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서 편찬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儒醫
우리나라 의학의 황금기는 아마도 조선 초기 세종년간이 아닐까 생각된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의서의 편찬에 적극적이었고,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당시 세계 최고의 의서인 ‘醫方類聚’의 편찬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의 시기였다.
태종 때부터 醫官으로 근무하면서 학적 능력을 쌓아나간 朴允德은 당대에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1417년 태종 17년에 전의감주부를 지낸 후에 1424년 세종 6년에 명나라 사신인 李郎中의 병을 치료하더니 이듬해에는 두 차례에 걸쳐서 왕의 병을 치료해 내어 두터운 신임을 쌓아갔다.
그는 임상적 능력뿐 아니라 학술적 능력에서도 뛰어나 의서 편찬에 적극 관여하게 되었다. 1431년에 典醫監副正으로서 盧重禮·兪孝通과 ‘鄕藥採取月令’을 편찬한 것과 1433년에 기존의 ‘鄕藥濟生集成方’을 바탕으로 ‘鄕藥集成方’을 편찬한 것이 그것이다. 1438년에는 노중례·유효통·權採와 함께 ‘新增鄕藥集成方’을 편찬하게 된다.
鄕藥은 이 시기 의학계의 중요한 화두였기에 이의 국가적 육성은 의학계의 열망이었다. 세종이 중심이 되어 향약의학의 체계화를 시작한 것이다. 고려시대 후기부터 발달하게 된 鄕藥醫術을 체계화하여 이를 조선의 중심 의학으로 자리잡게 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 시기에 결실맺게 되는 것이다.
박윤덕은 의학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로 학술적 역량으로도 인정받아 의서 편찬에 큰 역할을 하여 후대에까지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