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경의 난민 클리닉에 뿌리내린 침구의학정예영(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한의무석사과정 2학년) [한의신문] 지난 8월10일 태국 매 솟(Mae Sot)의 매타오 클리닉(Mae Tao Clinic·MTC)에서 제3회 침의 날(Acupuncture Day) 행사가 개최됐다. '알코올 중독 치료와 예방에서 침구의학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이번 워크숍에는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오유나 교수와 WHO 전통보완통합의학 전략자문위원 이명수 교수가 연자로 나섰고, 메딕 (medic·클리닉이 자체 양성한 현지 의료 인력)과 간호사 등 매타오 클리닉 의료진이 참여했다. 난민 진료의 최전선에 선 클리닉에서 침구의학의 성과와 역할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국경의 의료 사각지대, 매타오 클리닉 매 솟은 방콕에서 서북쪽으로 약500km 떨어진 태국-미얀마 국경 도시다. 공항에서 차로5분이면 미얀마 국경에 닿는다. 이곳은 오랜 내전과 정치적 혼란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난민과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산다. 상당수는 합법적 신분증 없이 살아가기에 병원을 오가는 도중 신분증 검사에 걸리면 체포되어 미얀마로 추방될 수 있다. 아픈 몸을 돌보는 일 자체가 추방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 되는 것이다. 이 의료 사각지대를 37년째 지켜온 곳이 매타오 클리닉이다. 1988년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유혈 진압을 피해 국경을 넘은 카렌족 여성 의사 신시아 마웅(Cynthia Maung) 박사가 1989년 주택 한 귀퉁이에서 진료를 시작한 것이 출발이었다. 현재 의료진과 교직원 500여 명이 일하며 하루 평균 200~300명의 환자를 무료로 진료한다. 특히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출생증명이 발급되는데, 무국적 상태로 살아가는 이주민들에게 이 문서는 훗날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삶의 근간이 된다. 난민들과 18년을 함께 한 침구과 매타오 클리닉의 침구과는2009년 독일인 의사 울리(Uli) 박사가 개설했고, 2015년부터는 한국의 박강호 과장이 합류해 현지 의료 인력을 교육해 왔다. 처음에는 클리닉 내부에서도 "저 부서가 계속 있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선이 있었다. 분위기를 바꾼 것은 효과였다. 클리닉 스태프들을 치료하며 효과를 보여주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됐고, 침구과는 통합 진료 파트로 자리 잡았다. 성장세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침구과는 매일 17~18명의 환자를 진료하며, 연간 진료 건수는2024년 2,835건에서 2025년 3,252건으로 약 15% 증가했다. 훈련받은 인력들이 난민촌과 미얀마 소수민족 지역에 클리닉을 열고 활동하는 단계로도 확장되고 있다. 2025년부터는 모든 치료 내역을 'acupuncture logbook'에 기록하고 이를 컴퓨터로 옮겨 전산화하고 있다. 이 기록은 침구과의 성장을 수치로 증명하는 근거이자, 기록이 부족한 영역을 짚어 다음 교육의 방향을 정하는 임상 기반이 되고 있었다. Acupuncture Day, 알코올 중독을 말하다 이번 워크숍 주제가 알코올 중독이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경 지역 공동체에서 술은 유흥보다 고통을 견디는 수단에 가깝다. 고된 저임금 노동에 지친 몸과 미얀마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불면으로 이어지고, 잠들기 위해 마시는 술이 중독으로 굳어지는 경우가 많다. 중독은 다시 가정과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오유나 교수는 "WHO 통계에 따르면 연간 약260만 명이 알코올 관련 원인으로 사망하지만, 알코올 중독 환자 중 치료를 받는 비율은 극히 일부에 그친다"며 "이러한 치료 격차는 매 솟처럼 보건의료 수준이 낙후된 지역에서 더욱 크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NADA 이침 프로토콜과 신문혈(HT7)·축빈혈(KI9) 등 알코올 중독과 금단증상 완화에 대해 연구되어 온 혈위를 소개하며 "침구치료는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 표준 치료를 보완할 수 있는 저비용의 안전한 선택지"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의 음주 문화 변화와 국가 정책 그리고 20대 여성의 음주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최근 경향도 함께 소개해 현지 참가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WHO 전통보완통합의학 전략자문위원 이명수 교수는 온라인으로 참여해 WHO가 침 치료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 효과성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나아가 전통의학을 각국 보건의료체계에 통합하기 위해 어떤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지를 소개했다. 