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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조절에 도움되는 한의약적 건강법은?각종 미디어나 언론의 콘텐츠를 접하다 보면 분노와 짜증, 호통 등이 너무나 자주 보여 마음이 불편해지는 때가 있다.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폭 가해자 역을 맡았던 임지연 배우는 분노 연기로 인해 미간에 주름이 생기고 촬영 후에도 예민함이 지속돼 어려움을 겪었음을 밝혀 드라마를 시청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미디어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사소한 일에 쉽게 화를 내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가까운 친구,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물론 적정한 수준의 분노 해소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되지만, 막상 감정이 가라앉으면 후회와 죄책감 탓에 힘들어질 수 있어 분노의 감정을 잘 다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욱’하고 올라오는 분노…참아야 하나, 표현해야 하나? 사람들은 긍정적인 감정만을 드러내고자 하며, 부정적인 감정은 억누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내적 갈등을 침묵하다 보면 불안과 걱정이 쌓여 ‘울화(鬱火)’와 같은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적절하게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김환 자생한방병원 원장(한방신경정신과전문의)은 “한의학에서 울화는 억울한 마음을 삭이지 못해 생긴 화증을 의미하며,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특징”이라며 “병명 속의 ‘화(火)’라는 글자가 말해주듯 신체의 열감이 심해지며, 가야금 줄을 누를 때의 느낌처럼 맥이 빠르게 뛰는 것을 일컫는 맥현삭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맥박이 빨라지는 증상은 심혈관계 질환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한데, 이 같은 사실은 연구논문을 통해 입증되기도 했다. 독일 예나대학에서 6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분노를 참는 사람은 맥박이 빨라져 신체와 정신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연구를 주도한 마르쿠스 문트 박사는 맥박 상승이 반복될 경우 혈압이 높아져 심혈관질환, 암 등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아지며 수명 또한 단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적절한 감정 해소는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친 분노를 터뜨릴 경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분노의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노르아드레날린은 기쁠 때 분비되면 활력을 높이지만 화가 난 상황에서는 근육을 수축시켜 긴장 상태를 유발한다. 이로 인해 어깨와 목 등에 근육통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근육 경련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더불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 분비를 증가시켜 면역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김환 원장은 “분노를 지나치게 해소하거나 감정을 억제하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매번 참다가 터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해소하며 감정 조절 능력을 향상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의학서 울화의 원인은 ‘기의 순환이 막힌 것’ 누적된 분노를 해소하는데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는 운동이 있다. 특히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인 달리기를 30분 이상 실천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행복감이 드는 효과가 있는데, 이는 이른바 ‘러너스하이(Runner’s High)’라고 불리는 상태로, 부정적인 감정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이미 부정적인 감정이 논쟁이나 다툼 등으로 이어진 상황이라면 잠시 대화를 멈추고 감정을 다스리는데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르아드레날린 수치는 분비된 지 15초 만에 최고조에 이르지만 2분 전후로 서서히 수치가 떨어진다. 이어 15분이 지나면 정상 범위까지 감소하므로 감정이 진정된 후에 대화를 다시 이어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스스로 해결이 힘들 정도로 화를 다스리기가 어렵다면 전문적인 진료를 받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한의학에서는 울화의 원인을 기의 순환이 막힌 것으로 보고 침 치료와 뜸, 한약 처방 등을 활용해 치료한다. 