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부회장 “협상 최우선과제는 치료기회 확대 및 회원과의 약속 지키는 것”
임병묵 교수 “연구시 첩약의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객관적 근거 제시에 중점”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 관련 대담
[편집자 주] 지난 20일부터 전국 단위의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이 최초로 진행되고 있다. 본란에서는 대한한의사협회 최혁용 회장·김경호 부회장 및 임병묵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부터 이번 시범사업이 갖는 의미와 함께 연구 및 정부와의 협의 진행시 어려운 점,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본다.
Q. 이번 첩약 시범사업이 갖는 의미는?
최혁용 회장: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첩약’에 대한 효과와 안전성을 국가 차원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으로, 앞으로 한의의료기관의 진료체계 변화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한의학과 한의사를 활용하는 방식이 근골격계질환으로 편중돼 심각한 진료왜곡을 가져오고 있는데,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침·뜸·부항 등 근골격계 질환을 위한 치료수단에만 건강보험 적용이 집중돼 있고 첩약(한약)에는 건보 적용이 안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한의학은 전통적으로 속병을 잘 고치는 의학으로, 한의과대학 및 수련의 과정에서도 내내 배우는 학문이 내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신경정신과, 부인과 등과 연관된 속병들이다. 그러나 속병의 주된 치료수단인 한약이 보험 적용이 안됨으로써 인해 결국 근골격계 질환에만 강점이 있다는 잘못된 인식 아래 진료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첩약의 경우에는 국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한의의료서비스 중 건보 적용이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서비스로 요구했었던 만큼 이번 시범사업은 한의학이 속병도 잘 고치는 의학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데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이와 함께 의약품용 한약재는 지금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철저한 관리 속에서 일선 한의의료기관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약재의 안전성을 비롯해 한약의 효과성에 대해서도 일부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인 만큼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한약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 등을 입증, 한의약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Q. 시범사업이 있게 한 연구용역의 책임자로서 시범사업 실시로 인해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 같은데.
임병묵 교수: 오랜 기간의 대내외적 갈등을 겪은 끝에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이 추진될 수 있었는데, 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추진의 첫 단계가 연구용역이었기 때문에 적지 않게 부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연구용역만으로 제도가 시행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 뒤에 여러 난관들이 존재했었는데, 그럼에도 시범사업이 결정되고 비로소 실제 시행에 들어가는 걸 보게 돼서 연구용역의 책임자로서 기쁘기 그지없고 보람도 느끼고 있다.
Q. 연구결과 발표 이후 양의계에서의 반발 등 어려움도 많았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중점을 두었던 부분과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임병묵 교수: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첫째로, 첩약 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보건복지부에서 2016년부터 지원해서 개발하고 있는 30개 질환의 임상진료지침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두번째는 한의사들의 첩약 치료 행태를 왜곡하지 않으면서 건강보험에서 작동할 수 있는 수가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환자들이 한약을 이용할 때 실제로 경제적 장벽을 낮춰주면서도, 한의사들의 기술과 노력에 대해 적정하게 보상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자 했다.
제일 어려웠던 점은 역시 수가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개별 의약품인 한약을 처방에 따라 조합한 첩약이라는 형태가 기존 건강보험 의약품 지불 구조에서 일반적이지 않다 보니 복지부부터 건보공단, 심평원 관계자들을 이해시키기가 어려웠다. 또 첩약 사용에 대한 통계자료가 많지 않아서 시범사업에서의 재정이 얼마나 소요될지 추계하는 부분도 쉽지 않았다.
Q. 정부와의 실질적인 협의 및 내부 회원간의 의견 조율 등 어려움이 많았다. 어떠한 부분에 중점을 두고 협의를 진행했는지?
김경호 부회장: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 추진에 있어 초창기부터 마무리까지 정부와의 협상 등을 진행하면서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가장 어려웠던 것은 한의계 내부에서의 의견 조율이었던 것 같다. 정부와의 협상에서는 오로지 국민과 한의사 회원들을 위한 의견을 제시하고 협의해 나갈 수 있는 반면 한의협은 일부가 아닌 전체 한의사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나 많은 회원들이 국민들의 지속적인 요구에 부응해 큰 결단을 내줬기 때문에 시범사업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생각되며, 그 과정에서 찬성의 목소리든, 반대의 목소리든 회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뒷받침 되었기에 건강보험 역사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국 단위의 시범사업 실시라는 값진 결과로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협의를 진행하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보다 많은 국민들이 첩약을 통해 자신의 질환 치료 및 예방을 위한 기회가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에서 회원들에게 약속했었던 부분들을 관철하는 것이었다.