매타오 클리닉 침구과의 진료가 국제 보건의 언어로는 어떻게 설명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신뢰가 연 다음 무대, 응급실 침구과가 10년간 쌓아온 신뢰는 새로 문을 연 응급실로 이어졌다. 이튿날인 11일 오전, 오유나 교수는 응급실에서 현지 의료진을 대상으로 '급성 통증 관리를 위한 침구의학'을 주제로 강의했다. 침 진통의 기전과 급성 요통·발목 염좌·복통에 대한 임상 근거, 질환별 상용 혈위를 소개하되, 위험 신호(red flag)를 감별해 필요한 경우 즉시 의뢰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장 분명하게 강조했다. 강의 후에는 응급 현장에서의 이침 활용과 자락요법 등 실제 적용 가능성을 두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써보니 좋더라"는 경험담을 넘어 근거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된 자리였다. 한의학의 역할과 가능성 매타오 클리닉에서 침구과는 인도주의적 상황(분쟁·재난·난민 위기 등)에서 한의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 경험은 우리 한의계에 세 가지를 남긴다. 첫째, 국제 협력의 출발점은 '무엇을 전할 것인가'보다 '현지 실정에 무엇이 맞는가'를 묻는 일이어야 한다. 둘째, 일회성 진료보다 현지 인력이 스스로 운용할 수 있는 교육 체계를 남겨야 한다. 셋째, 축적된 진료 기록을 분석 가능한 자료로 다듬어 인도주의적 상황에서의 침 치료 근거를 수립하고, 이를 비슷한 처지의 다른 현장과 공유하는 협력이 필요하다. 한의학은 국경의 진료소에서 이미 기여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교류가 행사를 넘어 현지 교육과 공동 연구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 본문의 수치와 기관 연혁은 매타오 클리닉 공개자료와 현지 관계자의 설명, 연자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다정한 마음을 나누다[한의신문] 한의사 6명과 일반단원 11명으로 구성된 제185차 WFK-LCK 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은 지난 8월 20일부터 27일까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의료봉사를 수행했다. 4일간의 진료 기간 동안 총 863명(1일 차 114명, 2일 차 219명, 3일 차 311명, 4일 차 219명)의 현지 주민들이 한의학 진료를 받았으며, 진료를 넘어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로의 이동 7시간의 비행 끝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타슈켄트의 전통의학 과학임상센터였다. 현지 교육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한인들의 역사와 과거 이곳에서 한의학 무료 진료소가 운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현지에서 한의학 관련 강의와 실습이 이루어지고 있어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배우러 온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후 봉사에 필요한 용품을 챙겨, 식사를 마친 뒤 기차를 타고 사마르칸트로 이동했다. 팀장님의 지도 아래, 개인 짐과 봉사용품 박스를 기차에 싣고 옮기는 과정이 분주하게 이루어졌다. 정신없는 순간이었지만 서로를 도우며 봉사 시작 전부터 단원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고, 현지인들의 도움도 받으며 그들의 따뜻한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진료 중 마주한 우즈베키스탄 환자들 운이 좋게도 이번 봉사에서 안내부터 예진, 진료 보조까지 다양한 역할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안내를 하며 짧은 현지어를 배웠고, 예진을 하며 생각보다 고혈압과 두통을 호소하거나 담낭이나 신장에 염증 또는 결석이 있는 환자분들이 많다고 느꼈다. 나중에 송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름진 양고기와 소고기, 탄수화물 위주의 식생활과 석회질이 포함된 물 등의 생활환경이 이러한 질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Hijama’라는 습식 부항과 유사한 전통 치료법이 있어, 현지인들이 습식 부항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현장에서 환자들을 직접 만나고 선생님들의 설명을 들으며, 현지의 의료환경과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봉사를 통해 주고받은 진심 안내를 하던 중 병원의 간호사분이 번역기 화면을 보여주며 “힘들지 않나요? 다들 행복해 보여요.”