먼저 침치료를 실시해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키고 긴장을 완화시킨 후 뜸을 놓아 뭉쳐 있는 기를 원활하게 순환시킨다. 여기에 우황청심원과 같은 한약 처방을 병행하면 신경을 안정시키고 불안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실제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황청심원이 만성 스트레스에 의해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론과 아드레날린 분비를 각각 86.9%, 75.2%가량 억제해 뇌 손상을 예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치료법 이외에도 ‘단중혈(膻中穴)’과 같은 혈자리를 틈틈이 지압하는 것도 스트레스와 긴장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 단중혈은 한의학에서 ‘화(火)가 쌓이는 자리’라고 불리는 곳으로, 단중혈을 검지와 중지로 지그시 누른 채 10초간 문지르면 화를 가라앉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데 효과적이다. 김환 원장은 “분노를 억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적절한 방법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도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화를 없애려 노력하기보다는 다스리는 법을 터득해 가는 것이 삶의 지혜이자 건강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
윤영희 시의원, 류경연 회장 등 홍 회장 단식 격려(30일)윤영희 서울시의회 의원과 류경연 한국한약산업협회 회장이 30일 한의자보개악 저지 투쟁에 나서고 있는 홍주의 회장의 단식장을 방문해 국민건강 증진과 한의사의 진료권 확보를 위해 한의자보 개악은 반드시 멈춰져야 한다면서 홍 회장의 단식 투쟁을 응원했다. -
한대협 자문협의체 단식장 방문 격려(30일)한국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협회 송호섭 이사장과 서병관 상임이사를 비롯 육태한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 원장, 이은용 대한한의학회 부회장 등이 5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장을 만나 한의자동차보험 개악 저지 투쟁에 힘을 보탰다. -
“교통사고 환자의 진료권 확보 반드시 필요”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장은 3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김정재 국회의원과 면담을 갖고, 국토교통부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한의자동차보험 개악의 문제점과 함께 이를 철회시키기 위한 국회의 각별한 관심을 요청했다. 이날 홍 회장은 국토교통부가 교통사고 환자의 원상회복이라는 자동차보험의 취지를 외면한 채 보험회사들의 일방적인 주장과 왜곡된 통계에 기인해 추진되고 있는 한의자동차보험 개악에 대한 그동안의 추진 경과를 설명했다. 특히 아무런 근거도 없이 교통사고 환자 첩약 1회 최대 처방일수를 현행 10일에서 5일로 축소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는 교통사고 환자들이 정당하게 치료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고, 의료인의 진료권까지 침탈하려는 어처구니 없는 졸속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홍 회장은 “지금껏 국토부는 교통사고 환자들의 치료를 제한하는 조치로도 모자라, 이제는 의료인의 신성한 진료권까지 침해하면서 처방 일수를 축소하려는 행태를 자행함으로써 전국 3만 한의사 회원들의 울분을 사고 있다”며 “더 이상 환자들의 진료받을 권리를 침탈하는 국토부와 보험사의 횡포에 대해 의료인으로서 침묵할 수 없기에 삭발 및 단식과 한의계 총궐기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홍 회장은 “국민들의 높은 만족도로 인해 한의의료기관에 대한 내원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진료비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단지 보험회사들의 배만 불려주려는 졸속행정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며 “국회에서도 교통사고 환자들이 정당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의자동차보험 개악 사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대처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김정재 의원은 “한의계가 자동차사고 환자들의 진료를 위해 애써주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전달해준 의견은 국토교통위원회에서도 잘 검토해 해결방안을 찾는데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홍주의 회장-박성우 서울지부장, 자보진료수가분쟁심의회 앞 시위 -
-‘봄 타나봐’ 편- -
