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병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찾아내는 한의학적 방법을 알 수 있는 ‘맥진, 몸과 마음을 읽다(솔트앤씨드)’가 발간됐다. 이 책은 황재옥 몸편안한의원 원장이 저술했다.
현대인은 병원에 가도 딱히 치료가 잘 되지 않는 난치병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메니에르, 공황장애, 신경성 위염, 강직성 척추염, 베체트씨병. 이런 병명들은 늘어나는데 만성 질환자가 돼버리거나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들이 점점 늘어난다. 또 “병원에서는 이상 없다는데 저는 아파요”라며 고달픈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다 한의원을 찾는 사람도 많은데, 예를 들면 이명이 그렇다.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과 시각을 가진다는 점을 이해하면 이럴 때 훨씬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환자가 어느 때에 어떤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더 자신에게 유리하고 적합한지 먼저 적극적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사실은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어느 쪽이 우위에 있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다. 서양의학은 조직상의 질병에 탁월한 반면, 한의학은 오장육부의 기능적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탁월하다. 병명을 몰라도 원인을 찾으면 치료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맥진은 한의학적 진단의 핵심으로 12개의 청진기로 온몸을 스캔하는 것과 같으며, 이것으로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이 책은 맥진기로 맥파와 맥동을 추출해서 분석해온 40년간의 임상 데이터를 통해 한의학적 진단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가의 진단검사를 받았지만 병의 원인을 모를 때, 심인성 질환이 의심될 때, 숨어 있는 질병을 찾아낼 때, 적은 비용으로 자주 건강검진을 하고 싶을 때 맥진검사를 해보자.
거시적 관점에서 우리 몸을 살펴보는 한의학적 건강검진
반복되는 중이염이 도통 낫질 않는다는 고등학생 한 명이 한의원에 와서 맥진검사를 했다. 오른쪽 손목의 바깥쪽 요골동맥 3군데 맥 부위(촌관척)에 센서를 연결하자 모니터에 폐, 비장, 심포, 대장, 위장, 삼초의 기장부 6개 맥을 나타내는 파형이 나타났다. 또 왼쪽 손목의 요골동맥에 센서를 연결하자 모니터에 심장, 간장, 신장, 소장, 담낭, 방광의 혈장부 6개 맥 파형이 나타났다. 진료실로 들어가자 한의사는 맥파의 파형과 크기를 분석해 귀에서 왜 농이 아물지 않고 염증이 반복되고 있는지 설명해줬다. 귀를 관장하는 신장맥을 보니 춥고 진액이 메마른 상태였기 때문에 항생제를 먹고 주사를 맞아도 깨끗하게 낫지 않고 재발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심장맥과 간장맥을 보면 바짝 타고 메마른 데다가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긴장된 상태였다. 피부도 메마르면 열이 나고 상처를 잘 입는 것처럼 오장육부도 탄력이 없고 물기가 없으면 열이 나고 상처를 잘 입는 법이다. 맥파를 보면 성격이 굉장히 꼼꼼한 걸 알 수 있었는데, 내성적이고 말이 없어서 아파도 웬만하면 참는 성격이었다. 이 학생의 몸속 상태에 맞는 한약 처방과 침 치료로 염증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맥진, 몸과 마음을 읽다’는 한의학의 진단에서 12장부의 맥을 짚어 환자의 상태를 판단하는 맥진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강조한다. 이 고등학생의 사례 외에도 40년 가까이 쌓인 임상 데이터는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요새는 한의원에서 왜 맥을 안 짚어줘요?” 저자는 이런 환자의 질문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침과 추나 치료만으로 한의원이 돌아가는 곳이 많다 보니까 환자들은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고 싶은데 듣지 못하는 데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한의원만의 문제도 아니다. 의사와 얼굴 마주보고 대면하는 진료 시간이 2분, 3분밖에 안 된다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병원에서 환자들은 갑갑증을 느낀다. 이건 난치병이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제 병이 뭐예요?”, “제가 왜 아픈 거예요?”, “고칠 수 있어요?”. 이것이 그동안 환자들이 저자에게 가장 많이 질문하며 궁금해했던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책에서 맥진의 원리를 풀어냄으로써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는 답을 하고 있다.
