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디콤 황상진 원장]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이 말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단번에 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사로잡았던 명장 히딩크 감독의 명언이다. 그 이후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그의 리더십이라든지 지도철학을 응용하는 ‘히딩크식 배우기’ 열풍으로 이어졌었다.
어쩌면 당시 히딩크 감독의 이 말은 감독으로서 경기를 하나하나 치뤄 내야했던 당면 과제가 아닌 평소 그의 직업 철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소 결과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늘 승리라는 결론을 얻기위한 그의 확고한 목표의지는 그당시 국민 누구나가 그를 영웅이 아니라 칭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며칠 전 한 수강생이 본원(코디콤)에 전문가 과정을 문의하기 위해 내원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사정이 생겨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간호조무사의 길로 진로라기보다는 생계의 방편으로 시작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그녀는 많은 의원의 여러 과를 거쳐 직장생활을 하면서 항상 제대로된 직원의 역할을 갈망하는 자신을 위해 이른바 ‘어깨넘어 공부’로 업무에 전문성을 다지며 살아왔다고 했다. 한방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여전히 그녀는 모든 한의원의 업무를 독학하면서 스스로 분석하고 자신이 목마른 분야에 대한 갈증 해소책을 찾다가 전문가 과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던 것이다.
“한의원에 4년정도, 더구나 그러한 열성적인 마인드로 근무를 하셨었다면 뭐가 더 필요하시겠어요”라고 농담스레 물어보았더니 오히려 진지하게 “저는 아직도 제 역할에 대한 뭔가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아주 구체적으로 자신이 잘 모르며 갈증을 느끼는 부분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그녀를 보내고 난 후에도 한동안 마음속은 감동이 너울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경기불황으로 구직도 어렵고 마땅한 인재를 찾기도 어려운데 작은 분야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일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찾고 다져보는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였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이 말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단번에 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사로잡았던 명장 히딩크 감독의 명언이다. 그 이후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그의 리더십이라든지 지도철학을 응용하는 ‘히딩크식 배우기’ 열풍으로 이어졌었다.
어쩌면 당시 히딩크 감독의 이 말은 감독으로서 경기를 하나하나 치뤄 내야했던 당면 과제가 아닌 평소 그의 직업 철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소 결과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늘 승리라는 결론을 얻기위한 그의 확고한 목표의지는 그당시 국민 누구나가 그를 영웅이 아니라 칭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며칠 전 한 수강생이 본원(코디콤)에 전문가 과정을 문의하기 위해 내원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사정이 생겨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간호조무사의 길로 진로라기보다는 생계의 방편으로 시작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그녀는 많은 의원의 여러 과를 거쳐 직장생활을 하면서 항상 제대로된 직원의 역할을 갈망하는 자신을 위해 이른바 ‘어깨넘어 공부’로 업무에 전문성을 다지며 살아왔다고 했다. 한방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여전히 그녀는 모든 한의원의 업무를 독학하면서 스스로 분석하고 자신이 목마른 분야에 대한 갈증 해소책을 찾다가 전문가 과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던 것이다.
“한의원에 4년정도, 더구나 그러한 열성적인 마인드로 근무를 하셨었다면 뭐가 더 필요하시겠어요”라고 농담스레 물어보았더니 오히려 진지하게 “저는 아직도 제 역할에 대한 뭔가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아주 구체적으로 자신이 잘 모르며 갈증을 느끼는 부분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그녀를 보내고 난 후에도 한동안 마음속은 감동이 너울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경기불황으로 구직도 어렵고 마땅한 인재를 찾기도 어려운데 작은 분야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일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찾고 다져보는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