한의약 실크로드, 중앙아시아를 넘어 세계로!백유상 한국한의약진흥원 기획협력실장(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7박 8일의 출장 일정 가운데 5일째인 8월 24일 아침 타슈켄트공항을 출발하여 두 번째 방문국인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로 향했다. 타지키스탄은 오랜 기간 내전을 겪으면서 정치적 불안이 이어져 왔으나 최근에는 경제 재건을 목표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경제 수준은 높지 않으나 국가 시스템을 갖춰 가고 있고, 왕관을 의미하는 ‘타직’이라는 명칭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페르시아를 계승한 정통 국가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페르시아를 연상시키는 예스러움이 물씬 풍겼고 품위가 느껴졌다. 첫 방문지는 타지키스탄 국립의학대학. 이곳은 의학, 치의학, 약학, 공중보건학 등 여러 학부를 갖춘 종합대학으로, 굴조다 쿠르보날리 총장과 여러 보직자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회의를 마치고 대학 내 약학센터를 참관했는데 자국산 전통약재의 샘플과 표본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교육과정과 시험 생산용 소규모 GMP 시설. 서로 연결된 여러 개의 방들을 거치면서 간단한 전통약물 제제의 시제품이 만들어졌고 이 모든 과정이 학생 실습 교육에 활용되었다. 점심 식사 후 주타지키스탄 한국대사관에 들렀다. 중앙아시아 전통약재 산업 발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권동석 대사는 타지키스탄의 정치 경제적 상황, 보건의료와 전통의약 현황 등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줬고, 보다 많은 한국의 의료기관과 기업이 타지키스탄에 진출하기를 희망했다. 이어 타지키스탄 보건부를 방문하여 무신조다 무신 제1차관 및 관료들과 타지키스탄 전통약재 산업개발 협력을 위한 회의를 가졌다. 타지키스탄에서는 현재 130여종 전통약재의 가공과 제품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세제 혜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어서, 보건부는 한국 기업들의 참여를 적극 희망했다. 회의의 열띤 분위기와 참석자들의 표정 속에서 전통약재 산업 개발에 대한 타지키스탄 정부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8월 25일 아침. 피곤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국립민속의학센터를 방문했다. 하미도프 가도예비치 부국장으로부터 센터 현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후 부속 진료실을 참관했다. 2004년에 설립된 보건부 산하 국립민속의학센터는 지금까지 연 인원 1만여 명이 이곳에서 이론 및 임상 연수를 받았으며, 수료 후 별다른 라이센스 부여 과정 없이 타지키스탄에서 전통의학 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건물 규모는 크지 않으나 진료실마다 환자들이 북적였고, 많은 전통약재를 구비하여 의사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조제한 후 환자에게 주고 있었다. 탕약보다는 대부분 산제 형식의 투여가 많았다. 또한 마사지 치료실에서는 견습생들 앞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시술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 중 이경민 연구원은 웃옷을 벗고 직접 마사지 시술을 받아보기도 했다. 이븐 시나 의학을 기반으로 한 중앙아시아 전통의학에서는 침구 치료의 내용을 다루지 않아 마사지 등의 자극요법이 발달한 듯했다. 오후에는 의료사업을 추진하는 현지 기업을 방문한데 이어 재래시장에 들러 전통약재를 구입했다. 이 시장도 우즈베키스탄에서처럼 전통약재들을 포대와 상자에 담아 팔고 있었는데, 뿌리를 채취하여 말린 약재들을 구입한 후 상인들로부터 러시아어로 적힌 약재 이름을 건네 받았다. 타지키스탄은 동쪽으로 파미르고원이 위치하고 있어서 평원지대가 적고 농업기술도 발달되지 않아 대부분의 약재를 재배보다는 채취하여 수확한다고 한다. 타지키스탄의 전통의약 현황을 종합해 보면, 아직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하였으나 전통의학에 대한 자부심과 발전을 위한 열의는 매우 높은 편이었다. 무엇보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우수한 효능의 약재들이 생산되고 있었으며 이를 개발하여 산업화할 수 있는 높은 잠재성을 가지고 있었다. 출장 마지막 날,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이동해 주카자흐스탄 총영사관을 방문했다. 태경곤 영사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최정희 지사가 자리를 함께 했다. 태 영사는 카자흐스탄 역사와 문화, 한국과의 관계, 카자흐스탄 전통의약 현황을 알려줬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지리적으로나 정치, 문화적으로 러시아에 가까우며 경제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전통의학에 대한 인식과 수요가 높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동카작 지역을 중심으로 기본 약재들이 생산되고, 남카작 지역에는 구소련 시기부터 제약 클러스터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었다. 