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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50)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몇일 전 현 23대 국제동양의학회(ISOM, Interna tional Society of Oriental Medicine)의 사무총장인 이종안 박사(배원식한의원,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께서 『國際東洋醫學會 50年史』의 인쇄본이 완성되어 제일 먼저 가져다 주시겠다고 학교를 방문해주셨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한의학관 앞에서 책자를 받으면서 기뻐서 어찌할 줄 몰랐다. 한의학 관련 근현대 역사 자료를 수집·정리하는 것을 취미이면서 업으로 여기는 필자의 입장에서 국제동양의학회 관련 자료는 황금같이 빛나는 보물이다. 이종안 박사께서 필자에게 동양의학회 관련 자료를 아무 조건없이 건네주신지 벌써 30년은 된 것 같다.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이다. 제21회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ICOM, International Congress of Oriental Medicine)가 지난달 31일 대만에서 개최된 가운데 1976년 한국 서울 엠베서더 호텔에서 열렸던 1회 대회(대회장 배원식) 이후 벌써 21회에 달한 것이다. 『國際東洋醫學會 50年史』(이하 50년사)는 350쪽에 달하는 칼라판 책자로서 이종안 사무총장이 한의원을 거의 절반 이상 비워가면서 만들어낸 필생의 작품이다. 그를 만날 때마다 그의 스승 배원식 선생(1914∼2006) 생전에 구술로 전해 들었던 근현대 한의학의 역사 이야기를 필자에게 전해주곤 했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눈물짓는 이종안 박사의 모습에서 국제동양의학회를 향한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국제동양의학 학술대회는 1976년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 서울 앰배서더 호텔 그랜드 볼륨에서 제1회 대회를 개최하였다. 裵元植 대회장의 개회선언과 吳昇煥 집행위원장의 환영사에 이어 최규하 국무총리의 치사로 시작된 이 대회에서 각국 대표들이 모여서 國際東洋醫學會를 출범시키고 초대 회장에 卞廷煥, 부회장에 인도 대표 P.N 쿠르프, 사무총장에 吳昇煥, 理事에 李錦浚 등을 선출하고 학회본부를 서울에 설치하였다. ‘50년사’에 나오는 국제동양의학회의 사업은 다음과 같다. ○ 국제동양의학 학술대회 개최(1〜21회 학술대회개최) ○ 국제적인 상호교류와 협력 ○ 국제적인 동양의학, 의료봉사활동 ○ 국제동양의학회 발전을 위해 필요한 기타 사업 수행 ○ ISOM 국제교류위원회 추진 ○ 동양의학에 대한 연구, 개발 및 조사 ○ 동양의학의 정보교류를 통한 종합적 정보 네트워크 형성 ○ WHO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사업 수행 ○ 국제동양의학회 학술지 제작 추진. 현 국제동양의학회 회장인 陳旺全 회장은 ‘50년사’의 기념사에서 다음과 같은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향후 우리는 과학기술의 흐름을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인공지능(AI) 및 빅데이터 기술과 전통의학을 접목한 새로운 의료 생태계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원격의료와 지능형 건강관리 시스템을 통해 질병의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고 신속히 대응함으로써, ‘上工治未病’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한걸음 더 나아갈 것입니다. 이제 ISOM은 전통을 기반으로 혁신을 날개 삼아, 보다 넓은 국제무대를 향해 도약해야 할 시점입니다. 각국 회원들이 함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교류를 더욱 활성화함으로써, 전통의학의 지속적인 학문적 발전과 세계 보건에의 기여를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50년사’에서는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ICOM)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는 2년마다 개최되며 국제동양의학회의 가장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로 동양의학 분야의 학문 발전을 위한 뛰어난 업적이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국제학술교류의 장입니다. 또한 국제동양의학 학술대회는 동양의학을 과학과 근거중심의 의학(EBM)으로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
경기도 공공병원서 ‘한의과’ 개설 마중물 될까(1일) -
