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염병 치료로 유명했던 正祖時代 民間의 儒醫
朴尙敦은 慶尙道 漆谷人으로서 영조와 정조시기에 걸쳐 활동한 민간의사로 전염병을 잘 치료한 의사였다. ‘日省錄’의 기록에 따르면 정조 10년(1786년)에 경상도 관찰사로 있었던 鄭昌順이 朴尙敦의 ‘疹疫方’을 조정에 진상하였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이를 兩醫司(典醫監과 內醫院을 말함)에게 보내어 이를 시험해보도록 하였다. 그 결과 기록되어 있는 治法이 매우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한글로 풀어서 八道에 보내도록 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朴尙敦이라는 의사가 서민들의 치료를 담당한 일개 평범한 의사였다는 점을 알 수 있고, 또한 평범한 의사였음에도 국가기관에서 그 치료술을 인정할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낼 수 있다. 이것은 당시 조선의학의 전체적인 수준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朴尙敦의 이름 앞에 ‘幼學’이라는 호칭을 붙인 기록이 나오는데, 幼學이란 벼슬하지 않은 儒生을 말하는 것으로 朴尙敦이 본래 儒者였음을 말한다.
朴尙敦같은 儒醫의 醫書가 조정에 전달되어 전국에 배포되게 된 데에는 조선 후기의 의학의 주도세력이 이미 民間에서 활동한 儒醫들이었음을 反證하는 것이다. 조선 후기는 새로운 발전의 시기이다. 이전에는 국가가 중심에 서서 의료의 발전을 주도하였다면, 이 시기부터는 민간의 자생적 연구가 중심이 되게 된 것이다.
‘醫門寶鑑’, ‘方藥合編’ 등 ‘東醫寶鑑’의 업그레이드판 서적들의 출판과 ‘攷事撮要’, ‘攷事新書’ 등 本草書籍들의 출간, ‘鍼灸經驗方’, ‘鍼灸要訣’ 등 鍼灸學書籍들의 출간 등은 이 시대 의학이 이론과 실제 모두의 측면에서 발전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이러한 서적들의 많은 수가 국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 출간된 것이라는 점은 이 시기 민간에서의 한의학의 자생적 발전을 증거한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