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진의 醫文化 칼럼2

기사입력 2007.04.2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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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은 결코 과학과 같지 않다

    “자연과학·사회과학·인문학·예술을 포함하는 것이 ‘의학’이다”

    학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어떤 의사가 ‘의학=과학’이라고 칠판에 적었다. 이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주며 그를 흉본 사람이 있으니, 그 의사가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대다수 한의사들이 나와 같은 견해이리라 생각한다.

    내게 한의학을 가르쳐주신 선생님께서도 ‘의사는 박물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결코 ‘과학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얼마 전 한의사 친구를 통해 대학병원에서 한 달 동안 주사·약물치료를 받고도 호전을 보지 못한 사마귀 환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처방을 해주니 호전이 되더라는 것인데, 그 처방인즉, 장화와 양말을 하루에 3번 이상 갈아 신으라는 것이었다.

    그 환자의 직업은 주방의 요리사였고, 사마귀가 난 부위는 발바닥이었다. 환자의 직업과 환경을 고려하는 것은 의자(醫者)의 기본인데, 사마귀 자체에만 매달린 대학병원의 의사 이야기를 들으니, 처음에 말한 ‘의학=과학’이라는 협소한 시각이 떠올랐다. ‘의학’은 결코 과학과 같지 않다.

    자연과학을 포함하고, 사회과학을 포함하고, 인문학을 포함하고, 예술을 포함하는 것이 ‘의학’이다.

    린 페이어가 쓴 ‘의학, 과학인가 문화인가’라는 책은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의 의학이 서로 얼마나 다른 모습을 갖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비교가 아닌, 서양의학의 나라별 비교라니 참으로 흥미로운 주제이다.

    요사이 한국에서 의학적 방법론의 유일한 기준처럼 여겨지고 있는 EBM(근거중심의학)이 영국식 경험론의 산물이라는 것과 이와 달리 프랑스 의학에서는 합리적 사고가 경험적 근거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 준다.

    몸이 아프면 간을 먼저 생각하는 프랑스 의사들, 이에 반해 심장과 혈액 순환을 먼저 생각하는 독일 의사들, 유방암이 발견되면 가장 공격적인 절제수술을 선택하는 미국 의사들, 미학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최대한 보존적인 치료를 선택하는 프랑스 의사들, 이런 의문화(醫文化)의 차이는 결코 의학이 세계 공통의 과학이 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의학은 어느 나라에 가까운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렌에 의해 이식되고 한국전쟁을 거쳐 확립된 미국식 의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인들도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여, 미국식 의학의 일방적인 유입에 대해 비판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선진 의학을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 의문화(醫文化)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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