‘호스피스에서의 희망’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현 의료체계가 말기 암 환자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기사에도 공공연하게 보도되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호스피스·완화의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단 2개의 의료 직군 중에 한의사가 포함돼 있으나 한의사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은 부재하다. 그렇기에 한의계 내부에서도 수요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고, 말한다 한들 막연한 두려움을 먼저 앞세우게 될 뿐이며, 설사 임상 현장에 일단 뛰어든다 한들 한의치료를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방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수가 신설 ‘우리라서 이런 건가? 한의사만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과제인가?’라는 의문을 붙들고 있던 순간, 교육을 진행하시던 의과대학 교수님께서 연자 소개를 위해 마이크를 잡으셨다. “어때요? 원래 하시던 일과는 좀 다르죠. 다학제 팀 회의도 그렇고, 치료 과정도 그렇고…”. 잠시 말을 멈춘 교수님은 쉽게 읽히지 않는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우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차분히 말씀을 이어갔다. “제가 같은 의사들한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뭔지 알아요? 너 네가 하고 있는 게 ‘치료’ 맞냐, 사람을 살리는 게 치료지. 그건 돌봄일 뿐이라고. 심지어 옛날에는 이 돌봄이라는 행위들을 봉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봉사하면서 왜 돈을 받으려고 하냐고 공격도 많이 받았고요. 하지만 이 돌봄이야말로 분명한 치료 행위이고, 여기에 대한 수가가 만들어진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 수가 신설하려고 고생하던 시절 생각하면 지금도 아득합니다.” 지난 5월, 동국대 분당한방병원이 입원형 호스피스 전문기관으로 신규 지정됐다. 모든 한방병원 중에서 최초로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은 사례이며, 한·양방을 통틀어 총 103곳의 입원형 호스피스 전문기관 중 단 1개의, 최초의 한의의료기관이 마침내 나온 것이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두 달 뒤, 한방병원의 호스피스·완화의료 수가 체계가 신설됐다.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포괄수가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수가의 유무와 수준은 곧 기관의 존속과 직결된다. 더욱 의미 있는 점은 이 수가가 의과 병원급과 동일한 수준으로 책정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지’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았으며, 이 과정에서 고군분투하셨던 교수님들의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 참으로 감개무량했던 소식이었다. 살 수 있다는 확신만이 희망일까? 그러던 중, 그 수가를 최초로 만드셨다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순간 더 깊이 이입될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교수님의 말씀 자체 또한 말기 암 환자를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는 의료인이라면 가슴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는 내용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지금도 여전히 저한테 ‘살리는 치료를 하러 와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제가 질문을 하나 드려볼게요. 호스피스는 희망이 없는 곳인가요? 호스피스에 오신 분들은 희망을 버려야만 하나요? 희망이 뭘까요? 반드시 살 수 있다는 확신만이 희망일까요?” 이어진 말들은 환자들의 이야기였다. 3개월 선고는 받았지만, 아들의 결혼식은 꼭 참석하고 싶어 하는 환자의 소원을 끝내 들어주고, 몇몇 의료진들은 결혼식에까지 참석해서 다 같이 눈물을 흘렸던 일. 10대 여자아이가 말기 선고를 받고 왔기에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미성년자가 호스피스로 오게 되면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이벤트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다고 한다) “교황님과 함께 세상이 사랑으로 충만해지길 함께 기도하고 생을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하기에 모두가 합심하여 소원을 들어줬던 일. 죽음만큼은 외롭지 않게 맞고 싶다는 환자의 부탁에, 오랫동안 끊겼던 가족과의 연을 어렵사리 다시 이어주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한 일. 임종의 끝에 의료진들을 바라보며 ‘그간 고마웠다’라고 인사하고 웃으며 눈을 감으신 많은 분들의 이야기. 