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재해석<17>

기사입력 2005.04.2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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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광 중 대구한의대 한방산업대학원장 겸 한의과대학장]

    지금 우리는 시대적 변혁의 중심에 서 있다. 기존에 갖고 있던 가치기준이 달라지면서 생활패턴, 산업패턴 등에 큰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현장이 중시되면서 현장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역량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혁 속에서 한의학과 전통적인 것이 재평가되고 있다. 지금의 시대적 변혁은 우리 한의학이 새롭게 한 단계 뛰어 오를 수 있는 기회로 보여진다.

    그러면 우리의 어떤 면이 시대적 변혁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것일까. 답은 우리가 갖고 있는 동양학이나 동양문화적 기반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서양 주도의 고정관념에 매달려 동양학을 평가하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었기에 이 시대에 우리가 남달리 가진 동양학이나 동양문화의 기반을 당당하게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동양학과 시대적 변혁의 중심인식이 따로 놓여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역량을 모으는데 걸림돌이 되고 아울러 시대적 변혁을 발전의 기회로 제대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요인이 된다.
    원래 동양학이라는 것은 영어로 ‘East Asian Studies’라고 번역되는 개념을 말한다. 이는 주로 한자문화권에서 형성된 중국·한국·일본 삼국의 학문체계로 한문을 빌려 표현한 모든 지적 활동을 지칭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양학을 번역하는 것을 보면 서양학과 반대적 개념인 ‘Oriental Studies’라는 용어를 무비판적으로 쓰고 있다. 우리가 흔히 일상 언어 속에서 쓰고 있는 ‘동양’이란 말은 넓게는 아시아, 좁게는 동아시아를 뜻하며 결코 오리엔트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쓰고 있는 ‘동양’이란 말의 번역으로 오리엔트는 적합하지 못하다.

    ‘오리엔트’라는 말에는 서구의 기독교문화권의 인식을 바탕으로 동·서양을 나눈 다분히 ‘서구적인 관점’에서의 동양에 대한 의미와 생각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우리가 동양을 잘못된 영문 표기인 오리엔트로 쓰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동양학의 독립적 위상을 외치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듯해 씁쓸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는 서양학의 인식기준에 맞춘 동양학의 위상을 갖게 될 뿐이지 본래 동양학이 갖는 본질적 이해와는 거리가 멀다.

    동양학하면 으레 공자, 맹자가 떠오르면서 단순히 인성계발을 통한 정신수양으로, 서양의 물질주의가 갖는 정신적인 면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학문이라는 인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구인 관념에서 보면 동양학은 인성론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나 그 이면에는 현상계의 근원을 추구하는 본체론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동양학의 본질이다. 인성론은 현상계의 근원을 추구하는 본체론을 인식하기 위한 기준이지 학문적 목표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동양학은 현상계의 근원을 추구하는 목표를 ‘천도(天道)’라 하여 자연계의 자연적 움직임 그 자체를 인식의 중심에 두고 우리 사회가 가진 자생적 자정역량을 극대화로 이끌어 사회적 발전을 꾀하는 학문인 것이다. 이 시대가 동양학에 요구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다.

    동양학의 본질적 이해와 시대적 변혁방향을 볼 때 지금의 시대적 변혁의 중심을 제대로 잡기 위해서는 우리만이 갖고 있는 동양학과 동양문화기반을 당당히 내세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역량을 모아 이 시대에 어울리는 제2의 동양학, 동양문화 붐을 일으켜야 한다. 서구 편향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성숙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양학을 통한 변혁이 반드시 요구된다. 그리고 그런 변혁의 인자는 중국도 일본도 아닌 바로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일본, 중국, 러시아, 동남아로 확산해 나가는 한류 열풍은 한국 고유의 동양적 가치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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