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의 정답고 씩씩한 ‘삼춘’들을 만나다

기사입력 2021.08.0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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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광현 미로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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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최근 우도로 의료봉사를 다녀온 백광현 미로한의원장이 의료봉사를 떠나게 된 계기와 과정, 우도 현지에서 만난 환자 등의 에피소드를 전한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는 현재까지 여전히 비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다. 해외 선진국마저 부러워하며 방역 성과 세계 1위를 자랑하는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좀 괜찮아질만하면 코로나는 어김없이 그 빈틈을 파고들어 일상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미로한의원이 ‘선순환적이고 친환경적인 착한 의학인 한의학’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매년 여름휴가 동안 해오던 해외 의료봉사도 코로나 영향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올해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때 우도(牛島)에서 소식이 날아왔다. 우도가 고향인 한의원 직원이 우리 활동을 소개했는데, 우도에서 마을신문을 만드는 ‘달그리안’이 이 사안에 공감했고, 또 조일리 이장님의 의지가 더해지면서 우도에서의 의료봉사가 최종 결정되었다.

     

    ◇보건소가 유일한 우도서 팀 꾸려 의료봉사 시작

     

    우도는 제주도 일출봉 옆에 위치한 성산항에서 배로 20여 분을 더 가야하는 조그마한 섬이다. 하지만 그 명성은 제주도 못지않아, 성수기가 찾아오면 이른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관광명소다. 관광객이 운전하는 차량이 워낙 많아 해안도로가 밀릴 지경이다. 첫 배가 들어오는 시간부터 마지막 배가 떠나는 시간까지 우도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소란스런 섬이 되는 것이다. 이런 우도에 살고 있는 사람은 1700여 명. 필수 시설인 병원은 아예 없고 보건소가 유일하다. 그나마 한의원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얼마 전에 철수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의료사각지대라는 말이 나의 마음을 크게 자극했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즉각 자원봉사단을 구성하고 7월 초순으로 서로 일정을 맞추었다. 7월4일 우도로 들어가서 7월10일까지 가는 날과 오는 날을 제외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닷새 동안 진료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의료봉사단은 의사 2명(박수진, 백광현), 보조 2명(여상훈, 장문기), 진행 2명(손석완, 오숙희), 기록 1명(이스크라21 김지운 감독)까지 모두 7명으로 꾸렸다. ‘달그리안’은 현장 진행을 하면서 외국어 같은 제주 말을 통역해주는 역할도 동시에 해주기로 했다. 동제주종합사회복지관도 함께 하기로 했는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자동차로 모시고 왔다가 모셔다 드리는 이동봉사를 도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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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 가리지 않고 ‘삼춘’이라 부르는 우도 주민들 

     

    월요일부터 환자는 밀려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환자를 분산시키기 위해 사전 진료 예약을 받았다. 하지만 아침 8시30분에 복지회관에 도착하니, 어르신들은 9시 진료 시작임에도, 벌써부터 대기 의자에 앉아 계셨다. 일흔 넘은 어르신들의 부지런함을 누가 당할 수가 있을까. 의료진은 어르신들을 보자마자 9시가 되기도 전에 진료를 시작했다. 환자의 대부분은 물질하며 평생을 살아온 해녀와 그런 아내를 묵묵히 옆에서 지켜온 어르신들이었다. 

     

    진료가 시작되고 어르신들로 넘쳐나는 복지관에서 가장 많이 들린 말은 ‘삼춘’이었다. ‘삼춘’을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삼촌’으로 해석하면 이 호칭의 대상은 당연히 남자일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보니 우도에서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 ‘삼춘’이라고 불렀다. 삼촌이 아니라 ‘삼춘’…. 어딘가 정겨움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삼춘들이 퍼뜨리는 입소문의 힘은 대단했다. 첫날 60여 명의 환자를 진료했는데, 이 분들이 낙오자 없이 다음 날 고스란히 다시 오시는 바람에 하루하루 환자는 더 늘어났고 점심을 먹는 30여 분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꼬박 진료에 매달려야했다. 

     

    어떤 삼춘은 척추 변형으로 침대에 누울 수 없는 상황이라, 의자에 앉은 채 침을 맞았다. 허리가 굽어,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걸어오신 한 삼춘은 침대에 올라가지 못해 안아서 올려드렸다. 이 삼춘은 사흘 연속 침을 맞고 난 후 허리도 펴고, 걸음걸이도 훨씬 수월해졌으며 침대에 혼자 올라가실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고 얼굴빛도 밝아졌다. 