손목 안쪽의 요골동맥 박동이 느껴지는 곳에 손가락을 얹고 맥을 파악하는 것을 ‘진맥’ 또는 ‘맥진’이라고 한다. 한의학의 맥진은 거창한 의료장비 없이도 언제 어디서나 진단을 내릴 수 있어 주요한 진단법으로 활용해왔지만, 손의 감각으로만 알아내려고 하면 너무 어렵고 배우고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그 때문에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맥진의 고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의학은 치료 기술이 잘 발달돼 있어 개인의 상태에 따라 맞춤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진단이 제대로 이뤄져야 치료도 정확해질 것이다. 그동안 손으로 맥을 짚는 한의학은 너무 주관적이며 가변적이라는 비평을 받아왔고, 몇몇 고수를 제외하면 너무 감으로 치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한의학 이론에 따라 디지털화된 과학적 기기로 개발된 맥진기 덕분에 정확도, 객관성, 가시성을 확보하게 됐다. 한의학 이론을 적용한 12장부의 27맥을 그려낼 수 있는 전세계 유일의 의료기구인 맥진기는 1993년에 처음 의료보험에 포함돼 보건복지부 지정 한방의료기 1호가 됐다(당시엔 한 번 맥진할 때 1만 원).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오장육부를 모두 살펴볼 수 있는 건강검진 방법이 바로 맥진기로 맥진검사를 하는 것이다.
12장부의 한의학적 해석을 알면 병을 이해할 수 있다
현대에 난치병이라 불리는 것들의 공통점은 병의 원인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에서도 통합의학, 기능의학 등의 흐름이 나타나서 인체가 독립된 기관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시스템으로서 작동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하나의 질병에 하나의 약물을 적용한다는 현대 의학의 문제점을 인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원래 서양철학은 유물론적 사고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사람을 보고 치료하기보다 질병만 보고 치료하는 데 집중한다. 따라서 조직을 관찰하고 미시적인 시각으로 더 작은 단위로 세밀하게 국소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발달해왔다. 만약 동양적 사고가 유입되지 않았다면 인체를 시스템으로 보는 시각은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학력이 높은 손자보다 공부를 많이 못했던 할머니가 우리 몸의 작용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사실 그 옛날 ‘동의보감’의 한의학적 건강 상식들이 그만큼 대중적으로 많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자주 쓰는 말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간담이 서늘하다”, “마음이 편해야 속이 편하지”,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이런 말들은 모두 한의학적 표현이다. 이것은 몸에 나타나는 질환뿐 아니라 정신 질환에도 해당된다. 분노, 공포, 슬픔, 지나친 생각 등(칠정)은 몸에 영향을 미쳐서 질병을 일으킨다. 한의학 표현으로 말하면 거센 바람, 장마, 오랜 가뭄, 심한 추위 등 외부적 환경(육음)뿐 아니라 인간의 오욕칠정도 생활습관, 자세 등과 함께 병의 원인이 된다. 만약 급성 위통이 나타난 환자가 있다고 해보자. 맥진검사를 하면 식중독처럼 음식에 의한 복통인지, 스트레스로 인한 복통인지 맥진기가 그려내는 맥파를 보고 명확하게 바로 구별할 수 있다. 콧물, 재채기가 나올 때도 감기에 의한 것인지, 비염 증상인지 맥파를 보고 알 수 있다. 우리는 한의학의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몸이 아픈 원인을 찾고 몸을 회복하는 데 훨씬 효과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인간의 질병은 조직상의 질병, 기능상의 질병, 구조적 질병, 정신적 질병으로 나눌 수 있다. 조직상의 질병은 염증, 궤양, 혹이 있는지, 암이 숨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인데, 서양의학은 조직의 병을 진단하고 고치는 데 한의학보다 뛰어나다. 반면 한의학은 기능상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예를 들면 “피곤해요”, “잠이 안 와요”, “밥맛이 없어요”, “툭하면 감기 걸려요” 등의 문제들이다.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은, 첫째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 둘째 식생활이 불규칙적이고 습관이 좋지 않은 사람, 셋째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다. 맥진검사를 하면 이런 유형을 모두 구분해서 치료할 수 있다. 서양의학도 한의학도 사람의 몸을 완벽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열을 가릴 일이 아니라 관점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싸울 일이 없고, 보완하면서 환자를 도울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2장부의 명칭만 설명해도 한의학적 관점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맥진에서 신장은 kidney와 일치하지 않으며 비장은 spleen과 일치하지 않는다. 방광맥에서는 오줌보인 방광(bladder)을 보는 것이 아니라 척추를 본다. 12장부의 분류는 해부학적 분류가 아니라 기능적 분류이기 때문이다.
