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鄕藥救急方’의 跋文을 쓴 儒醫
인생에서 운이라는 것은 중요한 삶의 요소이다. 그러나 운만 기다리는 사람에게 행운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운과 노력이 모두 뒷받침되어야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인물로 尹祥을 꼽을 수 있다.
조선 초기에 활동한 尹祥은 鄭夢周의 학통을 잇고 있는 학자로서 과거에 급제한 후에 교육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였다. 尹祥이 출세하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의 행운과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예천군 향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역성혁명에 반대한 鄭夢周의 제자 趙庸이 예천으로 유배를 오게 되어 그로부터 性理學을 전수받아 과거에 급제하여 조선 초기에 이름을 떨친 인물이 된 것이다.
1396년에 과거에 급제한 후 선산, 안동, 상주, 한성 등의 敎授官이 되었고, 예조정랑 때에 서장관으로 燕京에 다녀와서 성균관사예가 되었다. 1448년에는 특명으로 박사가 되어 선비들의 귀감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오랫동안 성균관에서 교육에 종사하여 그의 가르침으로 과거에 합격한 인물하여 이름을 떨친 인물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저서로 ‘別洞集’이 있다. 이 책의 2권에는 고려시대 醫書인 ‘鄕藥救急方’의 跋文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가 의학에 밝았기 때문이다. 그는 性理學의 기초인 易學에 밝았는데, 이것은 의학연구와도 이어진 것이다. ‘鄕藥救急方’의 跋文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鄕藥救急方은 매우 神驗함이 있다. 이 책에 싣고 있는 모든 약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알고 얻을 수 있는 약물들이며, 약물의 배합법과 복용법도 또한 일찍이 경험한 것들이다. 서울이나 큰 도시에는 의사가 있지만, 궁벽한 시골이나 후미진 고을에 사는 사람들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여 병세가 매우 긴박한 때 진실로 이 方書만 있다면 扁鵲이나 醫緩을 기다릴 필요 없이 사람마다 모두 구제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