의학적으로는 모두 같은 ‘종결’ 상태에 이르렀지만, 그 과정은 결코 사소하거나 의미 없다고 치부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살리는 치료’가 무슨 의미인지는 저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들의 치료 과정이나 남은 생의 시간에 희망이 없었다고, 저는 감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꼭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호스피스에서의 희망’을 무엇이라고 생각할 것인지.” “한의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존재” 교육이 끝난 뒤, 한 교수님이 조용히 나를 따로 부르셨다. “곧 소식 들릴 거로 알고 있습니다(당시는 동국대 기사가 공식적으로 나기 전이었다). 한의사분이 교육에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강의에 참여하는 걸 처음 보는데, 본인도 어떤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한의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신에, 잘~~해주세요. 잘 해봅시다.” 호스피스·완화의료에서 한의계가 맡을 몫은 이제 시작 단계에 있다. 제도적, 임상적, 이론적, 체계적 모든 면모에서 이제 겨우 걸음을 뗀 수준이다. 그러나 분명히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며, 반드시 해야만 하는 과제가 있고, 무엇보다도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있다. 그 길 위에서, 우리가 우리만의 희망의 정의를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
상지대 한의대 학생들의 중국약과대학 2주 연수기 上상지대 한의대(학장 박해모) 학부생 9명은 지난달 중국 난징 소재 중국약과대학(China Pharmaceutical University, 이하 CPU)에서 진행된 국제중의학여름학교에 참여했다. ‘국제중의학여름학교(Jiangsu Summer Program)’는 중의학을 세계에 알리고, 중국과 외국인 학생들 간 교류를 더욱 촉진하기 위해 장쑤성 교육청이 개설한 2주 교육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학문적 몰입(Academic Immersion) △문화 체험(Cultural Experience)을 목표로, 전통의학 관련 언어 교육, 학술 강의와 세미나, 전통 중국의학 실습 체험, 병원·제약기업 견학, 문화 체험, 팀 프로젝트 등으로 구성됐다. 이에 본란에선 2회에 걸쳐 학생들의 프로그램 참여 소감과 한의학 교육이 나아갈 길에 대해 모색해보고자 한다. 김현덕 학생(본과 2학년) “본초학과 현대 연구의 접점” 한의학 공부 중 본초학에 대한 호기심을 실제 현장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CPU 프로그램에서는 음양오행과 장상학설, 설진·맥진 실습을 통해 상지대 진단학과 연결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본초학 강의에서는 신농본초경과 본초강목을 바탕으로 약물 배오 원리, 제형과 탕제 제작 과정을 배웠다. 한약이 단순한 허브가 아니라 물·공정·제형을 아우르는 복합체임을 확인했고, 성미·귀경을 넘어서 기전과 데이터 중심으로 이해를 확장했다. 마황·황련·부자 등 약재를 통해 알칼로이드 작용을 복습하고, 플라보노이드·테르페노이드 등 성분군을 국제적 학술 언어로 정리했다. ADC 등 최신 약리학 수업을 통해 전통 본초와 현대 약물이 만나는 지점을 이해했고, MSI 기반 연구와 면역·염증 연구는 본초학의 현대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실습과 병원·제약사 견학으로 이론을 경험으로 연결했다. 뜸, 부항, 괄사·추나 체험과 위생 관리가 철저한 생산 현장은 전통이 산업과 결합되는 과정을 보여주었고, 다양한 국적 학생들과 토론하며 본초학이 공통 과학 언어로 확장될 가능성을 체감했다. 전준모 학생(본과 3학년) “생활과 교류로 확장된 두 주” 첫 해외 장기 체류였지만, 공항 픽업과 기숙사 적응, 현지 생활이 새로웠다. 나는 다양한 국적 학생들과 3조로 배정되어 Abdulaziz와 친해졌고, 첫 주는 강의와 전통무용, 병원 견학이 병행되었다. 둘째 주에는 이론과 실습이 본격화되었고, 특히 추나 체험은 근육 이완과 2학기 수업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저녁 시간에는 난징 부자묘, 야시장, 호수 공원 등에서 교류를 이어갔다. 마지막 발표에서 영상 프로젝트로 1등을 차지하며 동료와의 협업 경험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생활 차이도 흥미로웠다. 전기 스쿠터 중심 도로, QR코드 결제, 저렴한 물가와 푸세식 화장실, 언어 장벽을 경험하며 적응력을 키웠다. 작은 성공이 큰 성취로 이어졌고, 이번 경험에서 가장 남은 것은 사람과 교류의 가치였다. 학습과 생활, 관계가 어우러진 두 주였다. 이유경 학생(본과 1학년) “학문·문화·언어가 만든 균형의 배움” CPU 프로그램은 학문과 문화를 함께 배우는 자리였다. 오전에는 강의와 실습, 오후에는 견학과 체험이 이어졌다. 한의학과 중의학의 차이와 공통점을 비교하며 침과 약재의 진단과 철학 차이를 이해했다. 그룹 활동에서 한국 학생으로서 중의학 개념을 영어로 설명하며 지식을 재구조화했고, 자신감을 얻었다. 