라고 물으신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그 말을 보고 주위를 둘러보니, 환자가 몰리는 상황에서도 웃으며 환대하는 단원들, 낯선 의학 용어를 찾아가며 애써주시는 통역사분들, 그리고 진료에 진심을 다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당시에 ‘힘들 때도 있지만, 함께하는 사람들과 기뻐하는 환자분들의 모습에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이 더 크다’라고 답했는데, 그 순간 우리와 현지분들 사이에 진심이 통한 듯해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리의 진심이 전해진 덕분인지, 환자분들은 매 순간 “라흐맛(Rahmat)”이라고 이야기하셨다. 어떤 분들은 포도와 초콜릿을 나누어 주시기도 했고, 마지막 날에는 “내년에도 오느냐”, “매년 오느냐”고 물어보시기도 했다. 언어는 달랐지만 현지분들과 서로의 마음이 통했던 이 순간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봉사를 마치며 생애 첫 해외 의료봉사를 통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서로의 감정과 마음을 나누는 나눔의 가치를 실감했다. 졸업을 앞두고 어떤 한의사가 되어야 할지 고민했는데, 이번 봉사를 통해 나눔의 가치를 기억하고 실천하는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끝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애써주신 김상균 팀장님과 쉴 틈 없이 모두를 챙겨주신 권수연 대리님께 감사드린다. 봉사 내내 다양한 현지식을 경험하도록 힘써준 서은해 언니와 모히라, 진료 전후로 다양한 질문에 답해주시고 단원들의 장난도 잘 받아주신 송영일 교수님과 윤희영, 권남규, 김태규, 설승민, 정광호 선생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현지에서 봉사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신 통역사분들과 병원 관계자분들, 그리고 봉사 기간 동안 서로 돕고 챙겨준 모든 단원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다정한 분들과 함께하며 좋은 태도를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이번 봉사에서 함께했던 모든 분들에게 앞으로도 다정하고 따뜻한 순간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
낯선 땅 사마르칸트에 남기고 온 한의학의 온기[한의신문] KOMSTA(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는 1993년 설립 이후 정부의 지원과 대상국 정식 의료 허가를 받아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한 지속적인 의료봉사 및 질병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단체이다. 이번 제185차 WFK-LKC KOMSTA 봉사단은 17명(한의사6명, 일반단원 11명)으로 구성되어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봉사활동을 수행했다. 4일동안 약900여 명의 환자들이 진료소를 방문했으며, 침, 부항, 추나, 한약 등 다양한 한의약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일반 단원들은 접수 및 안내, 예진, 진료보조, 약재 제공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실크로드의 영광 이면에 가려진 의료 소외의 민낯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는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2시간 가량 고속열차(아프로시욥)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지방 도시이다. 실크로드의 중심지로서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도시지만, 화려한 도심을 벗어난 외곽 지역의 의료 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실정이었다. 우리가 진료소로 삼은 사마르칸트 국립의대 진료소는 지역 내에서 나름의 구실을 하는 곳이었음에도, 주민들이 양질의1차 의료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진료가 시작되자 이른 아침부터 낡은 미니버스를 몇 시간씩 타고 온 환자들, 땡볕 아래 먼지 나는 흙길을 걸어 찾아온 분들로 대기열이 끝없이 이어졌다. 간절한 눈빛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그들을 보며, 이 멀고 낯선 땅에 우리가 와야만 했던 이유가 선명해졌다. 낯선 땅에서 닿은 한의학 진료소는 오랜 노동으로 심각한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로 가득했다. 평생 제대로 된 통증 관리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채, 만성 질환을 묵묵히 안고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굽은 등과 굳은 손마디는 유독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특히 티 없이 밝고 쾌활한 소아 환자들을 마주할 때면 역설적으로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제때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해 뚜렷한 발달 지연과 신체 불균형을 겪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이방인의 손길에 기꺼이 몸을 맡겨준 환자들의 모습은 도리어 큰 위로가 되었다. 