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草書에 뛰어난 醫官 出身 儒醫
의사집안에서 성장하여 어릴 때부터 의학을 수업하면서 학문 연마에 힘써 당대의 꼽히는 지식인이었던 玄在德은 현대를 살고 있는 한의사들이 직업인으로서의 책무를 돌아보게 해주는 인물이다. 그는 醫官으로서 보다는 文人이나 書藝家로 더 알려진 인물이다.
본관은 川寧, 초명은 應遠, 자는 士說, 호가 엄 山인 玄在德은 1790년 19세의 나이에 醫科에 급제하여 醫官으로서 활동하면서 뛰어난 학술적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특히 정조는 그의 글씨에 감동하여 벼루를 하사하기도 하였고, 그리하여 碑版을 도맡아서 쓰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草書에 뛰어나 생명력이 있는 필치를 휘둘러 그의 글씨체를 엄산체라고 명명하기도 하였다. 그는 옛글씨를 모아서 ‘草彙’라는 책으로 묶는데, 이것은 나중에 金正喜의 칭송을 받은 책이다. 그는 의관으로 뿐 아니라 관리로도 성공하여 관직이 壯營監書를 거쳐 知中樞府事에까지 이르렀다.
그에게 탁월한 의학적 업적이 있다. ‘本草類涵要領’의 편집이 그것이다. 이 책은 1833년에 玄在德이 지은 책으로 간행은 되지 못하였지만, 조선 후기 한국 한의학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수작이다. 안상우의 연구에 따르면 이 책은 이전에 지은 ‘本草類函’을 바탕으로 교정하는 형식으로 만든 책이라고 한다. 또한, 그 구성이 전통적인 본초서의 체제를 갖고 있으며 ‘神農本草經’의 三品 분류에 의거한 약재분류 방식에 비해서는 한결 발전된 체계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조선 후기 지성인으로 활동한 醫官 玄在德은 현대 한의사들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