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황지혜’의 인턴수련일기(3)

기사입력 2004.04.1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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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rn change(수련과 변경)! 전날, 환자들은 “선생님 섭섭해요, 가지마세요”라는 말을 건네며 이별의 서운함을 내비친다.

    그러나 서운함은 잠시, 우리는 냉혹한 현실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바로 Turn Change를 위한 ‘인수인계의 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인턴동기들은 졸음을 쫓으며 서로에게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다른 법, 밤이 깊을수록 ‘직접 부딪쳐 가면서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맡은 과는 사상체질과와 신경 정신과였다. 비 내과 파트보다 환자수도 배로 늘고 근·골격계 질환 위주에서 이제는 중풍 환자들을 주로 보게 됐다. 첫날부터 실수연발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신없는 하루였다. 그러다 ‘턴’이 바뀐 지 이틀이 지나서 잊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양방병원에서 차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자가 사상체질과로 입원했다. 산소탱크를 달고 L-tube(밥줄)와 Foley(소변줄)까지 하고 Suction으로 수시로 가래를 제거해야만 하는 환자였다.

    아직 환자를 보는 눈이 미흡한 인턴에게 이런 환자들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위독한 상태라 집중치료실로 옮긴 지 며칠 후, 환자는 사람도 알아보고 말도 하고 팔다리도 움직일 정도로 호전을 보였다. 이런 현실이 너무 기뻐 환자 가족에게 병이 호전될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줬다.

    그런데 아뿔사! 사람이 죽기 전에 정신이 맑아진다고들 하던데, 이번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그날 밤 11시쯤 수련시작 후 처음으로 CPR(응급상황)이 발생했다. 숨이 턱에 차오를 정도로 병실로 뛰어가 환자를 발견했을 때는 호흡이 거의 정지되면서 얼굴이 창백해져 가는 상태였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CPR상황에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교육받은 대처요령은 떠오르지 않고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그리고 구세주 윗년차 선배들이 달려오기까지 2~3분의 시간이 엄청나게 길게만 느껴졌다.

    윗분들의 신속한 명령에 따라 심폐소생술이 이뤄졌지만 환자는 그날 밤을 넘기지 못했다. 머리 속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하얗게 질려 버렸고 위급상황에서 현명한 대처를 하지 못한 내 자신이 원망됐다.

    그러나 과장님과 윗년차 분들은 환자의 죽음이 이미 예견된 상황인지라 착잡한 표정이었지만, 정확하고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는 프로정신을 보여줬다. 바로 병원이라는 조직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또 새날은 밝아오고 죽음이라는 두려움도 잠시, 생과 사의 현장에서 고통 받고 있는 또 다른 환자들을 위해 인턴들의 마음은 더욱 더 강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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