총영사관 방문을 마치고 밤늦은 시간에 드디어 인천공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 출장 내내 화두가 되었던 키워드는 이영민 홍보협력팀장이 언급한 ‘한의약 실크로드’였다. 실크로드는 알다시피 고대로부터 수 천 년 동안 이어진, 중국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과 북쪽 길을 따라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 고원을 지나서 지중해 동쪽까지 이르는 장장 6,000여km의 무역로다. 뱃길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에는 동서양의 모든 문물이 주로 이 길을 따라 교통했다. 혹자는 비행기를 타고 왕래하는 오늘날, 고대 실크로드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을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로 보기 어렵고, 더구나 중앙아시아는 사방으로 매우 위험한 분쟁지역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번 출장을 통해 한의약 실크로드를 열어나갈 수 있는 몇 가지 가능성을 확인했다. 전통의학에 대한 자부심을 토대로 시스템과 인프라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과 청정한 자연환경 속에서 좋은 전통약재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또한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가진 ‘실크로드 DNA’를 볼 수 있었다. 무엇이든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것이 훨씬 유용하다는 생각, 드넓은 초원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도 기쁘게 대접하는 유목민의 기질 등등이, 모든 문물과 인종, 문화가 마주치며 흘러가던 진정한 ‘실크로드’ 사람들의 DNA가 아닐까. 이러한 DNA를 가진 중앙아시아와 한국이 협력하였을 때 새로운 유형, 무형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다시 온 세계로 확산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통약재 산업과 관련 의료서비스 분야에서 다양한 협력 모델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이번 출장 대상국에 포함되지 않은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과의 협력 논의는 이후 개최된 한-중앙아 협력 포럼과 주한대사관 방문 등을 통해 진행되었으며 지금도 여러 후속 협력 사업이 추진 중이다. 이번 연구과제를 기획하고 수행하는 데에 도움을 주신 외교부 산하 국제교류재단 관계자분들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배좌섭 단장님 이하 관계자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고생하신 모든 연구 참여자분들의 노고에 큰 감사를 드린다. “한의약 실크로드, 중앙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248)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李秉澤 先生(1935∼2016)은 1972년 경희대 한의대를 만학의 나이로 졸업하고 종로구에서 만춘당한의원을 개원했다. 현재는 아들 이필래(경희대 한의대 84학번) 박사가 한의원을 계승해 진료 중이다. 1974년 5월 창간호로 간행된 『월간 한의약』에는 이병택 선생의 임상연구로 「침 치료를 받기 전 알아야 할 상식」이란 두 쪽짜리 연구논문이 게재돼 있다. 그는 여기에서 ‘芝隱鍼灸醫學會 理事’라고 직함을 적고 있다. 그는 자신이 한방부인과와 침구과를 중심 전문과목으로 개원해서 한의사로 활동 중이라고 밝히면서 침의 작용을 ‘通氣’라고 하고 적혈구, 백혈구, 임파액 등 수많은 물질이 보이지 않는 기의 힘으로 순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침 치료를 받기 전 알아야 할 상식」에서 그는 ①기후 ②음식 ③심리적 작용 ④과로나 피로할 때 ⑤몸이 극도로 쇠약해졌을 때 ⑥시술을 받을 자의 자세 ⑦결론의 순으로 상식적으로 환자의 입장에서 알아야 할 침 치료 받을 때의 주의사항을 적고 있다. 아래에 그 내용을 그의 목소리로 정리한다. ①기후: 일기가 온화하고 화창한 날씨에는 우리의 몸도 여기에 순응하고 있으나 소나기와 천둥이 치는 악천후에는 우리의 심리적 면과 육체적으로 침울하거나 우울하며 피부 또한 긴장한 상태 하에 있는 것이다. 좋은 날씨에 침을 맞는 것이 좋다. 그러나 피치 못해 맞아야 할 때는 상관없다. ②음식: 식사는 너무 과식한 후나 과음한 후는 피하는 것이 좋다. 급체로 關格이 된 경우는 제외하고 가급적 위의 부담이 적고 어느 정도 완하된 후에 침 치료가 좋다. 너무나 음식을 못 먹어서 기아상태에도 침은 피한다. ③심리적 작용: 침에 대한 공포심이 대단한 때에는 어느 정도 공포의 환경에서 벗어난 다음에 치료를 받아야 하며, 大驚·大怒時에는 마음이 안정된 후에 施鍼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시술을 받는 자나 시술하는 자도 같다. 예컨대 너무 화가 난 시술자가 침을 놓았다면 모르는 사이에 침으로 독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어긴 즉 쇼크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④과로나 피로할 때: 너무 과로하여 피로할 때에 침을 맞으면 얼마 아니 남은 氣力이 脫氣될까 염려된다. 