한의학 진료를 통해 조금이나마 통증을 덜어내며 환하게 웃어 보이던 그들을 보며, 질병을 넘어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진정한 치유의 의미와 깊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마르칸트가 남긴 유대감, 그리고 진료실 밖의 책임감 이번 사마르칸트 진료소에서의 경험은 내가 선택한 한의학이라는 길에 굳건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선배 한의사분들이 정성 어린 치료로 환자들의 굳은 몸과 마음을 풀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책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의술의 참된 무게를 깨달았다. 의료란 단순히 아픈 곳을 낫게 하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신뢰를 쌓고 삶의 희망을 되찾아주는 위대한 과정임을 배웠다. 낯선 문화 속에서 현지인들과 나누었던 깊은 유대감을 자양분 삼아, 지속적인 나눔을 실천하며 의료인이 지녀야 할 무거운 책임감을 잊지 않고 나아가겠다. -
다른 언어와 같은 마음, 한의학이 걷고 있는 길[한의신문] KOMSTA(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는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해외 취약계층을 위한 한의약 의료봉사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번 185차 WFK-LKC KOMSTA 봉사단은 17명(한의사 7명, 학생단원 10명)으로 구성되어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빛났던 한방의료의 순간 4일 간의 봉사 중 첫 하루는 많지 않은 환자들로 시작했다. 그러나 청결한 환경에서 진행된 단원들의 친절한 안내와 한의사 선생님들의 침, 부항, 한약, 한방 파스 등을 활용한 뛰어난 치료는 금세 효과를 발휘했다. 덕분에 봉사 이틀 차부터는 하루에 200~300명에 달하는 환자분들이 진료소를 방문했다.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각 단원들은 배정받은 업무에 맞춰 통역사 선생님들과 적절히 소통하며 큰 혼란없이 진료환경을 구성했다. 지금껏 국내의 다양한 지역으로 의료봉사활동들에 참여했지만, 본 봉사만큼 많은 환자들과 만나게 된 경험은 없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과 발전의 기회를 넘어 단원들 간의 교류, 언어가 다른 환자들과의 소통, 한방치료의 효과들은 오래 기억 속에 남을 순간들이었다. 봉사를 마치며 짧은 봉사기간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치료해야할 환자들의 예후를 살피지 못하고 귀국한 것이 마음에 남는다. 허나, 해당 봉사의 취지와 환자분들의 환대는 질환의 완치가 아니더라도 환자분들의 생활 속 불편을 해결하고, 그들의 마음에 위로를 남길 수 있음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전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봉사하며 보낸 일주일은 한의사로서의 지향점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잡는 시간이었다. 이 순간들의 마음을 잊지 않기로 다짐하며, 좋은 봉사의 기회를 준 KOMSTA와 이번 185차 봉사의 한의사 선생님들, 학생단원들, 통역사분들과 방문해주신 우즈베키스탄 환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좋은 의료’, ‘이상적인 의료’, ‘내가 할 의료?’Ⅰ. 서론 — 안다고 할 수 있었으면 세상이 진즉 좋아졌겠지 7월 22일부터 25일까지 일본의 나가노현 의료현장에 다녀왔다. 감사하게도 참의료실천청년한의사회의 지원을 받아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에서 주관하는 연수의 기회를 얻었다. 이전에도 청년한의사회에서 여러 지원과 강의를 통해 배운 바 있어, 나는 나름대로 사회적 의료현장에 대해 알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사의련 민의련 청한에게 모두 죄송한 생각이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일본의 의료체계를 배우고 참관하는 일정이라고 생각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공공의료를 이전부터 아예 몰랐다고 한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모르진 않는데, 안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실제로 해 본 적도, 진로를 그쪽으로 잡은 적도, 내가 사회적 의료, 민주의료, 참의료, 이렇게 불리는 의료를 할 자신이 정말로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본과 3학년이다. 공공의료와 일차의료 현장에 관심이 있지만, 관심이 있다고 대놓고 이야기할 만큼 용기 있거나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공의료에 대한 지식은 쌓아두었으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안다고 할 수 있었으면 세상이 진즉 좋아졌겠지. 