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변으로 고름을 뽑아내는 약, 베트남 줄기세포, 혈맥약침술. 이는 2013년 11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서울 강남구의 모 한의원에서 항암치료로 고통받거나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찾아온 환자들에게 소개한 치료법들이다. 무면허 의료행위와 검증받지 않은 치료법으로 4명의 환자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이들에게 대법원은 실형을 확정했고 혈맥약침술은 한방의료행위가 아니라는 판결도 덧붙였다.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법 위반, 의료법 위반 그리고 사기 혐의가 적용되었다. 한 피해자에게는 4000만원, 또 다른 피해자에게는 7000만원을 받아 챙겼다고 한다(『암환자 절박함 이용해 돈벌이한 한의사, 대법원 실형 확정』경향신문, 박은하 기자 /『“특수 약으로 암 치료”… 환자 속여 거액 뜯어낸 한의사들』 세계일보, 이강진 기자).
지난 5월 19일, 이 기사를 접하고서 기사에 달린 댓글은 단 한 개도 읽을 수 없었다. 멘탈이 무너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말기 암환자들 등쳐먹다가 한의사들이 실형을 받았다는 저런 뉴스를 접하면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다. 한의사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없는 순수한 의료소비자들이라 하더라도 저런 뉴스를 읽은 후라면 한의원 간판만 봐도 토나오겠다 싶었다. 한방사, 약장수, 용팔이, 침쟁이, 사기꾼 등등 한의사를 조롱하는 댓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착착착 테트리스 벽돌 떨어지듯 쌓여가고 있을 것이다.
암환자들의 힘든 항암치료를 돕겠다고, 항암 치료의 부작용을 완화해 드리겠다고, 체질별 건강식단을 제공하겠다고, 두 손 꼭 맞잡은 따뜻한 광고를 앞세운 암전문 한방병원들이 교통사고 후유증 환자들을 특별 대우하는 입원실 운영 한의원들 만큼이나 증가하는 추세이다. 암환자의 절박함을 악용해 돈벌이한 한의사들의 실형 확정 기사가 이런 병원들의 개원러쉬에 어떤 영향을 끼칠런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가족처럼 정성을 다해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광고문구처럼만 실천하셔서 5월 19일 기사에 대해 일반인들이 품었던 한의학과 한의사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조금이나마 희석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암환자 절박함 이용한 범죄기사…제목만 봐도 ‘가슴 철렁’
『절박함 악용해 말기 암환자에 복어알 넣은 ‘복어추출액·환’ 판매 적발』 지난 7월 1일, 거의 모든 주요 언론에 보도된 기사이다. 신속하게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설마, 또 한의사들이 한 짓은 아니겠지?!’ “말기 암환자의 절박함을 악용해..”라는 글귀만 보면 범행의 주어가 한의사일까봐 걱정부터 앞선다. 케미컬뉴스 박주현 기자의 기사 일부를 인용하자면 아래와 같다.
“경상남도 양산시에 소재한 즉석판매제조 가공업체 ‘해진정’은 2019년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복어알을 ‘복어추출액’에 넣어 제조하고, 약 105.6kg과 한글 표시사항 전부를 표시하지 않은 복어추출액·환 제품을 제조해 약 114kg인 총 2천3백만원 가량을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업체는 항암작용, 치료 전후 원기회복, 고혈압, 당뇨, 신경통 등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허위 광고했다.”
“울산광역시 동구 소재 식품제조가공업체 (주)해국식품은 2019년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온라인 쇼핑몰과 전단을 통해 항암 치료 전후 원기회복, 항암예방, 비염, 위장병 등의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허위광고를 했으며, 복어추출액 2개 제품 약 153kg인 1328만원 가량을 판매했다.”
기사와 함께 “보정강장(補精强壯)” 한약박스와 “추출액(抽出液)”이라고 프린트된 레토르트 한약팩에 담긴 복어독 그리고 경옥고환이나 공진단을 담는 데 사용되는 가장 흔한 아크릴 소재의 금박뚜껑 케이스에 포장되어 있는 복어환 등의 관련 사진(식약처에 압수된 불법제품 증거사진)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복어추출액와 복어환을 담은 컨테이너는 다름아닌 일반 한의원의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한약박스, 한약팩, 아크릴공병이라는 사실!! 이러한 불법식품 제조업자들에게 한의학적 컨텐츠들은 이토록 만만하고 진입장벽 또한 낮으며 관련 용품들을 구입하기란 누워서 떡먹기보다도 쉬운 일이라는 사실!!
암치료의 컨텐츠로서 한의학을 담아낼 컨테이너는 어디에?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의 대규모 투자 유치를 앞두고 있는 암 진단 AI 솔루션을 개발한 11명의 의사들이 운영하는 스타트업 리포트를 다룬 일간지의 경제면 기사를 보았다. 거의 동시에 “현대의학적 표준치료만으로 암을 치료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통합암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며 그에 따라 통합암치료 의료기관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니 대한통합암학회에서 통합암치료 인정의 혹은 전문가 과정을 밟아보시라”며 한의사, 간호사, 영양사, 물리치료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린다는 한 학회의 문자도 읽었다. 암 관련 두 개의 문서가 물과 기름처럼 느껴진다. 이 두 그룹은 암시장(Oncology Market) 안에서도 완벽하게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듯하며 한 공간에서 만날 일은 절대적으로 없을 것이다.
