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武臣으로 內醫院提調까지 오른 儒醫
무예가 뛰어나 건주위 정벌에까지 참여했던 朴英은 文武를 겸전한 儒醫로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다. 武科에 급제하여 武臣으로서 출세하였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학문 연마에도 힘써서 김굉필의 학통을 잇기도 하였다고 한다. 1506년 중종반정 이후에는 조병장을 거쳐 강계부사, 의주목사, 동부승지 등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특히 1518년에는 내의원제조에 임명되는데, 이것은 평소부터 의학에 대한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저술로 ‘松堂集’, ‘經驗方’, ‘活人新方’, ‘白鹿洞規解’의 네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經驗方’과 ‘活人新方’의 2종이 의학관련 서적이다. 두 의서가 현존하지 않기에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經驗方’은 평소에 많이 사용하여 치료효과를 거둔 처방들을 분류한 方書이고, ‘活人新方’은 구급의학 위주의 의서로 생각된다.
‘기재잡기’에 의하면 그는 남의 안색과 말을 잘 살폈고 천문, 지리, 성명, 산술에도 능통하였으며, 특히 ‘周易’에 능통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김해부사로 있던 시절에 다른 남자와 사통한 여자가 남편을 살해하고 거짓으로 울부짓는 목소리를 듣고 이를 조사하여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여자의 목소리가 슬퍼서 우는 목소리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죽은 남편 사체를 조사하여 보니 배꼽 가운데에 손가락만한 긴 가시가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여 타살임을 밝힌 것이다.
의학에 능통하여 임금과 부모, 만백성의 질병을 치료해주어야 한다는 儒者의 의무를 충실히 지킨 조선 전기 지식인 朴英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