식욕이 없어서 식사를 조금하고 맥 빠지게 간신히 왔을 때 차를 타고 막 들어온 경우, 뛰어서 숨이 차서 왔을 때 등은 5∼10분 정도 안정시킨 후에 침을 시술해야 한다. ⑤몸이 극도로 쇠약해졌을 때: 오랜 질병으로 피골이 상접하게 약화된 경우, 上血이나 下血을 많이 하여 貧血을 일으키는 때, 泄瀉를 많이 하였거나 땀을 많이 흘리며 氣와 血이 허약해졌을 때, 産後 얼마 아니되었을 때는 體液의 감소로서 남은 氣力을 소모시킬까 두렵기 때문이다. ⑥시술을 받을 자의 자세: 서서 있을 때 침을 놓는 것과 앉아 있을 때 침을 맞는 것과 편하게 드러누워서 침의 치료를 받을 때에 몸의 편안하고 불편하고에 따라서 머리가 팽돌며 아찔하다든지 속이 메식메식하여 토할 듯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니 이를 사전에 막을 수 있어야 한다. ⑦결론: 이상의 내용을 시술자는 사전에 잘 파악하여 치료에 임해야 하고, 치료를 받는 입장에서도 이해하고 치료를 받아야 질병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
한의대에 안부를 묻다-21이원희 동신대학교 한의학과 본과 3학년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전국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학생회연합 소속 학생들에게 학업 및 대학 생활의 이야기를 듣는 ‘한의대에 안부를 묻다’를 게재한다. 작년 한해 동안 동신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생회장과 전국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이하 전한련) 교육국장으로 활동하면서 학교 안으로는 동신대 한의과대학의 교육과정 개편을, 밖으로는 전국 12개 한의과대학에서 KAS2022에 따른 교육과정 개편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혹은 할 것인지를 면담을 통해 알아보고 자료집을 발간했다. 대학별 면담 이전에, 기초과목에 한하여 현행 교육과정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표를 만들어 대학별로 이 과목을 왜 채택했는지, 왜 이 학기에 배정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준비할 수 있었는데, 면담을 통해 커리큘럼에 차이가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교수자의 역량 및 대학의 인프라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대부분 대학에서는 KAS2022의 인증기준에 부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KAS2022 인증을 통해 신교육과정을 만들고 더 우수한 수업을 기획할 수 있게 됐다는 데에는 찬성하는 의견이 절대적이었지만, 인증기준이 갑자기 과도하게 높아지고 대학별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승인된 기준이 버겁다는 의견도 많았다. 비판받는 여러 기준이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학생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데 있다고 보았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려면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의 의견이 많이 반영돼야 하는데, ‘19년도 입학 이후 아무리 코로나19 이슈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대규모로 학생 의견을 조사한 게 작년에 한평원에서 진행했던 K-DREEM 설문 단 하나에 불과했다. “교육과정 개편시 학생 의견 충분히 반영 안돼” 작년의 활동을 통해 한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은 학생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기마다 개정을 거듭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대학별 사정을 직접 면담을 통해 들어보니 대학별 인프라와 교수님의 역량이 달라서 현실적으로는 대학이나 교수님 사정에 맞춘 수업을 할 수밖에 없겠다는 데에는 찬성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학생 의견이 너무 경시되는 것 같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대부분 대학의 교수님께서 교수자 입장에서도 학생에게 더 도움이 되는 수업을 하고 싶은데 소통이 부족해서 아쉽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새롭게 무언가를 추진하려 해도 수요자인 학생의 의견이 없으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도 대학 입장을 고려하면 마냥 쉽지는 않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그래서 학생 차원에서도 대학별 교류를 통해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피드백을 담은 데이터를 6년 동안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를 통해 KAS2022를 피드백하고 ‘28년 이후의 인증에서는 학생 의견을 더 반영할 수 있도록 전한련 차원에서 한평원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올해부터 모든 대학이 함께하는 교육협의체를 신설하는 것을 논의하게 됐다. 