병원·제약사 견학과 기공 수업은 교과서 밖 현장을 보여주었다. 임상에서는 진료 절차를, 제약사는 위생과 안전 관리가 적용된 생산 라인을 관찰했고, 기공은 집중과 마음가짐을 길러주는 수련임을 체감했다. 자유시간에는 유적, 시장, 박물관을 탐방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했다. 음식·언어·생활 방식의 차이를 동료와 함께 체험하며 학문과 문화가 서로 비추는 관계를 깨달았다. 이번 2주는 한의학 정체성을 확인하고, 국제 교류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실감한 시간이었다. 변나연 학생(본과 3학년) “현장에서 확인한 차이와 융합의 가능성” 전 세계 의·약학 전공 학생들이 모인 CPU 프로그램에서 본초, 방제, 침구학을 배우며 한국과 중국 임상 차이를 확인했다. 괄사 요법과 습부항의 차이는 문화와 환자 환경이 만든 선택임을 이해했다. 약학 강의에서는 MSI 기반 연구, AI와 빅데이터 적용 등 전통 본초가 현대 과학과 만나는 과정을 체험했다. 자연물 기반 항암제, 전달체 설계와 구조 최적화 연구는 전통과 현대가 상보적임을 보여주었다. 제약사 견학에서 생산 라인과 품질 관리 체계를 확인하고, 병원 견학과 결합하여 전통의학이 임상과 산업을 축으로 현대화됨을 실감했다. CPU 학생들과의 협업으로 학습이 풍부해졌고, 영어 토론을 통해 표현과 이해가 향상되었다. 차이 속에서도 공통 언어를 통한 융합 가능성을 확인한 경험이었다. 여현주 학생(본과 3학년) “전통의학과 문화, 교류 속 배움” CPU 캠프는 전통의학 이해를 넓히고 이론과 실습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조별 활동과 장기자랑, 일상 공유로 국적과 전공이 다른 학생들과 친해졌다. 강의와 실습, 병원 견학을 통해 기공, 침, 부항, 괄사 등을 체험하고 약재실·탕전실·치료실을 둘러보며 임상 적용을 확인했다. 문화 체험에서는 월병 만들기, 타이다이 염색, 전통 체육대회를 통해 전통과 문화를 체감하고, 한국과의 공통점과 차이를 인식했다. 2주간 생활하며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면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번 캠프는 학문적 관심을 넘어 실제 삶과 연결되는 경험을 제공했고, 향후 한의학 공부와 임상에서 의미 있는 자산이 될 것이다. -
KOMSTA 제179차 우즈베키스탄 의료봉사를 다녀와서<2>지난 8월 13일부터 19일까지, 한의사 5명과 일반 단원 10명으로 구성된 제179차 WFK 한의약봉사단은 우즈베키스탄 우르겐치 지역에서 의료봉사를 진행하였다. 3일 반의 이번 봉사에서는 1일차 209명, 2일차 435명, 3일차 419명, 4일차 206명의 환자를 진료하여, 총 1269명의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름마저도 생소한 이곳, 우르겐치 우르겐치는 우즈베키스탄의 서쪽에 위치한 호레즘 주의 주도로, 인천에서 비행기로 7시간 떨어진 타슈켄트에서도 비행기로 1시간 30분을 더 가야 도착하는, 멀고도 생소한 도시이다. 이곳에서의 KOMSTA 활동도 이번 179차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그 나라의 냄새를 느끼길 좋아하는 나는, 우르겐치 공항에서 나와 ‘모래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였다. ‘모래 냄새가 나는 이 생소한 도시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고, 우리는 어떤 봉사를 하게 될까?’ 하는 상상과 함께, 우르겐치에서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모두의 마음이 모여 이루어낸 일 팀원 대다수가 해외 봉사활동은 처음인 사람들이었고, 그렇기에 서투르고, 허둥지둥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팀원들 모두, ‘팀을 위하는 마음’만은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들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무거운 짐을 내가 들으려는 마음, 아픈 단원을 조금이라도 더 쉬게 해주려는 마음, 힘든 일을 조금이라도 더 하려는 마음, 공항에서 봉사 장소까지 무거운 봉사 물품을 들고 가서 진료소를 세팅하고, 3일 반 동안의 진료를 무탈히 끝낸 것은 모두 이러한 마음들이 모여 이루어낸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툰 우즈베크어, 그러나 진실된 마음 봉사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통역 선생님들께 각자 필요한 우즈베크어를 배웠다. “누워주세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세요”, “아픈가요?”, “안녕히 가세요” 정도의 짧은 문장이었다. 한의사 선생님들께서는 짧은 우즈베크어 속에 진심을 담아, 치료하는 손끝에 정성과 열정을 담아 환자들을 대했다. 눈과 눈이 마주하는 사이, 언어를 넘어서는 마음이 오고 갔다고 생각한다. 아픈 곳이 낫길 바라는 나의 마음이 그들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웃으며 환자분들께 ‘라흐마트(감사합니다)!’라고 외쳐댔다.