내가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막혔다. 그동안 학교에서 의료를 주로 질병의 진단과 치료, 환자 개인에 대한 의료서비스라는 관점에서 배워 온 것도 클 것이다(학교라는 시스템에 유감은 없다. 진단과 치료를 알아야 먼저 의료를 실천할 수 있고, 교수님들은 최선을 다해 우리를 의료인으로 만들어주신다). 다만 허덕이며 강의를 따라가는 내게, ‘좋은 의료’ 혹은 ‘이상적인 의료’와 내가 할 의료는 자각도 없이 완전히 분리돼버렸다. 알아. 그런데 세상만사가 안다고 해결되진 않잖아. 누가 어떻게 뭘 희생해서 해낼 건데? 정답 없는 질문에 답하자면, 일단 그걸 할 사람이 나는 아닌 것 같았다. 미리 답을 밝혀둔다면, 나가노현에서 나는 드라마틱한 해답을 찾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순히 일본의 의료체계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던 의료에 대한 생각을 돌아보는 연수였다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번 연수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경험은 ① 나가노현 민의련의 역사와 활동에 대한 강연, ② 나가노 중앙 케어센터 견학 및 체험, ③ 어린이 빈곤 워크숍과 연수 되돌아보기였다. 각각의 경험은 사회적 의료와 참의료, 그리고 예비의료인으로서의 나에 대하여 다시 세우는 버팀목이 되었다. Ⅱ. 본론 1. <나가노현 민의련의 역사와 활동, 소중히 여기는 것> —사회적 의료는 특별한 사람들의 선택이 아니다 우리를 처음 반겨주신 마쓰모토 협립병원의 사노 다쓰오 회장님. 비행을 마친 열두 명의 의료계열 학생들에게 사노 다쓰오 회장님께서는 <나가노현 민의련의 역사와 활동,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 강연해주셨다. 민의련의 역사와 활동, 민의련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신 시간이었다. 민의련은 의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시작이다. 전전 무산자 진료소 운동, 전후 민주진료소 활동을 이어가서 1953년 결성되었다. 민의련이 지향하는 의료는 질병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질병 + 생활환경 + 노동환경+ 경제적 상황을 모두 바라보는 것인데, ‘무차별/평등의 의료’에 대해 무척 강조하셨다. 반드시 모두가 지켜야 할, 의료의 원칙이라고. 동종업계에서는 민의련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낯선 원칙에 손을 들고 질문했다. 사노 다쓰오 회장님께서는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일부 존재하지만, “민의련의 의료 원칙 자체는 의료인이라면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가치입니다.” 큰 울림을 느꼈다. 의료인의 역할을 고민하던 차였다. 의료인으로서 나는 당연히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게 되겠으나, ‘사회적 의료’가 정말로 의료인의 역할인지. 그냥 의료만 하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나는 내가 사회적 의료를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예방의학과 의료인문학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나는 내 삐딱한 고민의 정체가 냉소와 회의였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당연한 원칙인데. 현실 운운하면서 포기하기에 나는 아직 학생인걸. 사회적 의료는 특별한 사람들의 선택이 아니다. 내가 당연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실천하기 어렵다고 여겼던 의료의 가치가,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의료의 원칙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는 앞으로 어떤 의료인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다시금 던져보게 되었다. 2. 나가노 중앙 케어센터 견학 — ‘환자의 삶을 본다’는 모습 2일차. 나가노 중앙 케어센터의 여러 시설을 견학했다. 쓰루가노카제, 후루사토 등의 현장을 둘러보고 머신을 직접 체험했다. 특히 주요하게 설명해주셨고 와 닿았던 부분은 각 시설이 대상자의 생활과 기능 회복/유지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였다. 나가노 중앙케어센터의 쓰루가노카제에서는 개별성을 존중한 생활환경을, ‘그 사람의 방’을 신경쓴다. 개인 가구와 물건을 사용하고 들여올 수 있는 등 개인이 습관과 취향을 유지할 수 있게끔 규칙이 짜여졌다. 환자의 관리되는 삶 이상으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한 공간이었다. 노인보건시설 후루사토는 병원과 가정 사이의 중간시설로, 병원 치료 → 후루사토에서 재활·생활 적응 → 가정 복귀라는 수순을 밟는다. 최종 목표는 가정에 복귀하고 자립하는 것이다. 중앙케어센터에서는 화장실의 변기 위치와 기댈 수 있는 벽의 위치를 조정하고, 욕탕의 욕조를 올리고 내릴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등 굉장히 소소한 부분들을 신경 쓴 게 인상적이었다. 