국립암센터에는 여전히 한의사가 없다.『‘버티기’ 일관하는 국립암센터』(민족의학신문, 정태권 기자, 2009.12.11.) 『대한한의사협회, 국립암센터 한양방 협진 시스템 구축...“더 이상 늦춰서는 안돼”』(로이슈, 임한희 기자, 2018.10.25.) 단언컨대, 2028년이 와도 국립암센터에 한의사를 채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MD앤더슨 암센터와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암환자에게 침술을 활발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과 협진의 효과를 보여주는 국제적인 학술논문을 증거로 들이밀어도 소용없을 것이다. 암 치료에서 실질적인 치료기술 즉, 컨텐츠로서의 한의학과 그 컨텐츠를 담아내고 있다고 추천될 컨테이너가 국립암센터 입장에서는 “노 땡 큐”일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것이다.
절대적 사각지대에 있는 한방병원, 어디서부터 매듭 풀어야 할까?
사각지대(死角地帶)는 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군사용어에서의 정의는 ‘무기의 사정거리 또는 레이더 및 관측자의 관측범위 안에 있으면서도 지형 따위의 장애로 인하여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이다. 코로나 예방접종에 있어서 한방병원은 감염병예방법 시행령에서 위탁의료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았고 백신 접종은 병원에서 하는 게 법적 체계상 정해져 있기 때문에 외부 의료진이 한방병원을 방문해서 백신을 놔주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감염 취약계층을 위한 정부의 백신 접종 계획 대상에서도 한방병원은 빠져 있는데 한방병원 환자 모두가 요양병원처럼 고령층이 아니기 때문이다.
6월 28일 YTN 뉴스 화면에서 한방병원 행정직원들이 각종 튜브를 몸에 장착한 자가보행이 불가능한 고령환자들을 등에 업고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외부 접종센터로 이동해서 코로나 백신을 접종받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이 모든 번거로움을 유발한 한방병원의 애매한 법적 위치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이 앞섰고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행정당국에는 “꼭 이렇게 모두를 불편하게 해야 속이 시원했냐?”라고 소리치며 항의하고 싶었다. 여러 측면에서 절대적인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한방병원의 위기탈출을 위해서는 과연, 어디에서부터 매듭을 풀어가야 할까?
24세에 심장을 스스로 뛰게 하는 신경세포를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20세기 이후 생물학을 지배해온 환원주의적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을 통합적 개념의 시스템생물학(Systems Biology)으로 방향을 전환시키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신 분이 계신다. “인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분자들의 조화와 연계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사상의학과 시스템생물학이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씀하셨던 옥스퍼드대 데니스 노블(Denis Noble, 1936년생) 교수가 바로 그 분이다. 2009년 4월 체질의학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한의학연구원에 방문하였을 때 직접 뵙고 간단히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노블 교수를 다시 떠올렸던 계기는 2021년 5월 신간코너에 소개된 책 『오래된 질문』 덕분이다. 한국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자신의 이론과 불교철학 사이의 공통점을 느끼고 있던 노블 교수는 한국의 유서 깊은 사찰 네 곳(통도사, 실상사, 백양사 천진암, 미황사)을 방문했고 그리고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큰스님들(성파, 도법, 정관, 금강)과 오래된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는 대화를 나눴다. 서울대 의대 엄융의 명예교수가 동행하였고 그 여정은 책 『오래된 질문』과 다큐멘터리 『Noble Asks』로 기록되었으며 다큐는 조만간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2009년 한의학연구원을 방문하였을 당시 인터뷰에서도 “한의학이 사람의 신체뿐 아니라 마음과 기분까지도 정화하는 것이 매우 큰 강점입니다. 그것이 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진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저도 지압의 정화 기능에 도움을 많이 받았고, 정신을 통해 몸을 치유하는 명상을 매우 좋아합니다.” “옥스퍼드의 동료 교수가 연구한 우울증·정신분열증 등의 치료에 동양의학적 접근 방식이 서양의 약물보다 환자의 고통을 없애주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들었습니다”라며 한의학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불교 안에서의 깨달음와 명상에 대한 경험은 85세 노블 교수의 연륜까지 더해져 한층 더 눅진해진 느낌이다. 이번 신간에서는 인생관, 생명관, 존재론, 우주론, 치료제로서의 명상의학까지 폭넓게 다루어졌다. 구어체로 기술되어 있어서인지 책을 읽어갈수록 작은 선방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교수께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모든 내용이 무척 친숙하게 다가왔다. 특히 마지막 챕터에서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저자 리쳐드 도킨스 교수와의 논쟁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밝혔다.