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들, 고려인 출국 비행기 안에서부터 ‘정말로 고려인 분들을 만나 뵐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었는데, 첫날부터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의 고려인 분들을 만나 뵐 수 있었다. 대부분 러시아어로만 소통할 수 있으셨지만 북한 말씨처럼 들리는 한국어를 드문드문 구사하셨고, 김씨, 이씨, 조씨, 신씨 등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성씨를 가지고 계셨다. 이곳에서도 한국어를 잊지 않도록 학교를 다니며 한국어를 배웠다고 하셨다.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며, 우리가 같은 뿌리를 가지는 같은 민족임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먼 옛날, 이분들의 조상님들이 척박하고 연고도 없는 이곳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에서 울컥함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내가 이분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의학의 힘, 우르겐치에서의 지속적인 봉사 봉사 세 번째 날, 진료 시작 전에 한 어르신께서 한의사 선생님께 A4 한쪽을 빽빽이 채운 손글씨 편지를 주고 가셨다. 통역 선생님께서 “몇십 년 동안 앓던 두통이 침 치료를 통해 나아서 너무 감사하다”라는 뜻이라고 전해주셨다. 이 외에도 수많은 환자분께서 침 치료로 아프던 곳이 호전되었다고 말씀하셨고, 특히 아픈 허리가 많이 나아졌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마지막 날 방문한 젊은 여자 환자였는데, 고열과 흉통이 주소증이었다. 좀 더 이야기해 보며 난임으로 가정폭력을 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아팠고, 상황 자체를 바꿀 수 없다면 지속적인 치료로 임신에 도움을 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우르겐치 의과대학의 총장님과 봉사가 이루어졌던 병원의 병원장님 모두 상호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이번 봉사활동이 계기가 되어, 우르겐치에 더욱 꾸준히, 그리고 자주 KOMSTA의 손길이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라흐마트 우르겐치에서 지내던 5일 내내 가장 많이 듣고, 또 가장 많이 한 말을 꼽자면 단연 ‘Раҳмат(라흐마트: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의 ‘라흐마트’는 손바닥을 가슴에 대며 인사하는 동작을 포함하는데, 이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뜻한다고 한다. 환자분들은 치료가 끝나면 항상 이렇게 인사하며 온 마음을 다해 고마움을 표시하셨다. 이를 들을 때마다 마음에 깊은 울림이 느껴졌고, 나도 ‘라흐마트’라고 하며,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함을 표현했다. 일주일간 우리 팀과 함께 여러 경험을 하며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KOMSTA에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함께한 팀원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봉사 전체를 총괄하고 이끌어주셨던 이승언 단장님, 안우식 팀장님. 쉼 없이 일하시며 여러 방면으로 봉사단을 도와주셨던 사무국 권수연, 김유리 선생님. ‘한의학’이라는 학문에 확신을 주신 이강욱, 김송은, 박재황 한의사 선생님. ‘함께 하는 일’의 가치를 알려주신 김선우, 류세나, 변다빈, 서예은, 송은찬, 임선우, 장다연, 천재원, 최인영 학생단원. 환자와의 대화에서 주축이 되어주신 통역 나리, 인디라, 자스미나, 세빈치, 파티마, 힐럴라, 다브런, 압바스 선생님.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중한 인연을 오래 기억하며 이어나가고 싶다. 일상으로 돌아가 여러 일을 마주하며 봉사의 기억이 모두의 마음속에서 점차 흐려지겠지만, 함께 느꼈던 봉사의 온기를 작게나마 모두가 간직했으면 좋겠다. 그 온기를 또 다른 곳에서 나누며,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나 또한 우르겐치에서 느꼈던 마음을 꼭 간직하며, 언제나 진심으로 진료하는 한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라흐마트! -
나는 한의사와 결혼했다3본란은 척추신경추나의학회의 MSU OMM Exchange Program에 함께한 웹툰작가 캐롯님의 동행기입니다. -
- '개원가 납량특집' 편 - -
