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 때의 불안함을 잊을 수가 없다. 새내기 한의사 시절 이런저런 후세방을 써봤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환자에게 체질방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증상으로 봐서는 딱 지황백호탕 증인데, 한번도 써보질 않았으니 겁이 날 수 밖에 없다.
소양인 처방이라고 해봐야 형방지황탕과 양격산화탕은 써보았지만, 지황백호탕은 차원이 다르다. 석고(石膏) 5돈으로 시작하는 지황백호탕의 처방을 보면 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쓸것이냐 말것이냐를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쓰기로 결정하고 약을 짓고 달이는 과정 내내 고민과 번뇌가 떠나질 않았다.
걱정의 절정을 환자에게 약을 투약한 첫 날과 둘째날이다. 배가 아프지는 않는지, 설사는 하지 않는지 걱정이 되지만 그렇다고 바로 연락을 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리 배가 아프거나 설사를 하면 연락을 하라고 일러두었기에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불안한 마음으로 3일이 지나고 나서야 약이 제대로 원하는 약효를 내기 시작했다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불안의 이유는 석고나 지모 같은 강한 약성의 약을 쓴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체질 감별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불안해 하고, 고민 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고민과 불안의 시간을 거치지 않았다면 아직도 체질방을 자유자재로 쓸 수 없었을 것이다. 한의과대학에서 사상의학을 배우긴 했지만, 말 그대로 머리 속에서 뜬구름 잡기처럼 글로만 아는 것이었다. 실제로 체질 감별을 고민하고 체질처방을 쓰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졸업 즈음에 우천 박인상 선생님을 뵈면서 부터다.
흰머리에 호걸의 풍채를 하고 계신데, 강의하실 때면 선생님의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서 설명하셨다. 선생님이 처방을 사용해서 치료가 되거나 호전이 된 경험은 물론 다양한 책에서 구한 처방에의 효과에 대한 얘기도 곁들여 주셨다.
특히 어느 책에서 이 처방을 써보라고 해서 써봤는데, 안나았다는 실패 경험담을 말씀하실 때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여지껏 치료가 안된 경험담을 얘기하시는 선생님은 못 봤기 때문이다.
우천 선생님 강의의 또 다른 특징은 사상의학을 주로 하시지만 증치나 고방 심지어 오운육기처방까지 다양하게 언급하신다는 점이다. 항상 '꿩을 활로 잡든 매로 잡든 잡는게 중요하다'시면서 병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지, 사상의학이라는 학문의 틀에 너무 얽매여도 안된다 하셨다.
모든 병증을 사상의학의 관점에서만 보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사상의학을 충분히 익힐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사상의학에만 얽매여 있어서는 곤란하다. 인간을 포함한 천지만물이 사상의학에 맞춰서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의 고방이나 증치로 해결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보니, 이런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상의학이 탄생한 것이다. 사람이 먼저 있고 사람의 병든 것을 치료하기 위해서 의학이론이 만들어진 것이다. 의학이론대로 사람이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임상에서 사상체질을 활용하려고 하면 우선 체질 감별이 문제다. 체질 감별은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다. 그 다음 문제는 임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병증에 체질처방을 응용하는 것인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우선 이제마 선생님의 동의수세보원은 증상별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우천 선생님이 예전에 내신 동의임상요결이 있는데, 이것도 임상에서 활용하려고 보면 병증에 맞는 처방 찾기가 용이하지 않다. 내용도 간결해서 실제로 찾아서 활용하면서 아쉬움이 남곤 했다. 이번에 발간한 우천임상요결은 동의임상요결의 이런 문제를 거의 완벽하게 해결했다.
우천임상요결은 기본적인 편제가 가장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방약합편 편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육기(六氣)에서 시작해서 잡병(雜病), 내경(內景), 외형(外形), 부인(婦人), 소아(小兒)로 이어지는 구성을 하고 있어서 아주 쉽게 찾아서 처방을 활용할 수 있다.
각 파트에는 체질별로 사용가능한 사상처방이 나오는데, 처방 밑에는 증상에 따라 다양하게 가감약물이 표시되어 있어서 아주 유용하다.
이 책에는 체질처방 외에도 임상에 도움이 될만한 고방이나 증치방, 오운육기 처방, 심지어 이름 없는 경험방도 나온다. 단순히 처방만 표기하지 않고 사상의학의 관점에서 체질약물을 추가하거나 빼서 다양하게 활용하도록 되어 있다. 실제로 십전대보탕이나 육미지황탕 같은 처방을 체질과 병증에 따라 다양하게 가감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후세방만 쓰다가 체질처방을 막 써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체질처방의 세계를 맛 볼수 있다. 물론 체질방을 주로 진료하는 사람은 좀 더 넓고 깊게 체질방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줄 것은 당연하다.
처방을 위해 이 책을 여기저기 찾아서 이 처방을 쓸까 저 처방을 쓸까 생각하다보니, 우천 선생님 빙그레 웃으시면서 '고민만 해봐야 소용 없어. 해봐! 써보고 얘기 해!'라고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그래,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해봐서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
<書評 : 최윤욱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