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황지혜’의 인턴수련 일기(26)

기사입력 2005.01.2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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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턴 마지막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는 걸음이 편치 않았다.
    주치의로서 보내야 될 남겨진 시간들과 밀려있을 진료업무 등에 대한 걱정이 앞서서였다. 아마 이런 느낌이 우리네 옛 어머니들이 친정나들이에 나섰다가 시댁에 돌아갈 때의 기분하고 같겠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병원으로 돌아온 첫날, 늘어난 환자 수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아 환자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또 다시 강적 할머니 환자들과 TA(교통사고) 환자들과 함께하는 하루가 시작됐다.
    특히 이번에는 혜성같이 등장한 부부 TA단과의 심리싸움이 추가됐다.

    나이차가 꽤 나는 젊은 TA 부부환자는 강적인 할머니보다 더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어리광이 심한 아내는 침을 놓을 때마다 소리를 내지르고, 남편에게 투정부리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남편은 아내 수발하느라 지쳤는지 피곤하다며 치료를 나중으로 미룬다. 하지만 오후에 찾아간 병실에는 남편은 어디 숨었는지 좀처럼 얼굴보기가 힘들다. 이렇게 제멋대로인 TA 부부환자를 대하노라면 하루가 다르게 피부노화현상이 일어나는 듯 하다. 아 꽃다운 내 청춘이여!

    이런 와중에도 내심 인턴 황지혜의 빈자리를 아쉬워했던 환자들이 있어 나름대로의 활력소가 된다. 특히“보고 싶었어요”,“선생님한테 침 못 맞아서 회복속도가 더뎌요”,“휴가복귀 선물이에요”등등 훈훈한 인사를 건네는 환자들의 밝은 미소는 내게 큰 힘이 된다.

    그러다보면 지친마음은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지고‘이런 사랑스런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용기를 잃어서는 안돼’하며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
    더욱이 곧 있으면 윗년차 선배들이 휴가를 나가는 터라 다부진 마음이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시점이다. 선배들의 공백을 채워야 할 테고 외래진료도 봐야 되는 등 주치의로서의 위엄이 더욱 필요할 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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