KOMSTA 제179차 우즈베키스탄 의료봉사를 다녀와서<1>케이팝과 한의학의 연결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연일 화제다. 배경과 인물 설정, 주인공들이 부르는 노래까지 한국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오히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큰 관심을 받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한국 문화 IP의 경쟁력에 주목하면서도 낯선 문화권의 사람들이 우리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를 즐기는 것이 퍽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학문의 명칭에서부터 한국의 韓이 들어가는 우리의 한의학은 어떨까. 한의학은 과연 어떻게 외국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을 늘 품고 있었다. KOMSTA의 소중한 기회 대학 시절, ‘대신만나드립니다’라는 한의대생 단체 활동에서 KOMSTA 단장이셨던 이춘재 원장님과 KOICA 글로벌협력이사 송영일 원장님을 인터뷰한 팀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한의학의 세계화에 대한 열정과 봉사정신을 접했다. 또, 학부 시절 한의학진흥원에서 발간한 <한의사 해외 진출 가이드북> 집필에 참여하면서 각국의 의료 제도 속 현실적인 제약을 알게 되었고, 직접 현장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보다 강해졌다. 마침 우즈베키스탄 우르겐치 지역이 KOMSTA의 첫 파견지라는 소식을 듣고, 한의학을 접해본 적 없는 환자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 여겨 지원하게 되었다. 생소한 도시 우즈베키스탄 속 우르겐치 우르겐치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비행기로 약 한 시간 반을 더 가야 하는, 다소 생소한 도시였다. 현지에서 진료 통역을 맡아주신 인디라 선생님은 우르겐치를 “한국의 제주도와 같은 곳”이라고 설명해 주셨는데, 그만큼 수도권에서 떨어져 있고 사투리도 심한 지방이었다. 여름의 무덥고 건조한 기후 탓인지 호흡기 질환과 피부질환 환자가 많았고, 체형이 풍만한 사람을 부유함의 상징으로 보아 매력적으로 여기는 문화적 배경 때문에 비만 및 그로 인한 성인병 환자, 근골격계 통증 환자도 적지 않았다. 진료는 우르겐치의 전통의학 종합병원에서 이루어졌다. 수도권이 아님에도 병원 규모는 국내 대학 부속 한방병원과 비슷했고 환자군도 다양했다. 이번 제179차 봉사단은 한의사 4명(하루는 단장님도 직접 진료에 참여하심), 한의대생 10명, 사무국 2명, 현지 통역 9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나흘간 총 1269명의 환자를 만났다. 첫날 209명으로 시작해 둘째 날 435명, 셋째 날 419명, 마지막 날 206명이었다. ‘침’ 낯선 한의약을 맞이해준 우르겐치 주민 환자들은 침을 맞아본 적은커녕 의료 도구로서 ‘침’ 자체를 처음 보는 이들이었는데도 아시혈적 자침은 물론 원위취혈, 도침, 장침에 대한 순응도도 높았다. 종교적 이유로 신체 노출을 꺼리는 이슬람 여성 환자들도 이성과 분리된 환경에서는 거부감 없이 치료에 임했다. 비록 그들에게 생소한 한의학적 치료였지만 이에 대한 분명한 신뢰와 호의적 태도를 보였고, 침습적 도구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새로운 치료 방식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앞서는 모습이었다. 허리 디스크에 도침 치료 후 효과가 좋았다며 매일 내원했던 현지 병원의 마취통증의학과 의사, 문화적 특성상 남녀 차별이 여전히 심한 환경에서 어린 나이에 결혼해 난임에 대한 스트레스와 두려움으로 눈물을 흘리던 여성 환자들, 병원에서 시행되던 치료에 효과가 보지 못했다는 만성 두통, 이명, 수전증, 중풍 후유증 환자 등 여러 환자가 기억난다. 한의학은 병원에서 시행되던 치료와는 다른 경험을 통해 의료적 효용성을 제공할 수 있었다. 또한 치료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 간 필요한 접촉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므로, 문화적 배경이 다른 환자라도 개인의 심리적 맥락 속에서 한의학을 받아들이기가 더 용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뜻깊고, 소중한 만남 ‘고려인’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고려인 환자들이었다. 같은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가졌더라도 고려인은 공용어인 우즈베크어가 아닌 러시아어를 사용하기에, 우즈베크어·러시아어·한국어에 모두 능통한 인디라 선생님이 계신 우리 진료실에 주로 내원했다. 차트상의 ‘김’, ‘박’, ‘유’ 등 익숙한 성씨와, 전혀 낯설지 않은 얼굴들을 마주하며, 타지 생활 속에서도 한국어를 잊지 않은 사람들의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라는 함경도 말씨가 섞인 한국말을 들었다. 그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우즈베키스탄 봉사에서 이분들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해 약 17만 명의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기 전, 많은 이들이 러시아 연해주에 살았다. 그곳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거점이었으며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활동했던 땅이다. 