     

    어떤 여자 삼춘은 하루 소라 200kg을 캐는 ‘대상군’이라고 했다. 해녀는 경험과 숙련도에 따라 ‘하군’, ‘중군’, ‘상군’으로 구분하는데, 상군 중에서도 수중에서 숨을 오래 참고 해산물 채취 능력이 뛰어나면 ‘대상군’이라고 부른단다. 꽃다운 소녀 시절에는 ‘하군’이다가 이마에 쪼글쪼글한 주름이 새겨질 때면 ‘상군’, ‘대상군’의 이름표를 다는 게 아닐까. 

     

    하지만 레벨이 올라갈수록 질병의 무게도 늘어나는 것 같다. 살림도 살고, 밭일도 하고, 물질도 하는 해녀라는 직업의 특성과 나이 때문인지 퇴행성 근골격계 질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았는데 주로 진통제 같은 일시적인 증상관리 치료에 의지하고 계셨다. 그래서 근육과 관절을 튼튼하게 해드리기 위해 간과 신장을 보하는 침을 놓으니 대부분 상태가 호전되었다. 하여튼 진료가 끝나갈 무렵에는 거의 90명에 가까운 환자들이 복지회관을 찾아왔고 다른 동네까지 소문이 나는 바람에 예약을 다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침 하나로도 치료를 해낼 수 있는 한의학의 장점을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어서 이번 의료봉사는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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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 치료 효과가 환자들에게 ‘놀라운 경험’이라니

     

    하지만 의외의 지점도 있었다. 우도는 국내에 있는 섬이고, 국내의 환자라면 대부분 한의 의료를 접해왔기 때문에 이미 한의학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에겐 당연했던 한의 치료의 효과가 환자들에게는 ‘놀라운 치료 경험’이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 전통 한의학이 이렇게 효과가 있고 좋은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는 어르신들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의외이기도 했고, 동시에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부분은 나에게 의료봉사단의 향후 행보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금요일에 찾아온 삼춘들은 내일이면 봉사단이 우도를 떠나고 진료를 더 받을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워하셨으며 마지막 진료를 받고 나서는 의료진의 두 손을 꼭 잡아주시며 고맙다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해주셨다. 심지어 내년 진료를 예약하겠다는 분도 계셨다. 그 말씀들 덕분에 보람을 두 배, 세 배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삼춘들은 마음을 보여주는 일에도 부지런하셨다. 누구는 박카스를, 또 누구는 비타민 음료를, 토종닭을 키우는 분은 삶은 달걀을 한 바구니 갖고 오셨고, 또 어떤 날은 맛이 일품인 초당 옥수수가 한 바구니 놓여있었다. 의료진 더울세라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셨고, 또 오후가 되면 커피 배달도 빼놓지 않으셨다. 복지회관 냉장고는 간식과 음료수가 넘쳐났다. 달그리안의 진행요원들은 삼춘들에게 음료수를 나눠주며 정을 나누었다. 또 밥은 얼마나 극진하게 차려주시던지..... 해녀 삼춘들이 따온 성게알을 숟가락으로 퍼먹고, 오도독 소리가 나는 소라도 원 없이 먹는 호사를 누렸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의료봉사하느라 머물렀던 6박7일 동안 우도에서 먹을 수 있는 산해진미는 전부 맛보았던 것 같다. 모두 우도의 다정한 삼춘들 덕분이다. 

     

    제주로 향하는 배에서 삼춘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당신이 신고 온 신발은 신발장에 가지런히 넣어두던 모습, 남녀가 유별하다며 성별에 따라  대기실을 나누어 사용하시던 모습, 편안하면서 흐트러짐 없이 앉아 계시던 모습, 물질하느라 꼬부라지고 성게 껍질을 까느라 까매진 손끝, 손을 잡고 인사하며 인자하게 웃던 모습…. 부지런하고 정다운 삼춘들의 섬, 평생을 바다에서 보내는 씩씩한 해녀들의 섬, 우도를 뒤로하고 부산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마음을 전해 본다.

     

    ‘다정한 우리 삼춘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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