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황지혜’의 인턴수련 일기(26)

기사입력 2005.01.1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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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들어 병원 내에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병동 환자들의 이름표에 주치의 이름으로 인턴들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참 묘하다. 주치의가 되서 보람 있는 순간은 작은 설렘이 느껴질 때다.

    특히 퇴원하는 환자들이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기던가, 혹은 작은 선물들을 수줍게 건네줘 웃음짓게 만들곤 한다. 또 얼마 전 퇴원한 한 여자환자는 본인이 쓴 책에 간단한 메모를 남겨서 감동을 줬다.

    반면 주치의로서의 책임감도 지긋이 어깨를 압박한다. 환자상태의 호전도가 별로 없어 난감할 때다. 특히 가장 힘든 환자는 할머님들이다. 난청인 관계로 할머니들과는 의사소통에 고충이 많다. 아침엔 짜증을 내고 저녁이면 괜찮아지니 비위 맞추는 것도 여간 쉽지가 없다.

    얼마 전 입원한 전라도 할머님은 첫날부터 습부항을 하는데 온갖 욕설을 해대며 화를 내는 턱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더 황당한 경우는 “수고했다”고 칭찬을 늘어놓더니 다음날 아침 또 거친 욕을 해대는 것이었다.

    여태껏 만난 본 중에 정말 ‘강적’ 할머니 환자였다. 주치의겸 인턴이라 아직은 감정 컨트롤이 제대로 되지 않아 순간 욱하는 감정이 치밀어왔지만 수련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치료를 해드렸다. 내 진심이 통했는지 할머니는 “조금 좋아졌다”며 잘 익은 단감 하나를 손에 꼭 쥐어줬다.

    이제 주치의 2주차. 권한이 늘어난 만큼 병동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책임은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적응하는 과정에서 인턴 일까지 겸하고 있으니 힘이 들기도 하다.
    좀더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리라는 굳은 마음에 오늘밤도 힘든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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