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련적 道敎로 醫學의 門 열어 젖힌 儒醫
정작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溫陽이고, 字는 君敬, 號는 古玉이다. 좌의정 順朋의 아들로 선조 때에는 이조좌랑에 이르렀을 정도로 문신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런데 李廷龜가 1613년에 쓴 ‘東醫寶鑑’ 序文에 ‘東醫寶鑑’ 편찬에 참여한 인물들을 거명하는 가운데 “儒醫정작”이라고 정작을 “儒醫”로 호칭하고 있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정작의 의학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본시 문신이었지만, 의학에 조예가 깊어 평소부터 의학에 밝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왔고 급기야 ‘東醫寶鑑’ 같은 대단위 醫書를 편찬하는 작업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평소부터 시를 즐기고 술을 좋아하여 酒仙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하였고, 특별히 서예에도 뛰어나 초서와 예서를 잘 썼다고 한다. 그가 지은 시들은 그의 형 정렴과 함께 만든 ‘北窓古玉先生詩集’이라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그가 道敎와 관련된 분야에 뛰어났던 것은 그의 형 정렴에게서 받은 영향에서부터 비롯한다. 형 정렴은 養生書인 ‘龍虎秘訣’과 醫書인 ‘鄭北窓方’을 지은 유명한 醫師였다. 중중 39년(1544년)에는 내의원 提調의 청으로 入診하기도 하였지만, 말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양주 계라리에 살면서 養生術을 연구하였다고 한다.
그의 스승으로 알려진 南師古의 영향도 컸다. 南師古는 중종·명종 년간에 활동한 異人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易學에 조예가 깊어 風水, 天文, 卜筮, 相法 등 잡술에 능통하였고, 예언을 잘하여 당시의 정치정세와 미래에 대한 많은 언설을 남긴 奇人이었다. 道敎와 관련지운다면 南師古는 수련적 도교를 신봉하여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였다. 정작은 南師古의 문하에서 수련적 도교를 익히면서 이를 의학에 접목시키려고 뜻을 품었고, ‘東醫寶鑑’의 편찬을 기회로 잡은 것이다.
‘東醫寶鑑’의 內景, 外形, 雜病, 湯液, 鍼灸의 편구성은 순전히 도교적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고, 특히 內景篇의 앞부분 身形, 精, 氣, 神의 내용에는 많은 부분이 養生術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그리고 이들 養生術 관련 내용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수련적 도교가 바탕이 되어 있다.
丹田有三, 背有三關, 保養精氣神, 以道療病, 虛心合道, 人心合天機, 搬運服食, 按摩導引, 攝養要訣, 還丹內煉法, 四時節宣, 導引法 등이 그러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의학과 도교의 접목이라는 기왕의 의서들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참신한 시도의 일단이라고 할 것이다. 정작의 노력은 조선후기 儒家들의 修養論과 연결되어 조선의학의 새로운 전통을 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