고향을 떠나 일군 터전에서 또다시 강제로 중앙아시아 권역으로 재배치되었던 그 역사를 함부로 연민할 순 없으나 잊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손들과 만난 이곳 우르겐치에서, 특정 환자군을 편애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더 꼼꼼히 치료해드리고 파스 한 장이라도 더 챙겨드렸던 기억이 남는다. 호기심에서 시작해 감사한 만남으로 한의학이 기반 배경에 대한 사전 설명 없이 어디까지 수용될 수 있을까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시작된 봉사였고, 순전히 개인적 이유이기에 국민의 혈세를 나 같은 사람에게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로 최대한 충실히 임하고자 노력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바쁜 상황 속에서도 힘든 기색 없이 환자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소통하고 최선의 치료를 다해주셨던 한의사 선배님들과, 그 많은 환자를 접하면서도 끝까지 친절하고 성실하게,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하는 한의대생 후배님들을 보면서 내가 더 많이 배우고 반성한 시간이기도 했다. 우르겐치라는 첫 파견지였고 천 명이 넘는 환자가 내원했지만 모든 일이 순조로울 수 있었던 것은 제179차 파견 단원 모두가 각자 맡은 바를 책임을 다해 정성껏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지면을 빌려 함께했던 이승언 단장님, 이강욱 부단장님, 안우식 팀장님, 박재황 한의사 및 한의대생 단원 최인영, 류세나, 천재원, 황시현, 변다빈, 서예은, 장다연, 김선우, 임선우, 송은찬, 우리가 알고 있는 일부분뿐 아니라, 아마 미처 알지 못했던 여러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챙겨주신 사무국 권수연, 김수연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좋은 일을 위해 좋은 사람들이 모였기에 가능했던 일.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
“세계적인 문화행사로 성공 개최 기원합니다∼”[한의신문] 영동군한의사회(회장 남경록)와 영동군치과의사회(회장 허남석)는 지난달 29일 영동군청을 방문, 2025 영동세계국악엑스포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면서 300 원 상당의 입장권을 사전구매했다. 이날 행사에는 영동군한의사회 남경록 회장(활천당한의원)·유병만 총무(경희한의원), 영동군치과의사회 허남석 회장(허치과의원)·정대교 총무(서울하이치과의원)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영동군한의사회는 평소 군민건강 증진을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번 약정을 통해 지역의 대표 문화축제인 세계국악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를 적극 응원했다. 또한 영동군치과의사회도 구강건강 향상을 위한 진료 지원과 사회공헌 활동에 힘써왔으며, 이번 기회를 통해 문화와 건강이 함께 어우러지는 지역사회의 발전을 기원했다. 남경록 회장과 허남석 회장은 “지역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문화행사의 성공은 곧 영동군의 자긍심이자 미래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사회단체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국민의료비 ’70년 735억원에서 ’23년 203.4조원으로 ‘급증’[한의신문] 최근 보건복지부와 연세대 의료복지연구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국민건강보험, 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동연구를 통해 ‘2023년 국민보건계정(2024년 가추계치 포함) 보고서’를 발표한 가운데 국민의료비 규모는 1970년 735억원에서 2000년 25.1조 원, 2010년 79.9조 원, 2020년 165.2조 원, 2023년 203.4조 원까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보면 1970년대 연평균 33.8%의 증가율을 보이던 의료비는 △1980년대 19.7% △1990년대 14.0% △2000년대 12.2% △2010년대 8.2% △2020년대(2020∼2023년) 6.7%로 증가 폭이 둔화되는 가운데 2020년대에 들어온 이후의 연평균 의료비 증가율 6.7%는 과거보다 낮아진 수준이지만, 같은 기간의 일반 경제의 증가율과 비교해보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의료비는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2010년대 전반에 다소 주춤했던 증가세는 후반에 들어 다시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며, 1인당 실질의료비 증가율은 2010년대(2010∼2019년) 연평균 5.8%로 OECD 국가의 같은 기간 평균 3.9%를 상회했다. 이를 COVID-19 이전의 상황에 국한하면, OECD 국가의 의료비의 증가세가 둔화된 것에 비하면, 한국의 의료비는 높은 증가율을 유지해왔다. 