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의 儒醫列傳 65

기사입력 2007.06.0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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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後期 實學派의 女性儒醫

    憑虛閣 李氏는 조선 후기에 활동한 여성 醫人이다. 그는 당시 여성의 교육에 부정적인 사회적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諸書에 박통하여 이미 15세 때에 저술에 능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그녀의 집안이 實學을 전업으로 한 집안이었다는 것과도 관련이 깊다.

    그녀의 아버지는 判敦領 文獻公인 李昌壽이고, 어머니는 ‘諺文誌’를 집필한 유희의 고모이다. 게다가 그녀는 徐命膺의 손자이자 徐浩洙의 아들인 徐有本의 부인이었다. 徐命膺이 누구인가. 바로 北學派의 비조로 利用厚生을 축으로 하는 학문정신으로 유명하였다. 특히 太極, 陰陽五行 등의 易學과 四端七情 등 理氣에 조예가 깊었고, 自然科學, 音律·農業 등 다방면에 걸쳐 학문적 능력을 발휘한 인물이 아닌가? 그녀는 이러한 집안 대대로 내려온 개방적·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학문을 연마하여 여성 실학자로서 이름이 높았다.

    그녀는 1809년에 ‘閨閤叢書’라는 여성용 백과사전을 편찬해 내는데, 이것은 조선 후기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연구의 참고자료가 된다. 이 책은 酒食議, 山家樂, 靑囊訣, 術數略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특히, 靑囊訣의 부분에는 의학과 관련된 胎敎, 育兒, 救急, 雜著 등 의학적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내용들은 경험방과 구급방의 필요성에 어느 정도 부응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여성들의 의학적 지식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은 한글로 기록되어 있어서 여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어서 한글로 쓰인 醫書 연구의 중요한 자료중의 하나이다.

    여성의 인권이 날로 상승하고 있고 여성 한의사들의 사회적 역할이 증대하고 있는 이즈음에 빙허각 이씨는 현대 여성의료인의 귀감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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