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의 儒醫列傳 81

기사입력 2007.11.0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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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擧子業을 포기하고 家業繼承을 선택한 儒醫

    儒醫가 된 이유는 다양하다. 醫學의 이치와 儒學의 이치가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儒者가 醫學에 관심을 가져 儒醫가 된 경우가 가장 많은 이유이지만 자신의 질병, 부모의 질병, 사회적 변혁에 따른 진로의 전환, 利用厚生을 실현하고자 하는 實學的 人生觀, 道敎養生術 등에 대한 硏究 등의 이유도 있다.

    그러나 儒家의 집안에서 태어나 家業 繼承의 차원에서 儒醫가 된 경우도 있으니 尹東里가 그러한 예이다. 楊禮壽나 康命吉도 가업 계승의 차원에서 의학을 시작했지만, 궁중에서 공적을 쌓은 후에 身分이 상승되어 儒醫의 반열에 오른 경우이므로 尹東里의 경우와 차이가 있다.

    尹東里의 자는 子美 호는 草窓이며, 파평윤씨의 시조 尹莘達의 26세손 윤이교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숙종 31년(1705)에 출생하여 정조 8년(1784)에 80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친 醫家이다.
    그는 의학을 업으로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季父인 尹雨敎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그는 ‘草窓訣’이라는 의서를 저술하였다(金準泰의 ‘尹草窓의 生涯와 草窓訣에 關한 硏究’).

    尹東里의 ‘草窓訣’은 한국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運氣學說만을 전문적으로 다룬 최초의 서적이다. 중국의 宋代에 性理學의 발전과 더불어 일대 극성기를 맞이하였던 運氣學說이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醫方類聚’, ‘東醫寶鑑’ 등에서 한국적 운기학으로 다시 꽃이 피게 되었고, 이러한 연장선에서 尹東里가 ‘草窓訣’을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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