실무 과정에서는 첩약의 특성상 기존 의약품의 약제 급여와는 달리 어려운 변수들이 많았고, 더욱이 기존 모델이 없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정부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는 않았다. 그렇지만 협회에서는 회원들이 시범사업 참여에 있어 좀 더 편안한 진료환경에서 환자들에게 첩약에 대한 안전성과 효과성을 전달할 수 있도록 시범사업 실시가 발표되기 전날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협의를 진행해 왔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Q. 첩약 시범사업은 1984년에도 진행된 적이 있지만 본사업으로 진입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전례를 밟지 않기 위해서 시범사업 진행시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최혁용 회장: 그렇다. 시범사업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시범사업이 더 큰 의미가 되기 위해서는 시범사업을 통해 국민들에게 호응을 얻고, 첩약의 안전성·유효성 등과 같은 일부에서 제기되는 우려를 말끔히 해소시켜 본사업으로 진입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시범사업에서의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한의약이 근골격계 질환의 비중이 높아질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987년 침 시술이 건강보험 급여화로 제도권으로 진입한 이후 꾸준한 발전이 있어왔고, 국민들 역시 건강보험 급여화로 경제적 부담 없이 침 시술을 경험하고 효과를 직접 체험했기에 가능했던 변화일 것이다.
첩약 시범사업 역시 침술의 발전사례와 같이 ‘한약은 보약’이라는 국민들의 고정된 관념과 인식을 바꾸고, 한의학이 치료의학으로서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패러다임 대전환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의계에서는 참여 한의원들이 시범사업 지침에 맞춰 환자들에게 최상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정부 차원에서는 이번 시범사업의 목적인 첩약의 안전성·유효성 및 경제성 등에 대한 객관적인 모니터링 및 관련 연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충분한 정책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한의계와 정부의 노력이 함께 병행돼야만 성공적인 시범사업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다.
Q. 시범사업에서 3개 대상질환을 선정하게 된 이유 및 향후 확대방안은?
김경호 부회장: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증, 월경통 등 이번 시범사업이 적용되는 3가지 질환 선정은 지난 2018년 발표된 ‘첩약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기반 구축 연구’에서 제안된 대상질환을 중심으로 한의계 전문가 등 한의계 의견 수렴은 물론 정부와도 재정 및 근거수준 등 여러 가지 부분들을 감안해 최종적으로 선정한 것이다.
물론 국민들이나 한의협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질환이 포함됐으면 하는 바람이었겠지만, 문재인케어로 인해 보장성 항목이 지속적으로 늘어가는 상황에서 정부에서는 재정적인 부분을 우려해 질환 선정에 있어 다소 제한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시범사업이 3년간 동일한 형태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모니터링 후 개선방안을 강구해 나갈 방침인 만큼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상 질환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유례가 없는 전국 단위의 시범사업이라 정부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추나요법의 경우 당초 정부에서는 재정적인 부분을 우려해 많은 제한이 있었지만, 현재 협회 차원에서 모니터링을 지속해본 결과 재정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돼 정부의 우려는 ‘기우’라는 것이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오히려 그러한 요소들이 국민들의 진료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첩약 시범사업도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대상질환 확대는 물론 한방병원 등 참여기관의 확대와 같이 점차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되며, 궁극적인 목표는 본사업 진입과 더불어 모든 질환에 첩약의 건강보험 적용이다.
