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황지혜’의 인턴수련 일기 [13]

기사입력 2004.07.1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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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수련의 황지혜>


    부인과에는 병원의 최고인기환자인 일명‘귀염둥이 할머니’가 입원해있다. 할머니는‘욕쟁이’로 불릴 정도로 상욕을 해대거나 헛것이 보이는지 주로 혼잣말로 하기도 한다.
    이처럼 할머니가 민폐를 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것은 일단시작하면 온 종일 불러대는 노래솜씨(?)와 심각한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당당한 모습 때문이다.
    할머니는 일반인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심한 sore(욕창)을 앓고 있었다. 양방처치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그러나 양방에서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우선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드레싱 방법을 연구했다.
    처음에는 녹농균 때문에 냄새가 심해 마스크를 써도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 내게로‘턴’이 돌아왔을 때는 솔직히 할머님 드레싱에 대한 부담이 가장 컸다. 하지만 누가 인간의 생명력이 놀랍다고 했던가? 주먹 몇 개는 족히 들어갈 공동이 손가락 굵기로 굉장히 줄었으며 엉덩이 양 옆쪽은 놀랍게도 거의 살이 다 차고 아물고 있었다.
    덕분에 앞의 사람들보다는 덜 고생을 했다. 그러나 아직은 드레싱 횟수가 줄긴 했어도 하루 한번 한 시간 정도씩 드레싱을 해야 했다.
    할머니는 나이도 많고 욕창으로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 했다. 그럴 때면 으레 상욕이 튀어나오기 일쑤여서 처음에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상욕 또한 구수하게 느껴지고 할머니에 대한 정이 새록새록 피어나기 시작했다. 할머니도 미안했던지 귀여운 표정과 앙탈(?)로 내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귀염둥이 할머니의 회복은 힘든 인턴과정에서 의료인으로서 또 다른 보람을 느끼게 한다.‘환자의 회복’만큼이나 의료인들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식사를 도와주는 나에게 “니나 묵으라”고 말하며 밥숟가락을 건네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왜 그렇게 정답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은 병마와의 사투과정에서 찾게 되는 인간의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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