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의 儒醫列傳 37

기사입력 2006.11.0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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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醫寶鑑’ 기틀 마련한 儒醫

    양예수(楊禮壽)는 명종 및 선조 때의 內醫로 자는 敬甫, 호는 退思翁이다. 태어난 연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대략 中宗 25년(1530년)에 태어나 宣祖 33년(1600년)까지 산 것으로 추정된다.

    명종 18년에 내의원 주부, 동 19년 12월에 예빈사 판관에 올랐으며, 관직이 知中樞府事에까지 이르렀다. 선조 19년 10월에 어의로 임명되었으며, 선조 29년에 왕명을 받들어 許浚이 ‘東醫寶鑑’을 편집할 때에 太醫로서 참가하기도 하였다.

    楊禮壽 硏究의 전문가인 金洪均에 따르면(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醫林撮要』의 의사학적 연구」), 그는 고려 때 원나라에서 귀화한 楊起의 9세손이다.

    醫官出身으로서 경기도 富平府使를 지내기도 하였고 官階가 知中樞府事에 이르렀고, 光國原宗功臣으로 功勳을 세웠으며 뒤에 ‘東醫寶鑑’의 찬집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는 鄭敬先이 지은 ‘醫林撮要’를 교정하였다. 여러 가지 판본이 있지만, 현재 13권본의 ‘醫林撮要’가 전해지고 있다.

    ‘醫林撮要’에는 「歷代醫學姓氏」라는 제하로 역대 의사들을 정리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醫學入門’의 「歷代醫學姓氏」의 영향을 받은 부분으로 ‘上古聖賢·儒醫·明醫·世醫·德醫·仙禪道術’의 내용뿐 아니라 ‘本國明醫’도 추가 기록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明醫’에 대하여 긍지를 높이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中風, 痛風, 傷寒, 溫疫, 斑疹, 內傷, 暑病 등 제반 질병들을 醫論과 처방을 병기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체계는 송대의 陳無擇의 ‘三因極一病證方論’을 모태로 하여 여기에 자신의 분류법을 첨가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오늘날 조선시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東醫寶鑑’의 편성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민족의학에서 ‘東醫寶鑑’이 차지하는 높은 비중을 생각할 때, 이 서적에 대한 재평가가 요구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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