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여의도책방-23

기사입력 2021.12.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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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12월을 보내며(feat.COVID-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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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년은 끝까지 이렇게 찜찜하게 끝날 모양이다. 닥터 파우치(Dr. Anthony Fauci)가 경고했듯이 백신을 맞더라도 2021년 연말까지는 마스크를 써야할 지도 모를 일이고 일일 확진자수 그래프는 아직도 정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지속적이고 가파른 그래서 상당히 불안한 우상향이다.”

    작년 12월28일 『한의신문』에 기고한 내 글의 일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1월을 희망차게 시작하면서 7월 즈음에는 코로나도 끝이 나고 해외로 여름휴가도 떠날 수 있으리라 상상했었는데 안타깝게도 닥터 파우치 말이 맞았다. 그의 예상대로 2021년 12월 우리는 세 번째 백신을 맞고 있지만 코로나는 여러 변이를 거쳐 생존 중이고 거리를 가득 메운 마스크 인간들의 행렬도 여전하다. 최근에는 오미크론(omicron) 변이 바이러스의 대확산 예측 기사까지 나오면서 추가접종을 권고하는 중대본의 마이크는 오늘도 불안한 수치들을 한가득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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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출판하는 옥스퍼드 랭귀지는 2021년 올해의 단어로“VAX”를 선정했다. 백신(vaccine) 또는 백신접종(vaccination)을 뜻하는 백스(VAX)는 1799년 처음으로 영어 단어로 등록됐다. 옥스퍼드 랭귀지에 따르면 2021년 9월 기준으로 VAX의 사용 빈도는 2020년 9월 대비 72배 증가했으며 이는 COVID-19 이후 백신접종이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완전 접종(fully vaxxed), 접종 증명서 (vax cards), 접종에 반대하는 사람(anti-vaxxer) 등과 같은 신조어도 활발히 사용됐다고 한다.

     

    코로나백신 접종 이후 불편 호소하는 환자 방문 늘어

    전신적으로 나타나는 몸살기운과는 차원이 다른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종종 방문 중이라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홈페이지의 ‘안전성 및 모니터링’ 중 심근염 및 심낭염 관련 자료를 검색해보니 지난 11월12일 업데이트된 내용이 잘 정리돼 있었다. 

    “심근염은 심장 근육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고, 심낭염은 심장 외벽에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두 경우 모두 감염이나 다른 유발 요인에 대해 신체 면역체계가 반응하여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mRNA COVID-19 백신(화이자 또는 모더나) 접종 후 특히 남자 청소년과 남자 청년에게서 발생(일반적으로 접종 후 1주일 이내, 2차 접종 후 더 빈번하게)했으며 가슴 통증, 호흡곤란, 심장 빈박, 두근거림, 심박수 증가 등의 증상으로 심근염 또는 심낭염으로 진단받은 환자 대부분은 약을 복용하고 휴식을 취한 뒤 차도를 보이며 신속하게 회복되었고 운동이나 스포츠를 다시 시작할 때 심장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https://korean.cdc.gov/coronavirus/2019-ncov/vaccines/safety).

    실제로 “두 번째 백신 맞고 그 때부터 심장이 벌떡거리는데 가슴까지 약간 아파오니까 겁이 덜컥 나요. 그제 보았던 뉴스에서 백신 부작용으로 심근염 있을 수도 있다고도 했고요”라며 심장초음파, 심장CT를 포함한 제반 검사를 경유하고 별다른 진단사항이 없는 직원분이 단순한 흉통을 완화시킬 수 있는 치료가 가능하냐고 방문을 하기도 했고, “부스터샷 맞고 열흘이 지났는데 뒷목부터 왼쪽 팔까지 찌릿찌릿 했다가 내 팔이 아닌 것처럼 축 늘어졌다가 타이핑을 칠 수 없을 정도라니까요. 이런데도 부작용이 아니라니 할 말이 없죠. 백신 부작용 아니니까 그럼 침 맞아도 되냐고 물으니까 그건 또 알아서 하래요. 침 맞고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의사들도 알아서 해주겠죠 뭐...라길래 그냥 전화 끊고 여기로 왔어요. 어떻게 좀 해 주세요”라는 분도 계셨다.  

    1, 2차 접종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던 시기에도 코로나 백신을 맞은 이후에 나타난, 이전에는 결코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었던 다양한 증상과 불편감을 호소하며 많은 분들이 진료실을 방문했다. 백신과는 관계없는 증상이라는데 본인은 분명히 백신 맞은 이후에 새로 느끼는 증상이라며 한의학적으로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냐는 문의가 대부분이었다. 원래 가지고 있었던 만성 요통이 1차 이후 너무 심해져서 2차 접종을 미루시던 분도 계셨고, 출혈성 질환을 가지고 있던 폐경기의 한 환자분은 담당 주치의의 권고로 아예 1차 접종부터 안하고 계신다는 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코로나 백신이 보약주사가 아닌가 할 정도로 백신 맞고 뭔가 에너지를 느끼셨다며 벌써부터 3차 접종이 기다려진다는(!) 가장 독특한 반응을 보고해주신 분까지 이렇게나 다양한 분들을 매일 만나고 있다. 


