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의 儒醫列傳 59

기사입력 2007.04.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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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들을 위한 의학 보급의 높은 뜻 가졌던 최고의 지식인

    고려 고종년간에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국정을 주도했던 李奎報는 뛰어난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다.

    ‘東國李相國集’이라는 저술로 유명한 그는 10대 초반부터 ‘奇童’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문장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명문가 출신으로 여러 목에 발령받아 돌아다니기도 하였지만, 최씨 정권기간에 중앙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몽고의 침입 등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돌봐 국난 극복을 독려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지은 여러 시문 속에 나오고 있다.

    ‘東國李相國集’뿐 아니라 ‘白雲小說’, ‘麴先生傳’ 등의 저술이 있는데, 그의 시문들은 대부분 ‘東國李相國集’에 실려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 저술에 실려 있는 그가 지은 ‘禦醫撮要方’의 서문이다. ‘禦醫撮要方’은 1226년에 崔宗峻이 왕실에서 내려오던 처방들 중에서 긴요한 것들을 모아서 간행한 醫書이다.

    ‘禦醫撮要方’은 최근 북한의 자강도 인민병원의 주규식 박사의 40여년간의 작업에 의해 복원된 유명한 의서이다. 주규식 박사는 ‘鄕藥集成方’, ‘醫方類聚’에 나오는 ‘禦醫撮要方’ 관련 내용들을 수집하여 이를 130여 조문으로 복원하였다. 李奎報가 지은 자작시에는 의약에 대한 기록들이 보이는데, 이것은 그가 평소부터 의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崔宗峻이 자신의 저술에 서문을 부탁하게 된 것도 평소부터 가졌던 의학에 대한 능력을 주변사람들이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李奎報는 서문에서 의학의 중요성과 간편한 의서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데, 이것은 무신난, 몽고와의 전쟁 등을 겪으면서 당시 고려에서 시급하게 생각했던 바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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