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宋時烈의 질병을 치료해준 儒醫
효종이 죽은 다음에 상복을 몇 년 입을 것인가를 두고 벌인 禮訟論爭은 宋時烈과 許穆이 벌인 유명한 논쟁이다. 각각 서인과 남인에 속해있던 두 사람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정쟁을 계속 벌이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의학에 대해서 조예가 깊었다. 宋時烈은 ‘三方撮要’라는 醫書의 저자로 유명하며, 許穆은 뛰어난 질병치료로 유명하였다.
양천 허씨인 許穆이 살았던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거치면서 피폐된 조선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를 위해 그는 군주의 권위 회복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체계를 구상하였다.
온라인 신문인 세계닷컴에 나온 시인 강태형의 글에 따르면 송시열은 정적인 허목의 의학지식을 인정하여 중병이 든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허목에게 아들을 보내어 치료처방을 구하였다고 한다. 이에 허목은 송시열에게 비상과 할미꽃뿌리와 부자가 들어있는 처방을 주니, 송시열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를 복용하여 몇일간 혼절하였다가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문화적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인가? 허목은 어린 시절부터 의학에 관한 서적들을 탐독하여 많은 의론을 꿰고 있었고, 이것을 실생활에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많은 사대부들은 의학 연구를 지식인으로서의 덕목으로 여기고 있었으며, 이것은 당파를 초월한 공동의 목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