보고서에서는 이같은 현상의 주된 원인으로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인한 지속적인 의료비 증가를 꼽는 한편 간병의 사회화에 따른 비용 증가는 향후 의료비 증가의 잠재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한국의 1인당 의료비는 2020년 전년대비 4.7% 증가해 OECD 국가의 평균보다 낮게 유지했지만, 2021년에는 9.7%로 급등했다. 이는 2020년에는 COVID-19으로 인해 의료서비스 이용이 일시적으로 기피됐지만, 2021년 COVID-19 치료와 함께 미뤄졌던 의료 이용이 되살아났고, COVID-19 예방접종 비용 및 손실보상 비용이 의료비에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이와 함께 2023년 한국의 ‘GDP 대비 국민의료비 비율’은 8.5%로, OECD 38개 국가 중 22번째에 해당하고 있으며, 더불어 구매력지수로 환산한 한국의 ‘1인당 의료비’는 4586 US$PPP로, OECD 38개 국가 중 23번째 수준이었다. 더불어 국민의료비의 재원 구성 추이를 살펴보면, 2023년 국민의료비 중 정부·의무가입제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60.4%였고, 민간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39.6%였다. ‘공공재원’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정부·의무가입제도’는 의무가입(건강)보험 49.0%와 정부 11.5%로 구성되며, ‘민간재원’은 가계직접부담 31.2%와 임의가입제도(임의가입건강보험·비영리단체·기업) 8.4%로 구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료비에서 차지하는 정부·의무가입제도(공공재원)의 비중은 1970년대 초만 해도 10%에 미치지 못했지만, 계속되는 보장인구의 증가와 급여의 확대로 2023년에는 60.4%에 이르렀다. 다만 이 수치는 아직도 OECD 국가의 평균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부분이라는 설명이다. 더불어 국민의료비 기능 구성의 추이를 보면, 2023년 국민의료비 중 입원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33.2%였고, 외래서비스의 비중은 31.7%, 의약품 등(소모품 포함)의 비중은 19.4%였으며, 이밖에 예방서비스가 4.6%, 거버넌스·보건체계·재정관리가 2.9%를 차지했다. 이를 세부적으로 보면 입원서비스의 비중은 1970년 22.4%에서 시작해 1980년 20.8%, 1990년 26.8%로 나타났으며,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 증감을 반복했지만, 이후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며 2010년 33.8%, 2020년 36.6%까지 증가했으며, 2023년에는 다시 일부 감소해 33.2%로 나타났다. 외래서비스의 비중은 1970년 40% 초반에서 점차 증가해 1980년 45.0%에 이르렀으며,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에는 줄어들어 2000년 39.6%가 됐고, 2000년대와 2010년대 전반에 걸쳐 역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다 2020년(29.2%)을 저점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1970년 20.5%로 시작된 의약품 등(소모품 포함)의 비중은 1980년 21.1%, 1990년 21.2%, 2000년 24.5%로 증가세를 보였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며 2020년 20.0%를 기록했다가 2023년에는 약간 감소해 19.4%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국민의료비 공급자 구성의 추이를 살펴보면, 2023년 국민의료비 중 병원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1.7%, 통원보건의료제공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0.8%, 약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4.7%였으며, 기타(12.8%)에는 거주형장기요양시설, 보조서비스제공자, 예방서비스제공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 병원 의료비는 1970년대 및 1980년대에 30% 후반대를 유지하다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쳐 40%대로 높아졌고, 2010년 이후에도 계속 증가세를 보여 2020년 44.1%로 정점을 찍은 뒤 다시 감소해 2023년 41.7%를 나타났다. 통원보건의료제공자 의료비는 1970년대에는 30%에 미치지 못했으나, 이후 증가해 1990년 37.4%까지 늘어났으며, 2000년 이후부터 감소 추세를 보이며 2020년 27.6%까지 떨어진 뒤 2021년부터 다시 증가해 2023년에는 30.8%를 기록했고, 약국 의료비의 비중은 1970년에는 11.1%였지만 그 후 감소 추세를 보이며 1990년 6.4%로 내려갔다가 2000년 반등한 이후 19∼21% 선을 유지하다가 계속 감소해 2023년 14.7%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