“저는 과학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는 그동안 눈부신 과학적 발전을 이루어냈고, 우리의 신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무수히 많은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문제는 그 사실을 표현하는 데 잘못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표현은 잘못됐습니다. 유전자 자체는 이기적일 수도 이타적일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DNA는 우리를 이기적이게 만들지 않아요. 우리가 그렇게 만드는 거예요. 그런 너무나도 커다란 차이입니다. 도킨스뿐 아니라 많은 생물학자들이 그동안 해온 방식대로, 잘못된 주장을 반복하고 재생산하는 것을 그만둬야 합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과학계 내부의 논쟁으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 현대의 유전 연구는 단 하나의 유전자가 아니라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유전자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나 특징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따라서 좋은 유전자 혹은 나쁜 유전자라는 구별은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유전자는 우리 몸에서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 유전자라는 건 좋고 나쁜 어떤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고 이기적인 존재는 더더욱 아닙니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그렇습니다. 시스템 생물학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그런 사실들을 쉽게 깨닫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자연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 속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소화불량, 두통, 숙취, 발목통증 등으로 진료실에 자주 오는 보좌관이 있다. “원장님이 저의 주치의시죠”라면서 나라는 사람을 200프로 활용 중이신 고마운 분이나 가끔은 덜 보고 싶은 분!! “왜 보좌관님만 오시고 의원님은 한 번도 안 오시나요?”라고 물었더니 “아, 저희 의원님이 안타깝게도 한의사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으셔요. 옆구리 통증으로 동네 한의원에 들르셨는데 폐가 허하다 그랬나? 암튼 한약 먹고 2주면 거뜬히 낫는다고 50만원짜리 약을 지어오셨는데 2주 지나서도 아프시더래요. 나중에 정형외과를 가서 보니 늑골골절이셨다네요. 그 이후에 한의 쪽은 쳐다를 안 보세요. 제가 한의원 자주 오가는 것도 좀 눈치주세요. 왜 그리 자주 가냐.. 가면 낫기는 하냐.. 자주 다니면 습관 된다 등등.. 그래서 의원님 외출 중에만 살짝살짝 옵니다. 헤헤..”
진정한 한의학 컨텐츠에 대한 진지한 고민 필요
‘이미지 정치’라는 단어가 있다. 실체는 없는데 밀당스러운 언론 노출만 살살 해가면서 안개같은 그러면서도 좋을 것 같은 이미지로 본인을 철저히 포장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자주 듣는 말이다. 이미지는 좋은데, 실체가 없을 때 혹은 본모습이 드러났을 때, 결국 실속없다 혹은 별거없다는 냉혹한 평가를 듣기도 한다. 영영 사라지기도 하고 이젠 정치생명은 끝난게지.. 싶었는데 다시 살아돌아와 여의도를 활보하는 다양한 정치인들을 가까이 보고 있자니 ‘이미지 한의학’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게 된다. 노블 교수처럼 세계적인 석학 반열에 계신 분이 불교니 명상이니 지압이니 언급하시며 동양에서 지혜를 배웠고 삶이 바뀌었다고 고백을 하시면 그 편에 한의학도 슬쩍 한 귀퉁이에 숟가락을 얹어볼 수 있으려나?! 싶은 기대감이 아주 잠깐이나마 든다. 일종의 강자동일시 현상이다. 몇몇 복수면허자들이 한의학을 더불어 전공하지 않았더라면 본인은 반쪽짜리 의사에 머물렀을 거라며 한의학을 통해 본인의 치료의학이 완성되었다는 말이라도 할라치면 그렇지!! 역시 한의학은 보존할 가치가 있다니까.. 라며 잠시나마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기 암환자에게 사기를 쳤다느니, 옆구리 통증 환자에게 늑골 부위에 대한 일차적인 영상진단 없이 약을 팔아 먹었다느니 하는 크고 작은 한의사들 관련 에피소드들을 온몸으로 접하다보면 한의학이라는 컨텐츠가 문제인가? 이 컨텐츠를 대학에서 제대로 가르치고는 있는건가? 그도 아니라면 한의학을 실어나르는 인간 컨테이너들인 한의사들 자체가 문제가 많은건가?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소수의 의사들의 일탈(『 “처녀막 확인해보고파” 마취 환자 성추행 혐의 산부인과 인턴, 법정에선 ‘묵비권’ 행사』 『‘수술용 칼 던져’…부산대병원 교수 폭언·폭행 논란 일파만파』 『약국 1시간 늦었다고 무릎 꿇게하는 의사』)이 하루가 멀다하고 보도가 되어도 필수공공재인 병의원과 의사들을 우리의 일상에서 손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선택과목에 머물러 있는 듯한 한의계에 위와 같은 몇몇 한의사들의 소수의 일탈은 잔잔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화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떨칠 수가 없다.
삼복 더위 만큼이나 뜨거워진 생존을 위한 경쟁의 현장에서 오늘도 땀을 흠뻑 흘리고 계실 도반들에게 오래된 질문을 하나 건네는 바이다. 보완에서 보편으로, 고전에서 미래로, 선택과목에서 필수과목으로 한의학은 과연 변신이 가능할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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