아직 정식 출범하지도 않았고, 대학별 사정에 따라 무산될 수도 있겠지만, 학생 수준에서도 대학 안에서만 쓰이는 피드백이 아니라 전체 대학이 함께 참여하는 신교육과정에 대한 피드백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전한련 차원에서 학생의 의견을 모으는 업무를 기획하면 할수록 재학생의 입장에서는 한의학교육 발전에 많은 한계와 모순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일을 추진하며 느낀 생각을 하나씩 풀어서 서술하고자 한다. 2주기 교육과정 마지막 세대가 바라보는 향후 방향은? 가장 큰 문제는 학교 내에서만 진행하던 교육과정 모니터링에 대한 업무를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전체 한의과대학 차원으로 확장한 전례가 없다는 데 있다. 현재까지는 작년 대학 면담을 근거로, 학생 차원의 피드백 체계가 필요하다는 교수님의 의견을 드러내면서 이 조직체계가 필요하다는 걸 어필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현재 대부분 대학에서 참여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무조건적인 참여가 아니기에 확실한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 학생 자치 업무라 해도 전문가의 도움이 있다면, 전체 학생의 의견을 ‘꾸준히’ 조사하는 데 훨씬 수월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만약 확실한 매뉴얼이 생기고 모든 대학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협의체가 신설된다고 해도 이 업무를 담당할 사람을 쉽게 모집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한의과대학의 재학생은 대학 구분 없이 어떤 직책을 맡더라도 대부분 1년의 임기만을 가진다. 그런데 이 업무는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모니터링, 즉 개정 교육과정의 예1이 졸업할 때까지의 피드백 데이터가 있어야만 유의미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매년 일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 중 누군가는 전체 학교를 대표하는 장이 돼야 하는데 일반 학생이 한의학교육을 잘 알지 못한다는 현황으로 미뤄봤을 때 제대로 된 인수인계가 된다고 보기 힘들고 매년 새로 장을 맡는 사람이 막중한 부담감을 안게 된다는 한계가 있다. 책임 인원에 대한 문제는 모든 대학에서 참여한다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는 한의학교육이 발전된다고 해도 그 수혜를 현재 일하는 사람이 받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더 우수한 교육은 본인 세대 때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며 후배 학번에서 수혜를 받게 된다. 예전에야 후배 한의사가 우수해지면 한의계도 발전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2주기 끝자락과 KAS2022의 경계의 교육을 받는 재학생의 입장은 다르다. 당장 20학번 재학생이 공중보건한의사로 복무하고 오면 23학번 신졸 한의사와 같이 필드에 나갈 수 있는데 23학번부터는 KAS2022로 인한 신교육과정을 받는 학생도 있는 학번이며 실기시험이 도입된다면 같은 졸업생이라 해도 후자가 더 우수한 교육을 받고 양성된 한의사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냥 한의학 교육의 발전을 위해 일해달라고 할 수가 있을까? 전한련이 한의과대학의 학생을 대표하는 기관이고 대의적으로는 이렇게 학생도 의견을 내서 추후 교육이 지금처럼 반강제적으로 체급을 키운 교육이 아니라, 더 현실적으로 학생 입장을 고려해 속을 꽉 채울 수 있는 교육이 될 수 있게끔 하는 게 옳겠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추진했다. 그 속에 너무나 많은 이해관계가 엮여있음에도 불구하고 2주기 교육과정의 마지막 세대는 코로나19 이후 급부상한 한의계 교육 이슈를 예전처럼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기에 반강제적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현재 본과 3학년인 입장으로 이 이슈에서 손을 떼고 학교가 인증에 실패하든, 추후 한의대 교육에 지금보다 더 학생 입장이 반영이 안 되든 나는 내 실력을 기르거나 다른 방법으로 살길을 찾는다면 내가 속한 학번 근처 세대까지는 어떻게든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래 한의학을 바라보았을 때 아무리 세계의학협회의 기준에 부합하고자 해도 지금보다는 더 현실적인 기준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새 인증 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전한련에서도 구조 개혁을 통해 신체제로 업무를 주관하게 된 2023년 올해가 미래 한의학 교육의 방향성을 수정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 생각한다. 교육이슈에 학생들이 목소리 담겼으면 하는 ‘바람’ 결론적으로, 한의과대학 재학생 사이에서도 한의학 교육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점차 많아지고 있으며, 대부분 전체 한의대 재학생이 협업하는 교육 관련 기구의 취지는 공감하나 불투명한 미래와 대학별 인프라와 관련된 문제로 선뜻 참여 의사를 내비치지 않고 있다. 이 업무는 오로지 대의를 위해 진행하는 것이며, 현재 재학생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될 확률은 극히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을 사랑하는 한의학도로서 한의학 교육, 나아가 한의계 전반의 발전을 위해 교육 수요자의 입장으로 목소리를 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한의계에 종사하는 많은 분께서 한의학 교육의 중요성과 학생 활동의 필요성에 공감해 이런저런 목소리를 많이 내어주신다면, 지금의 재학생도 졸업 후 한의사가 되더라도 꾸준히 한의학 교육에 관심을 가져 한의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업무를 하더라도 지속성이 중요하기에 재학생과 졸업생의 꾸준한 관심을 희망한다. -
