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의학을 연구하여 儒醫가 되는 과정은 여러 가지로 대별되지만 鄭維仁이 儒醫가 된 과정은 특이한 점이 있다. 중종년간에 활동한 그는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奉掌正에까지 이른 문관이었지만, 20세에 중병으로 신음하면서 이를 극복하고자 수년동안 양생술을 연구하여 상당한 정도의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중종18년인 1523년에 ‘ 生錄’이라는 양생의학 서적을 저술하는데, 이것은 그의 생활 속에서 터득한 의학지식을 총망라한 명저이다. 김휴(金烋)의 ‘海東文獻總錄’에 실려 있는 이 책은 保養總要, 養心神條, 養精元條, 養脾胃條, 導引法, 養法, 朝宜, 暮宜, 晝宜, 夜宜, 天時避忌, 四時調攝, 坐臥, 沐浴, 洗面, 櫛髮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鄭維仁 자신이 경험한 것뿐 아니라 그동안 보편적으로 사용된 양생 관련 保養法을 알기 쉽게 적어서 모든 이들에게 제공하기 위함이다.
선비들이 養生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修己治人”을 실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 유학의 道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자신을 제대로 닦는 방법으로서 학문 연마를 통한 正心과 함께 心身의 修養을 통한 건전한 정신의 함양이야말로 儒家들이 추구하는 이상향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일 것이다.
鄭維仁의 양생을 중요하게 여기는 의학사상은 前代의 ‘醫方類聚’의 학술적 정신과 金時習으로부터 연결되는 朝鮮丹學派의 학술사상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역사적 맥락이 깊은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조선 중기 許浚의 ‘東醫寶鑑’으로까지 이어져 韓國養生學派의 계보를 이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