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길은 없었다. 누군가가 처음 발걸음을 내딛었고, 그 발걸음을 뒤따라 또 다른 이가 걸음을 옮겼기에 길은 생겨났다. 의료기기도 마찬가지다.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 생리, 병리, 해부학적 지식으로 접근하다 어딘가 한계에 봉착하면서 좀 더 세밀한 진단기기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런 시점에서 청진기는 물론 X-ray, CT, MRI 등 진단장비가 현대과학의 산물로 속속 개발됐고, 이것들이 의료기술과 접목되면서 현재와 같은 첨단 의료장비 시스템을 구축하게 됐다. 과학자들이 길을 개척했고, 그 뒤를 따라 의료인들이 걷게 됐으며, 그 길은 넓게 확장돼 인류의 건강한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하지만 유독 국내의 경우는 DMZ(비무장지대)처럼 꽉 막혀있다. 의료기기 진입대로에 거대 장벽이 놓여져 있다. 한의사의 진입은 절대 사절이다.
이는 길의 속성을 너무도 모르기 에 잠시 벌어진 해프닝에 불과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번 뚫린 길은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길은 곧 누구나가 걷게 된다. 길의 본질이 그렇다.
훗날 긴 역사를 반추하게 되면 현재의 진입장벽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비판의 칼날 위에 서게 될 것이다.
한의사들의 의료기기 사용을 사사건건 고소고발로 맞선 의사들의 저열한 행태, 양의계의 회세에 눌려 늘 애매한 태도로 일관한 정부의 복지부동 역시 잘못된 대표적 행정 사례로 그 오욕(汚辱)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당장 지난 9일 결정된 대검찰청의 처분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환자를 돌봄에 있어 보다 정확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한의사가 체외충격파치료기를 사용했다. 이에 대해 양의사들은 고발했고, 이 사건은 서울지방검찰청-서울고등검찰청-대검찰청까지 이어지는 항고와 재항고를 거치면서 모두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됐다.
이에 앞서 지난해 8월에도 대구지방검찰청은 CO₂ 레이저 조사기를 이용해 여드름 질환을 치료했다는 이유로 고발된 한의사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린바 있다.
이처럼 계속하여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미 열려있는 길은 의사만을 위한 외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인이면 누구나 걸을 수 있는 보편적 통로이지, 특정 직역에만 허용된 일방통행이 결코 아닌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양상은 더욱 더 흔해 질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과 과학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양산된 문명의 이기(利器)는 더 이상 어느 특정직역의 독점 도구로 남을 순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도구가 만인을 위해 확산될 필요가 있다면, 반드시 확산, 공유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 같은 필요성이 모두가 함께 걷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