Q. 아직도 한의보장성 강화 부분은 취약한 실정이다. 보장성 강화를 비롯 한의계가 국민의 건강 증진 및 질환 치료·예방에 보다 많은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최혁용 회장: 지난해 추나요법에 이어 올해에는 첩약 시범사업이 시작됐지만,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정부 정책에 한의계는 여전히 소외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한약제제의 확대, 한의물리치료 등 보다 다양한 한의치료기술에 대한 보장성 강화가 필요하며, 또한 헌법재판소에서 한의사의 사용을 인정한 5종의 의료기기, 복지부에서 수차례 한의사의 면허범위라고 인정한 소변·혈액검사 등도 건강보험 적용이 되어야 할 부분이다.
특히 한의 보장성 강화와 더불어 양의계 중심의 의료독점을 개선, 적어도 일차의료 영역에서는 한의사도 역할영역에 구분 없이 온전한 의료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뒤따라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의료인인 한의사의 적극적인 활용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지금 이 순간도 양의계의 의료독점으로 인해 한의치료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분야임에도 다양한 분야의 시범사업 참여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례로 코로나19 대처를 위한 한의인력의 참여 거부를 비롯해 민간 차원에서 진행돼 호평을 받았던 ‘한의사 장애인주치의’ 제도, 한의의료의 커뮤니티케어 참여, 한의약 난임치료 지원사업의 제도화, 만성질환 관리제 등과 같은 한의의료기관의 일차의료 강화 정책 참여 등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앞으로의 의료패러다임은 급격한 고령화 등으로 인해 일차의료 강화와 만성질환 관리의 영역으로 초점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한의치료는 그동안 이러한 영역에서 충분한 치료효과를 내고 있으며, 건강보험 적용 등과 같은 제도적인 여건만 양의계와 동등하게 갖춰진다면 충분히 국민들에게 보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건강보험과 달리 보장성이 비슷하게 적용되는 자동차보험에서의 국민들이 한의진료를 얼마만큼 선호하는지만 확인해봐도 여실히 증명되는 부분이다.
앞으로 협회에서는 한의사가 역할영역 제한 없이 온전한 의료인의 역할을 수행해낼 수 있는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해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다.
Q. 이번 첩약 시범사업도 결국에는 정부 발주의 연구로 이뤄진 결과물이라고 생각된다. 향후 한의약 발전을 위해 연구자의 입장에서 어떠한 연구가 필요하며, 그 방향성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임병묵 교수: 그동안 한의 건강보험의 급여 범주가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다가 근래 들어 추나요법 급여 적용,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등 굵직한 급여화 성과가 있었다.
이제 남은 가장 큰 영역이 복합한약제제의 급여화라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복합한약제제의 급여화되고 급여 처방이 일본이나 대만 수준 정도로만 되어도 국민들의 한의약의 이용 획기적으로 증가될 수 있고, 한의학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많은 한의사들의 진료가 침구 시술 위주지만 복합한약제제 급여화를 통해 양방 내과·소아과 같은 처방 중심으로 진료행태도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또 한약제제 분업과 연계된 급여화를 통해 약사, 한약사와의 파트너쉽도 구축해야 불필요한 직능 갈등도 크게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Q. 시범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참여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참여 한의원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경호 부회장: 첩약 시범사업은 일본이나 중국, 대만에서는 오랜 기간의 임상경험과 과학적 연구를 통해 효과와 안전성이 확보된 수준 높은 치료법으로 간주돼 이미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이제야 막 걸음마를 뗀 단계다.
그만큼 이번 시범사업은 반드시 성공적으로 진행돼 보다 폭넓은 질환에 첩약 치료가 건강보험 적용이 될 수 있는 근거를 착실히 구축해 나가야 하며,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참여 한의원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첩약 시범사업이 논의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선 한의의료기관들이 어려운 진료환경 속에서도 충실하게 진료에 매진해 국민들이 첩약에 대한 효과를 직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첩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의 필요성을 제기한 부분이 가장 클 것이다. 시범사업 역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환자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진료에 매진해 가고, 시범사업에서 제시된 지침에 맞춰 참여해 나간다면 자연스레 첩약에 대한 안전성·효과성에 대한 근거가 쌓여, 결국에는 국민은 물론 한의계가 바라는 최상의 결과물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첩약이 모든 질환에 첩약의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그날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진행해 나갔으면 하는 부탁이자,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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