비판하는 시위에서 ‘이러쿵 저러쿵(blah, blah)’은 구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당사국은 중의적으로 읽을 수 있다. 당사국은 COP26의 주체이면서 또한, 근대국민국가에서 유래한 지금의 국가들은 경제발전의 이름 아래 경쟁을 하며 탄소를 발생시키는 기후위기의 당사자들이다.

     

    2) 산업화 이전 시기의 평균기온에 대비해 1.5도 상승 이내로 제한하자는 것이 지금 기후위기 대책의 주된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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