“선생님이 내 살린 거 알제?”김은혜 경희대학교 산단 연구원 (전 강동경희대한방병원 임상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경희대 산단 연구원의 글을 소개한다. 7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병동 문을 열고 씩씩하게 걸어 들어왔다. “입원하러 왔는데예!” 조용한 병원에 오랜만에 울려 퍼지는 우렁찬 목소리였다. 남자는 어느새 스테이션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은 채 호탕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요, 지가 시골에서 서울 올 때 보자기 하나 달랑 들고 와가꼬 이제 좀 자리 잡았는데예. 주구장창 일만 억수로 했드만 폐암에 걸리삐고. 마 근데 이제 암은 모르겠고 남은 건 내 새끼뿐이라예.” 흔한 자식 자랑 중에 들리는 반가운 경상도 사투리에 허허 웃으며 의무기록지를 펼치자 몇 번을 봐도 참 익숙해지지 않는 문구가 보였다. ‘보호자 없음. 더 이상 시도 가능한 항암 치료 선택지 없음. 본인에게 설명함.’ 첫 문장과 여전히 ‘내 새끼’ 자랑을 하는 환자의 말이 충돌되자 ‘이렇게 자랑스러워하는 자제분이 미처 간병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눈에 보이는 내용과 귀로 들리는 활기찬 목소리의 괴리감이 더 슬프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내 감정에 사로잡혀 환자를 잃을 뻔했던 과거의 몇몇 순간을 떠올리며 먹먹한 마음을 접어두고 환자의 팔을 붙잡아 바이탈을 쟀다. “내 집에 갔다 와야 된다!” 근데 웬걸, 산소포화도가 정상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가 나왔다. “환자분, 숨 안 차세요? 혼자 어떻게 오신 거예요?” “숨 안 차는데예. 집사람은 먼저 가서 혼자 왔심더!” 보통 증상이 없는 상태가 오히려 더 위험한 경우가 많았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환자 말을 끊고서 얼른 코에 산소 줄을 연결하고 뒷말은 더 듣지 못한 채 환자를 병실로 들여보냈다. 한 달 동안 치료를 하며 산소요구량이 많이 적어졌지만 여전히 산소 줄을 떼면 산소포화도가 정상보다 낮았다. 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소를 계속 유지하셔야 될 것 같다고 설명했지만 환자는 “산소 이거 뭐 할라고 합니꺼! 숨차지도 않는데 코만 아프구로!”라고 외치며 산소 줄을 툭 빼고는 매일같이 내 새끼 자랑하기에 바빴다. 정작 그 ‘내 새끼’는 연락처도 없고 그때까지 병원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말이다. 괜히 내가 속상한 마음에 나는 언젠가부터 그 자랑들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반복되는 자식 자랑에도 끝까지 못 들은 척, 대꾸도 하지 않고 산소 줄을 끼워주는 걸 반복하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두 달이 더 지났고 서로 친근하게 부를 정도로 가까워진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나를 급하게 부르며 말을 했다. “내 집에 갔다 와야 된다!” 집 계약서를 숨겨놓았는데 요즘 먼 친척들이 비어 있는 그 집에 자꾸 들어가려고 한다며, 서류가 잘 있는지 불안해서 참다 참다 이제는 가지고 와야겠다는 것이었다. 산소를 단 암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는 것도 아니고, 집문서 챙기겠다고 보호자가 없는 곳으로 보내 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절대 안 된다고 받아쳤지만 할아버지는 “집에 안 보내 주면 내 불안해서 죽는다! 보내주도 죽고 안 보내주도 죽으면 마 보내주야지!”라며 맞불을 놓았다. 그렇게 몇 분 동안 실랑이가 오갔다. “그거 가지러 가시다가 집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다고요!” “알고 있다! 그래도 개안타고! 그기 내 한테 어떤 집인지 아나!” 강하게 막아서는 내 모습에 할아버지는 그 집과 얽힌 당신의 70년 인생사를 들려주었다. 할아버지네 집은 시골에서 아버지가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해서 나름 풍족했다고 한다. 다만 가정 폭력을 못 이긴 어머니가 도망을 갔다. 혼자 남은 9살의 할아버지는 보자기에 생필품만 넣고 도망쳐 서울에 올라왔다. 20대까지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맞아가면서 일만 했더니 어느 정도 돈이 모였다. 할아버지는 그 돈 전부를 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운 지식을 써먹어서 상가 하나에 투자했다. 그런데 그게 사기일 줄 누가 알았을까. 다행히 공장에서의 평판이 좋아 공장 사장님이 나서서 도와준 덕분에 사기꾼을 감옥에는 넣었지만 돈은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연이 되어 사장의 딸과 결혼을 했다.