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는 달린다

기사입력 2007.11.0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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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들에게 한의사라면 어떤 이미지부터 떠오를까. 허준·동의보감·대장금 등 한의학과 관련된 내용들부터 생각날 듯하다.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이고 여백의 미를 갖춘 사람 혹은 나이 지긋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도 연상될 수 있다.

    만약 자동차 레이싱을 즐기는 한의사라면. 색다르다. 지난달 21일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2007스피드페스티벌 제6전’에서 만난 한의사 서봉원(33·‘마이 플’ 한의원 원장)씨가 그랬다.

    스피드페스티벌은 국내 유일의 원 메이크 레이스(one make race)대회로 동일차종을 가지고 스피드를 겨룬다. 현재 ‘클릭’과 ‘세라토’ 등 2대의 차종만 출전이 가능하다.

    또 선수들의 능력과 경력을 평가해 챔피언과 챌린저 클래스로 나눠 따로 경기한다. 경험이 미숙할수록 상황대처능력이 떨어져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안정성을 고려한 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의 배려다.

    올해로 경력 3년의 베테랑 서 원장은 이날 ‘클릭’ 챔피언 클래스에 참가해 8위라는 좋은 성적을 달성했다. 레이싱 입문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둔 셈이었다. 경기방식은 본선을 두 번하는 투 히트(two heat)제로 최종본선결과가 곧 순위가 된다. 기록경쟁인 예선을 거쳐 출발순서를 정하고 첫 번째 히트인 15랩을 치른 후에 히트 1순위에 따라 히트 2 출발 순서를 재배정해 20랩으로 결승을 벌인다. 서 원장처럼 경력이 오래될수록 노련미가 살아나 순위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기방식이다.

    “최고 기록이다. 좋은 성적보다는 한계를 뛰어 넘고 싶은 열망이 컸는데 소망이 이뤄져 기쁘다. 자리다툼에서 기회를 잘 포착한 것 같다. ”

    유니폼 안에 입은 서 원장의 흰색 반팔 티셔츠가 땀으로 흥건할 만큼 레이싱은 상당히 격렬했다. 이날 전복사고로 인한 적색깃발 신호도 몇 차례나 있을 정도였다. 물론 특수 안전장치 덕분에 선수들의 부상은 경미한 정도에 그쳤다.

    출발 5초전 선수들은 바짝 오른 긴장감에 절정의 카타르시스에 빠진다. 20~30대의 차가 묵직한 굉음과 함께 동시에 출발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 이어 코너를 돌 때마다 ‘끽~’하는 스키드 음이 그치질 않는다.

    ‘SLOW IN FAST OUT’. 서 원장은 “동일 차종으로 스피드를 요구하는 레이싱에서의 실력 차이는 코너 안쪽에서 얼마만큼 부드럽게 운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무조건 액셀을 밟는다고 해서 속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브레이킹, 핸들링, 액셀링이 춤추듯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차 상태도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 평상시 엔진오일을 종종 바꿔줘야 하고 타이어 마모도 잘 돼 있어야 한다. 너무 닳아서 폐타이어 직전의 상태가 레이싱에 최적이다.‘엔진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실력 있는 선수일수록 이를 잘 지킨다.

    “레이서들은 성격이 과격할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자동차 경주는 ‘멘탈(mental) 스포츠’라고 할 수 있거든요. 침착하면서도 강인한 정신과 뚝심이 필요한데 그런 점에서 한의사라는 직업이 많은 도움이 돼요.”

    고교시절 딱히 한의사를 꿈꾸지는 않았다고 했다. 자동차를 너무 좋아해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지만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동의보감 소설을 보고 매료당해 진로를 급선회했다.

    “후회는 없어요. 레이싱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차에 대한 갈증을 채울 수 있는 것 같아요. 건강한 남자라면 스피드에 대한 열망 정도는 필요하죠. 삶의 활력소예요.”

    서 원장은 근·골격 통증을 앓고 있는 선수들 사이에서 주치의로도 유명했다. 경기당일도 같은 챔피언 클래스에서 활약하는 홍일점 이지현(33·회사원)씨가 심한 허리통증을 호소했다. 침과 수기치료를 받은 이 씨는 “훨씬 수월하다”며 “가끔 요통으로 고생하는데 봉원씨가 있어 내심 든든하다”고 만족감을 피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씨는 히트 1에서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차체가 부서졌지만 다행히 특수 안전장치 덕분에 별다른 부상은 없었다.

    서 원장은 “지나친 경쟁 심리는 사고를 유발한다”며 “레이스를 제대로 즐기려면 순위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승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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