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철 교수

기사입력 2011.08.1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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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본치료(本治)의 의미
    꼭 알아야 할 한약이야기 - 39

    한약은 원인을 치료하고 양약은 증상을 치료하는가? 오래 전 의과대학 약리학교수와 한약과 양약의 차이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약은 원인요법 없이 대증요법을 주로 쓰지 않느냐는 것이다. 서양약은 대증요법을 주로 하고 한약은 근본치료를 한다고 알고 있었던 내게는 다소 충격이었다. 그 교수의 요지는 서양약에는 인슐린이나 항생요법 같은 원인치료제가 있지만 한약에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대증요법은 질병의 원인을 치료하는 방법인 ‘원인요법’의 반대 개념으로 질병을 치료할 때 어떤 증상을 감소시켜 환자를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통증이나 발열 등이 나타날 경우에 사용되는 해열제나 진통제를 비롯하여 심한 기침에 사용되는 진해제, 알레르기에 사용되는 항히스타민제 등은 모두 대증요법 치료제이다. 반면 항생제나 화학요법제를 비롯하여 제1형 당뇨병에 사용되는 인슐린 등은 원인요법제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학에서는 원인요법이 없는 질환에 대해서는 대증요법을 쓴다. 인플루엔자와 같은 대부분의 바이러스 질환에서는 비록 원인이 알려졌다고 하더라도 대증요법이 유일한 치료법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본다면 대부분의 서양약들은 증상을 없애주는 대증요법제이다. 그래서 서양의학에서는 약물을 ‘정상적인 생리 현상을 바꾸어주는 물질’로 정의한다.

    한약치료도 역시 상당 부분 대증요법이다. 마황을 지해평천 효능으로 사용할 때는 서양의학에서 사용하는 에페드린의 기관지 확장효과와 마찬가지로 대증요법이다. 거풍습약물들도 풍습비통에 사용될 때는 서양의학에서 퇴행성관절염 등에 사용하는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와 유사한 대증요법이다. 불면에 사용하는 안신약이나 지혈약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청열해독약이 가지는 항생효과는 원인요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학부생들에게 한약도 서양약과 마찬가지로 대증요법제가 많다는 강의를 할 때면 이에 반대하는 질문들이 쏟아진다. 이는 한약도 상당수가 대증요법제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며, ‘원인요법’과 ‘본치’를 같은 개념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양약과 한약의 차이는 무엇일까? 70년대 말 저명한 미국의 약리학자가 한 달 정도 중국을 방문하여 중의학을 관찰한 뒤 쓴 리뷰논문에서는 서양의학의 약리학자에게 새롭게 비춰진 중의학치료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전체론적(holistic) 관점이다.

    눈에 질환이 있어도 발을 치료하며, 질병을 치료할 때 그 부분만 보지 않고 다른 부분과의 관계를 보는 방법은 서양의학에서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약이 근본질환을 치료한다는 의미는 서양의학에서의 원인요법과는 다르다.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 체내 장기의 조화를 중시하는 한의학에서는 조화가 깨어진 것을 바로잡는 치료를 한다.

    예를 들어 서양의학에서 간염 환자에게 원인균에 대해서 감수성이 있는 항생물질을 투여하는 것을 원인요법이라고 한다면, 한의학에서는 원인균이 왜 인체에 침입하게 되었는지를 따져서 내부 장기 및 외부 환경과의 관계를 개선해 주려는 치료를 한다. 또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을 길러서 스스로 치료하게 한다.

    이것이 한의학에서 이야기하는 근본치료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본치를 중시하기 때문에 ‘보약’과 함께 ‘표본완급’이나 ‘부정거사’ 등의 치료원칙이 발달되어 있는 것이다. 효과적인 약물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서양의학과 한의학은 질병의 원인을 다르게 보기 때문에 ‘원인요법’과 ‘본치’의 개념이 다르다는 사실과 함께 상당수의 한약들이 양약과 마찬가지로 대증요법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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