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진의 醫文化 칼럼8

기사입력 2007.07.2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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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학번으로 식물학과에 입학한 신입생 15명은 일반 생물학 첫 시간에 교수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모든 생물학 분야를 관통하고 있는 이론이 무엇이냐?”

    15인의 식물학도들은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녀석, 한국 최고의 식물학도라는 자부심이 자기 마음 그릇보다 컸던 그 녀석은,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도 모른 채, 두 눈을 부릅뜨고 곧 교수님의 입에서 쏟아져 내릴 답을 낚아채려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이윽고 교수님께서 답을 말씀하셨다. 답은 싱겁게도 단 3글자, ‘진’, ‘화’, ‘론’이었다. ‘초·중·고등학교를 지내면서 자연·생물 시간에 보고 들어왔던 그 진화론 말이야? 에이, 시시하군’ 그 녀석의 냄비 같은 성격은, 그 이후 진화론과의 이 싱거운 만남을 기억조차 하지 않았다.

    17년 후 한의사로 살고 있던 그 녀석 앞에 진화론이 거대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기억 속의 작은 편린에 불과했던 그 첫 만남이 일순간 되살아났다. 문제는 지금 마주친 그 진화론이 예전처럼 싱거운 존재가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마치 별 볼일이 없어 차버렸던 옛 애인이 크게 성공하여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이번에 다시 만난 진화론은 17년 전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유전학자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의 말이었음도 알려주었다. 도브잔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병을 고치고 싶으면 병이 뭔지 고민해야 하고, 병을 앓는 인간이 뭔지 고민해야 한다. 좀 더 꼬리를 물다보면, 생명은 무엇인지, 죽음은 무엇인지,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까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취향에 맞는 답을 찾아 나서겠지만, 그 녀석은 아마도 진화생물학 속에서 그 답을 찾고자 노력 중인 것 같다. 자신의 뇌를 못 믿겠다고 떠들던 녀석이 요즘은 ‘생명현상의 보편타당함’을 화두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은 1859년 처음 출간되었다. 미국의 몇몇 언론인들이 21세기의 시작을 기념하며, 과거 1천년동안 인류에 큰 영향을 미친 1천명을 선정하였는데, 다윈의 이름은 1천 명 중 일곱 번째, 과학자만 따져서는 갈릴레오와 뉴턴에 이어 세 번째에 올려졌다. ‘통섭’으로 유명한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다윈의 진화론이 생물학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법, 철학, 심리 등의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물론 음악, 미술 등의 예술 분야에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의 ‘사회생물학’, 존 투비(John Tooby)와 레다 코스미데스(Leda Cosmides)의 ‘진화심리학’, 조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의 ‘다윈의학(Darwin Medicine)’ 등등 진화생물학은 맹렬한 기세로 생물학 분야를 넘어 인간의 문명 전체를 해석해나가고 있다.

    란돌프 네스(Randolph M. Nesse)와 조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가 지은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는 진화생물학의 관점을 의학 분야로 확장시킨 결과물이다. 한의사라면 한번 쯤 들어봤고, 생각날 때마다 환자들에게 들려줬음직한 해열제에 대한 주의사항, 즉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은 감염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해열제를 써서는 안 된다’는 그 말이 바로 이 책 속에 있다(물론 이 말에 대한 주의사항도 같이 적혀 있다).

    생각해 보면, 한의사로서 진화생물학과 다윈의학에 관심을 갖는 것이 그리 생뚱맞은 일만은 아닌 것이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이 서양의학보다 한의학에 더 가깝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두 학문이 공통적으로 보다 넓은 차원에서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기 위해서’라는 식의 목적론적 설명에 대한 비판, 진화론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 다윈의학을 접한다면 한의사로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의 양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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