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의 儒醫列傳 87

기사입력 2007.12.1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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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구술에 뛰어나 東班까지 올라간 儒醫

    조선 중기에는 유명한 儒醫들이 많이 활동했던 시기이다. 이 시기의 중심인 선조시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金應南, 吳億齡, 楊禮守, 許浚, 朴春茂, 沈發, 金榮國 등이 선조의 질병을 살펴보기 위해 진찰하는 내용이 쓰여 있다.

    이들은 선조의 질병을 문진하고는 그 방안을 토론하면서 치료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특히, 1597년인 선조 30년의 기록에는 선조의 耳鳴症을 面部의 聽宮, 風, 手部의 外關, 中渚, 後谿, 腕骨, 合谷, 足部의 大谿, 俠谿 등을 각각 양쪽에 침을 놓았고, 偏虛症에 手部의 肩 , 曲池, 通里와 足部의 三里 등 각각 양쪽 穴에 침을 놓았다. 그리고 겨드랑이 밑에 氣流注症에는 足部의 崑崙, 陽陵泉, 承山 등을 각각 양쪽 혈에 침을 놓았다.

    이 기록에 항상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李公沂가 바로 그이다. 李公沂는 특히 鍼灸術에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고 있었기에 침과 뜸을 시술한 기록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李公沂는 1586년에 왕비의 咽喉症을 치료한 공으로 東班의 직을 제수 받았고, 다음해에는 許浚과 함께 상을 받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에는 명나라 부상병의 치료를 담당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가 침구술에 뛰어났기 때문이다. 1595년에는 東宮을 陪從한 공으로 嘉善大夫에 올랐고, 1604년(선조 37)에는 임진왜란 때 임금을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 3등인 忠勤貞亮扈聖功臣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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