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의 儒醫列傳 60

기사입력 2007.05.0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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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역치료의 時務를 몸소 실천한 儒醫

    조선 후기는 상공업의 발달로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어 도시화가 촉진되면서 이에 따른 질병이 창궐하게 되었다. 당시 소아들을 괴롭혔던 질병으로는 痘瘡·麻疹이 있었고, 醫家들은 이에 대한 대책에 골몰하였다.

    ‘麻科會通’, ‘任瑞鳳壬申方’, ‘麻疹方’, ‘麻疹彙成’, ‘麻疹秘方’, ‘麻疹篇’ 등이 이러한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편찬된 의서들이었다. 丁若鏞, 李獻吉, 劉以泰, 任瑞鳳 등 儒醫들이 대거 麻疹 硏究의 대열에 서서 치료 대책에 부심할 정도로 麻疹에 대한 치료는 지식인들의 관심사였다.

    우리는 麻疹 治療라는 시대적 요청을 완수하고자 노력했던 儒醫의 명단 가운데에서 洪奭周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는 영조 때 태어나 헌종 때까지 생애를 살면서 문관으로서 중요 요직을 거친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1795년에는 殿講에서 수석을 하여 直赴殿試의 특전을 받았고, 그해 춘당대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옹원직장을 제수받았다. 1797년에는 승정원주서, 1802년(순조 2)에는 정언, 1807년에는 이조참의, 1808년에는 병조참판, 1815년에는 충청도관찰사, 1832년에는 兩館大提學, 1834년에는 이조판서가 되었고, 그 뒤 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손부를 제배받고 1842년에 죽었다고 한다.

    이렇듯 수많은 관직을 두루 거쳤지만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 10여종의 저술을 내기도 하였다. 저술 가운데 ‘麻方統彙’라는 麻疹 관련 저술이 들어 있다. 이것은 마진이 창궐하여 고통받는 백성들의 자녀들에 대한 깊은 책임감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표상으로 삼을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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