    철저하게 의료화된 환경에서 제어·통제되는 현실 자각

    『초등생도 백신패스 반대 청원. 부작용 정부가 책임지나』, 『부작용 때문에 백신 맞을 생각 없어 고2, 백신패스 반대 청원』 백신패스 의무화는 인권 침해이고 행복추구권을 침범하는 것이라는 백신패스 반대 청원 관련 기사들을 접하며, 단언컨대 백신 반대론자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건강 문제로 백신을 맞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의 불만과 불안, 고립감도 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신만이 과학이고 이러한 과학에 반기를 드는 것은 공동체의 삶을 무너뜨리는 유해한 그룹이며 이러한 그룹은 어떤 방식으로든 철저히 통제를 받아야 하고 이러한 통제는 옳다라는 일종의 선한 공권력. 

    우리 모두는 우리의 모든 삶의 순간들이 철저하게 의료화된 환경에서 제어되고 통제되고 통계적으로 집계되는 거대한 코로나 의료체계 안에서 관리되는 듯한 상황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뭔지 모를 두려움 또한 끝없이 교차되기도 한다. 이는 안도감과는 대비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접종센터 관계자들로부터 백신 맞은 이후의 다양한 증상들이 백신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불편함으로 내원하는 환자들에게 뚜렷하게 해줄 게 없을 때는 간혹 무기력감에 내동댕이 쳐지기도 한다. 백신 후 내원한 환자들에게는 그저 특별한 치료적 행위 없이 주의관찰만 해야 할 것 같은 극도의 조심스러움을 느낄 때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의료인의 한 축임에도 불구하고 변방으로 더 변방으로 밀려나 구경꾼의 포지션에 처해있는 듯한 소외감도 부정할 수 없는 내 마음 속의 표정이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불편한 마음의 근본은 어디에서 왔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이반 일리치의 현대의료에 대한 비판서 『병원이 병을 만든다』와  『전문가들의 사회』라는 두 권의 책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반 일리치의 현대의료에 대한 비판 ‘눈길’

    학교 탈출이나 현대의료에 대한 거부를 외쳤던 한물간 반문명주의자라는 비판을 달고다니는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는 “가장 급진적 사상가”(TIME)이자 “위대한 사상가”(The Guardian)였고, 주류 체제를 떨게 하는 “지식의 저격수”(NY TIMES)라는 평가를 받았다. 192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미국 뉴욕 빈민가의 한 교구에서 보좌신부로 일했다. 1956년에 푸에르토리코 가톨릭대학 부총장이 됐고, 1961∼1976년에는 멕시코에 일종의 대안 대학인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CIDOC)를 설립해 연구와 사상적 교류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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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1969년 스스로 사제직을 버렸고 80년대 이후에는 독일 카셀대학과 괴팅겐대학 등에서 서양 중세사를 가르치며 저술과 강의활동에 전념했다. 『깨달음의 혁명』, 『학교 없는 사회』, 『공생공락을 위한 도구』, 『에너지와 공정성』, 『의료의 한계』, 『그림자 노동』,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등 성장주의에 빠진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 사회에 급진적 비판을 가하는 책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사회·경제·역사·철학·언어·여성 문제에도 깊은 통찰들을 남겼다. 말년에는 한쪽 뺨에 자라는 혹으로 고통받았지만 현대식 의료 진단과 치료를 거부했고 2002년 12월2일 독일 브레멘에서 타계했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도서출판 미토, 2004)에서 기억에 남는 대목들은 아래와 같다.   

    - 의사에 의해 가해지는 고통과 질병은 언제나 의료행위의 한 부분이었다. 

    - 전문가의 무감각, 태만, 완전한 무능력 등은 낡은 형태의 의료 과오이다. 의사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에게 그 기술을 행사하는 기능인에서 과학적 법칙을 다양한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전문가로 변모함에 따라, 의료 과오는 의사 개인의 이름에 오점을 남기지도 않고 거의 존중받다시피 하는 일이 되었다. 옛날에는 신뢰의 남용과 도덕적 결함이었던 것이 현재에는 장치나 수술자의 우연적 사고라고 합리화되고 말았다.

    - 복잡하게 기술화된 병원에서 태만은 ‘우연한 인간적 오류’ 또는 ‘시스템의 고장’으로 미화되고, 무감각은 ‘과학적인 냉정함’으로 호도되며, 무능은 ‘전문적 장치의 부족’으로 합리화되고 있다. 진단과 치료의 비인간화는 의료 과오를 윤리적 문제에서 단순한 기술적 문제로 변모시켜 왔다.

    - 어떤 고통이 단순히 주관적인 것이고 어떤 장해가 꾀병이며 어떤 죽음이 다른 죽음과는 달리 자살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의료이다.

    - 의사와 상의하라는 경고는 구매자로 하여금 자신에게 경계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 예컨대 노년은 불안한 특권, 또는 비참한 종말이라고는 생각되었지만 결코 질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의사의 지시 하에 놓여지게 되고 말았다.

