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개인적 導引養生·임상경험 통해 양생사상 몸소 실천
李滉(호는 退溪)은 한국의 학계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지에서도 朱熹의 學脈을 잇는 위대한 인물로 추앙되고 있다. 그의 학문은 영남, 근기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남인 실학자들에게 연결되어 조선 후기 사상계, 정치계의 하나의 축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李滉이 당시에 儒醫로 활동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20세에 침식을 마다하고 『周易』을 연구하다가 점점 육체가 쇠약해져 ‘羸悴之疾’을 앓게 되어 의학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고, 어린 시절 ‘心病의 患’을 여러 차례 앓아서 심신이 황폐화되기 하였다.
그는 관리로 임명된 다음에도 여러 차례 질병을 이유로 사직하게 되는데, 기록에 의하면 이것은 40세로부터 50대 중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의 질환은 心病, 溫病, 暑利, 吐泄, 脹證, 痰證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질병과의 투쟁과정에 의학에 대한 연구가 깊이 진행되게 되었고, 급기야 榮川에 있는 醫院에서 醫學의 수업을 받기까지 되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질병 치료에도 깊은 관심이 있어서 서신으로 치료처방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특히 安玹(1501~1560)에게 민응기의 증상을 정확히 써 보낸 서신은 유명하다. 그 서신에는 그가 질병의 원인과 증상을 정확히 집어내고 있고 처방과 혈자리에 대한 설명이 분명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들 자료를 통해 당대의 御醫였던 柳之蕃과 趙晟 등과 깊은 교우관계 속에서 그의 의학에 대한 이해도는 더욱 더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내놓은 처방들로 導赤散, 安神丸, 雙和湯, 補陰丸 등의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가 참고로 하고 있는 의서로 『直指方』, 『明醫雜著』, 『世醫得效方』등이 언급되어 있다. 그의 학술사상의 특징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養生思想이다.
그는 다년간 『구선활인심법』이라는 책을 연구하여 『活人心方』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필사하여 자신의 養生論의 기초로 삼았다. 그는 30대에 이미 양생에 깊은 관심을 가져서 그의 벗과 더불어 『周易參同契』의 수련방법에 대해서 깊은 토론을 하기도 하였고, 46세에는 ‘養眞’이라는 암자를 만들어 養神에 힘쓰기도 하였다.
1972년 퇴계학연구원에서 영인하여 간행된 『活人心方』에는 退溪先生 자필의 導引姿勢圖가 그려져 있다. 敬이 心의 主宰이고 心은 一身의 主宰라는 그의 학술사상은 이러한 실천적 養生論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학술적 성과는 학문적 탐구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 導引養生과 환자들에 대한 임상치료 경험들 속에서 형성되어 완성된 것이다.
△참고문헌: 李鎭洙, 「退溪哲學의 養生思想에 관한 硏究」, 韓國道敎思想硏究叢書 Ⅵ, 亞細亞文化社, 1992.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개인적 導引養生·임상경험 통해 양생사상 몸소 실천
李滉(호는 退溪)은 한국의 학계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지에서도 朱熹의 學脈을 잇는 위대한 인물로 추앙되고 있다. 그의 학문은 영남, 근기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남인 실학자들에게 연결되어 조선 후기 사상계, 정치계의 하나의 축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李滉이 당시에 儒醫로 활동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20세에 침식을 마다하고 『周易』을 연구하다가 점점 육체가 쇠약해져 ‘羸悴之疾’을 앓게 되어 의학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고, 어린 시절 ‘心病의 患’을 여러 차례 앓아서 심신이 황폐화되기 하였다.
그는 관리로 임명된 다음에도 여러 차례 질병을 이유로 사직하게 되는데, 기록에 의하면 이것은 40세로부터 50대 중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의 질환은 心病, 溫病, 暑利, 吐泄, 脹證, 痰證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질병과의 투쟁과정에 의학에 대한 연구가 깊이 진행되게 되었고, 급기야 榮川에 있는 醫院에서 醫學의 수업을 받기까지 되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질병 치료에도 깊은 관심이 있어서 서신으로 치료처방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특히 安玹(1501~1560)에게 민응기의 증상을 정확히 써 보낸 서신은 유명하다. 그 서신에는 그가 질병의 원인과 증상을 정확히 집어내고 있고 처방과 혈자리에 대한 설명이 분명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들 자료를 통해 당대의 御醫였던 柳之蕃과 趙晟 등과 깊은 교우관계 속에서 그의 의학에 대한 이해도는 더욱 더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내놓은 처방들로 導赤散, 安神丸, 雙和湯, 補陰丸 등의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가 참고로 하고 있는 의서로 『直指方』, 『明醫雜著』, 『世醫得效方』등이 언급되어 있다. 그의 학술사상의 특징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養生思想이다.
그는 다년간 『구선활인심법』이라는 책을 연구하여 『活人心方』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필사하여 자신의 養生論의 기초로 삼았다. 그는 30대에 이미 양생에 깊은 관심을 가져서 그의 벗과 더불어 『周易參同契』의 수련방법에 대해서 깊은 토론을 하기도 하였고, 46세에는 ‘養眞’이라는 암자를 만들어 養神에 힘쓰기도 하였다.
1972년 퇴계학연구원에서 영인하여 간행된 『活人心方』에는 退溪先生 자필의 導引姿勢圖가 그려져 있다. 敬이 心의 主宰이고 心은 一身의 主宰라는 그의 학술사상은 이러한 실천적 養生論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학술적 성과는 학문적 탐구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 導引養生과 환자들에 대한 임상치료 경험들 속에서 형성되어 완성된 것이다.
△참고문헌: 李鎭洙, 「退溪哲學의 養生思想에 관한 硏究」, 韓國道敎思想硏究叢書 Ⅵ, 亞細亞文化社,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