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보고 자란 게 없어 버는 돈을 그대로 다 모아 지금의 그 집을 사서 아내한테 주었다고 한다. 선물 준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무리를 했는지 아내는 집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몇 개월 동안 삭신이 쑤신다는 말만 일삼았는데 알고 보니 뼈에 전이가 된 유방암 때문이었다. 아내는 몇 달 뒤 세상을 떠났다. 충격을 받은 할아버지는 더욱 일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점점 쌓여 가는 돈을 쓸 곳이 없어서 아내를 생각하며 집만 꾸미면서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정기적으로 하던 건강검진에서 몇십년 동안 계속 흡입해온 공장에서 다루던 물질 때문에 폐암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이 마음 이해 못 하나” “선생님요, 내가 죽을 때 이 집을 못 들고 가는 걸 몰라서 이라는 거 같나. 거는 내가 집사람한테 처음으로 좋은 거 사준 기다. 근데 그것도 제대로 못 누렸고 내도 쌔빠지게 일한 대가로 지금 이러고 있다 아이가. 그 집이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남은 증거물 아이가.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 우리 집사람이 있었다는 증거! 이렇게 빼앗기면 내 죽는 기다. 가다가 죽더라도 내가 시도는 해봐야 한이 없지 않겠나. 이 마음 이해 못 하나.” 이 말을 끝으로 할아버지는 그날 오후에 바로 퇴원했다. 70년간의 인생 이야기에서 매일같이 자랑하는 자식 이야기는 왜 빠졌는지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실랑이를 벌이다 퇴원 준비를 빨리 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라 이내 곧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정말 목숨을 걸기라도 했는지 할아버지는 내가 법적으로 문제없는 퇴원을 위해 내민 수많은 정 없는 조건에도 반박 한 번 하지 않았다. 외출 중 사고는 병원 책임이 되므로 외출이 아닌 퇴원으로 나가실 것, 퇴원의 위험성, 특히 갑자기 임종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숙지한 채 환자 의지로 퇴원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의퇴원서’를 작성하고 가실 것, 집이 왕복 2시간 거리이므로 2시간 지나도 연락 없으면 병원에서도 연락을 취하지 않을 것 등 나를 보호하기 위해 선을 긋는 통보였다. 오야 오야, 하면서 동의서에 서명을 마친 할아버지는 내 손에 체크카드를 쥐여 주고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병원을 떠났다. “가다가 죽었는데 병원에 못 낸 돈이 있을 수 있으니 알아서 하라.” 내 생애 가장 긴 2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서류상으로는 방어를 다 해놓았으니 문제될 게 없다고 되뇌었지만 카드를 쥔 손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렸고 두 다리는 1층 병원 입구에서 도저히 가만있지를 못했다. 영겁 같은 2시간에서 10분이나 더 지나서야 택시 하나가 병원 입구에서 멈추더니, 누가 봐도 몇십년 되어 보이는 분홍색의 보자기를 가슴에 품은 할아버지가 흰자위를 뒤집고 들어오며 외쳤다. “선생님요, 내 산소 좀 도!!!! 숨넘어간다!!!!” “그건 지금도 좀 미안하제?” 상경할 때 메고 왔다는 보자기 이야기를 왜 이렇게 자주 하시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 보자기 안에 집 서류가 숨겨져 있었다. 병원에 얼굴 한 번 비추지도 않았던 ‘내 새끼’는 사람이 아닌 마침내 다시 당신 품속으로 넣어 온 ‘그 집’이었다. 그리고 그 집은 서초동 소재의 아주 넓은 단독주택이었다(갑자기 할아버지의 행동이 더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자식은 반복된 유산으로 인해 처음부터 없었다고 한다. 마침내 집문서를 손에 쥔 할아버지는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1년 가까이 입원하면서 더 기운을 차렸고, 그 1년 사이 신약 항암제가 개발되어 항암 치료를 다시 받았다. 신약에 대한 반응이 매우 좋아 대부분의 종양 크기가 줄어서 절제 수술도 받았다. 지금은 한 군데에만 암이 있는데 크기가 몇 년째 커지지 않아서 검사만 꾸준히 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가끔 생각나면 전화를 거는데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내 살린 거 알제? 근데 거 집에 보내 줄 거면 땡깡 직이지 말고 진즉에 보내 주지! 그건 지금도 좀 미안하제?”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 할아버지를 살린 건 항암 치료고 그마저도 극히 일부의 매우 기적적인 경우다. 발을 동동 구르던 2시간 10분의 순간으로 돌아가면 지금도 이유 모를 화가 불쑥 올라오곤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분이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왔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건 아마 내가 가늠할 수 없는 넓이와 깊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