40년 가까운 맥진 임상 사례로 보는 질병예방법
맥을 보는 근본적인 이유는 환자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나 당장의 불편함은 이야기하지만 그 외에는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양의학적 사고에 젖어들어 있는 현대인들은 여러 가지 증상들이 서로 관련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들도 많다. 그런데 맥진을 하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심상, 생활습관까지 파악할 수 있다. 청소년의 비장맥을 보면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어린 아이들은 가정이 행복하면 12장부의 맥이 위로 뛰며, 밝고 명랑하다. 나대느라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전반적으로 밑으로 내려가는 맥인 경우에는 아이들이 움직이질 않고 말을 안 한다는 특징이 있다. 언어장애가 있다거나 어린아이라서 표현을 잘 못하는 경우라도 맥파를 보면 환자 스스로 모르고 있는 것까지 짚어낼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한의사라면 꼭 맥진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년의 한 여성이 갑작스럽게 발생한 이명으로 맥진검사를 하러 왔다. 맥을 보고 나서 뭔가 불만이 있지 않은지 상담을 했는데, “빨간 자동차를 사고 싶다”는 말을 남편이 안 들어줘서 화딱지가 났던 것이 이명이 생긴 원인이었다. 단순히 자동차 이야기만 들으면 별난 여성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아내의 취향을 무시하고 남편이 20, 30년간 아내의 일에 대해 마음대로 해왔던 것이 쌓였다가 폭발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의학은 기능을 보는 데 탁월하기 때문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뛰어난 것이며 치료약도 잘 구비돼 있다. 밤에 라면을 끓여먹고 잤더니 부었다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것도 안 했는데 띵띵 붓는다는 사람도 있다. 림프 순환의 문제일 수 있는데, 한의학적으로는 뇌와 화병, 즉 심적인 문제로 본다. 이럴 때 이뇨제를 쓰는 것이 아니라 화병 푸는 약을 쓰는 것이 다르다. 한약에는 마음에 작용하는 처방들이 발달해 있어서 곧잘 듣는다고 한다. 저자의 임상 사례를 보면 심리적인 부분도 꼭 짚어주는데, “맥을 보면 부글부글 끓고 있고 속상한 게 참 많은데 무슨 일이 있나요?” 하고 말을 거는 경우가 많다. 한의학적 용어로 병의 원인은 육음칠정으로 정리된다. 육음은 피부, 입, 코 등으로부터 시작해 바깥에서 안으로 병이 침투하는 양상이며 날씨와 관련이 있고 초기에는 오한, 발열, 두통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칠정(감정)은 직접적으로 내장을 상하게 하며, 기능적인 영향을 미치고, 상태를 급격히 악화시키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인간의 질병은 마음에서 비롯됐고, 마음에서 출발해 몸을 약하게 만든다는 걸 보여주는 데이터는 차고 넘친다. 40년 가까이 맥진을 하면서 환자와 대화하다 보니까 저자는 고전의 원리 원칙이 얼마나 정확한지, 얼마나 사람을 종합적으로 정밀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깨닫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현대 의학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짧은 진료 시간에 답답해진 환자는 완전히 낫지 않았는데 이 병원에서 더 이상은 나아질 것 같지 않을 때 “괜찮다”고 말해버린다.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곳이 필요한데, 그런 면에서 맥진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맥진의 장점은 심신을 다 읽기 때문이다. 저자는 후배 한의사들을 위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학문의 깊이가 짧은 사람이 한의학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자꾸 서양의학적으로 해석하고 따라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마치 부처님을 기독교 교리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과 같아서 설명이 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과 사물을 보는 한의학적 시선을 잃어버리는 건 잘못된 선택이라는 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