    - 의료 없는 죽음이라고 하는 현대의 공포 때문에 인생은 최종점의 혼전(混戰)을 향한 경쟁으로 치닫게 되었고, 개인의 독자적인 자기 확신을 잃고 말았다. 그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때가 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죽음을 맞는다는 자율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 의학은 병원이 불확실하고 예후가 좋지 않고, 치료가 실험적 성격을 갖는 경우에도 환자를 요구한다.

    - 이전에 현대의료는 극히 제한된 시장을 통제할 뿐이었으나, 현재에 이르러 이 시장은 모든 경계를 잃고 말았다. 병을 앓지 않은 사람들은 장래의 건강을 위하여 전문적 치료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서 보편적 의료화를 요구하는 병적 사회와 보편적인 병적 상태를 증명하는 의료적 시설이 생겨났다.

    - 의사의 관심이 환자에서 질병으로 옮겨짐에 따라 병원은 질병의 박물관으로 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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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함께 『전문가들의 사회』(사월의 책, 2015)의 첫 번째 챕터인 “우리를 불구로 만드는 전문가들”에서 이반 일리치는 모든 영역의 의료화를 아래와 같이 비판하고 있다.

    - 전에는 그저 아픔(ill)에 불과했던 것들이 의사가 치료해야 할 질병(illness)이 되면서 사람들은 가벼운 병이나 심지어 불편한 정도의 증상에 대해서까지도 대처할 의지와 능력을 잃게 되었다.

    - 의료는 불과 사반세기 만에 자유 전문직에서 지배적 전문직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들은 잠재적 환자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가려내기 위해 전 인구를 테스트할 권한까지 요구한다.

    - 이제 관료화된 외과의나 정신과의사가 정해주는 치료법을 팽개치고 달아나려는 사람에게는 법이 육중한 팔뚝을 휘두르며 다가올지도 모른다.


    모든 삶이 의료화되는 시대…한의학, 한의사의 역할은?

    올해를 시작하며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12월의 어느날까지도 한의계의 모든 구성원들을 놀래켰던 혹은 얼굴 화끈거리게 만든 각종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한의사 부부 일가족 숨진 채 발견...남편은 투신』(2021.02.14.), 『시바신으로 난치병 치료한다며 한의사 속여 62억 뜯었다』(2021.10.13.), 『환자, 일단 눕히기...일찍 퇴원하면 “썩은 고기”』(2021.11.16.), 『여직원 배에 ‘자궁 모형’ 놓고 촬영...한의원 원장의 기막힌 갑질』(2021.12.20.)

    직원들 한명한명이 CCTV이고 환자들 한분한분이 고발전문 유튜버라 각오하고 진료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모든 것이 기록되고 촬영되는 세상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하루하루 매 순간순간, 송곳 위에 서 있는 듯한 위태로운 일상이다. 임상을 한다는 것, 그것도 잘 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마음 수련과 실력과 인내를 요구하는 일일까?! 포털 메인에 연령대별 많이 본 뉴스로 한의학, 한의원, 한의사에 대한 좋지 않은 기사가 턱하니 걸려 있으면 숨이 턱 막혀온다. 네거티브는 네거티브를 강화한다. 반대로, 포지티브는 포지티브를 강화한다. 이미 지나간 한의계 관련 기사들을 다시 들먹거리는 행위가 행여라도 인신공격이나 내부총질로 오해받을 지도 모르겠지만 꺼내기 싫은 상처를 다시 일부러 꺼내어 본다. 코로나로 우리의 모든 삶의 의료화는 더욱더 가속화될 것이고 현대의학의 지배적 통제권은 신격화 이상의 절대적인 힘을 이미 부여받았다. 빠르게 변해가는 이러한 외부환경 속에서 한의계는 그리고 일개한의사인 나는 어느 길을 걸어가고 있을까?! 아니 컴컴한 동굴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친한 친구의 조카가 재수 끝에 00대 한의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과 최상위권이었다가 목표했던 의대 낙방 후 힘겨운 1년간의 재수 끝에 재도전에 나섰으나 안타깝게도 의대는 모두 불합격, 삼수를 면하기 위해 마지막 가능성으로 수시지원을 해둔 한의대에서 소식을 전해온 것이었다. 수험생활 디엔드라는 부푼 마음으로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조카를 위해 2022년 1월에 티타임을 한 번 가져달라는 친구의 제안에 흔쾌히 ‘OK’라 대답했다. “웰컴투헬” 모드로 잔뜩 겁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일단은 2년간의 수험생활에의 노고를 위로해주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93학번 새내기였던 나의 그 시절과 비교해 봤을 때 2022학번 신입생들이 마주하게 될 한의대의 풍경은 얼마나 많이 달라져 있을까? 한의대 들어가기 전에 읽어볼만한 몇 권의 책들을 쇼핑백에 담으며 이 친구가 한의사면허를 가지게 될 2028년 2월의 어느날을 상상해 본다.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또한 2028년 한의계는 무엇을 위해 투쟁하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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