이 공간에서 실제로 생활할 사람에 대한 배려가 보기만 해도 느껴졌다. 단순히 시설을 보는 것보다 환자의 움직임과 일상생활을 지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설이 환자 친화적이라는 점에 새삼스레 놀랐는데, 환자를 중심으로 두는 시설이 아주 제도화되어 잘 안착했다는 점에서 그랬었다. 이걸 하려면 병원 의료진과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고될 것 같은데… 하는 질문에, 어제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회적 의료는 분명한 지향점이며, 의료인이라면 이를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주 생각했다. 사회적 의료는 거대하고 비현실적인 것이다. 개인이 감당하기는 크다. 희생을 요구한다. 뛰어난 의료인이어야만 사회적 의료를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나에겐 좀… 어렵지 않을까. 내 역할 밖의 일이야. 결국 난 질환을 가진 환자를 마주해야 하는 의료인이 될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사회적 의료를 너무 거대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한 사람이 자신의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 사람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 역시 환자의 삶을 중심에 두는 의료의 한 형태였다. 그건 사람이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도록 돕는 구체적인 실천이었고, 나가노 중앙케어센터와 후루사토에서 실제로 그런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환자를 ‘질환을 가진 사람’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정도는 나의 시선 변화니까, 조금씩 해볼 수 있을지도, 하고 작은 생각이 자라난다. 3. 어린이 빈곤 워크숍 — 빈곤 문제에 맞서는 것은, 재미있어 어린이 빈곤 워크숍에서는 켄와카이 병원 소아과 의사 와다 히로시 선생님의 강연을 들었다. 빈곤층 가족은 먼저 묻지 않으면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진이 작은 신호를 살피고 먼저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의료진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상담과 자원 연계, 자기긍정감 향상, 고립 해소 등을 통해 아이를 돕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 빈곤 자체를 줄이기 위해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었다. 특히 강연 마지막의 “빈곤 문제에 맞서는 것은 재미있어!”라는 말은 사회문제에 개입하는 일을 단순한 희생이나 사명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빈곤이 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개인의 건강을 그 사람의 생활환경과 사회적 조건 속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새로운 지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워크숍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을 놓고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면서, 단순히 이러한 개념을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한 사람의 건강 문제를 그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바라보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는 있지, 그런데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건 달라. 여기서 항상 멈춰왔다. 그런데 예시로 들어주신 쌀 비치하기, 좋은 옷 대여소 만들기, 이런 걸 들으니 소소한 부분에서의 행동이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오는지 실감했다. 내가 소소하게 신경쓰면 달라질 수 있구나. 환자의 건강을 바라볼 때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생활할까?”에서 멈추지 않고, “이 사람이 이렇게 생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은 무엇일까?”까지 질문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건 진료하고 치료할 때 내가 말 한두 마디만 덧붙여 말하는 걸로도 알 수 있다. 선생님. 빈곤 문제에 맞서는 게 정말 재밌기만 합니까? 반드시 짚고 넘어갈 점. 와다 선생님께서는 빈곤 문제에 맞서는 게 전혀 안 힘들다고 절대 말하지 않으셨다. 힘들다. 힘들긴 힘든데, 한 사람 한 가족의 삶이 바뀔 때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하셨다. 그걸 들으면서 나는 어차피 안 된다고, 어차피 못 할 거라고, 아무것도 안 바뀔 거라고 결론짓고 팔짱 끼고 보진 않기로 했다. Ⅲ. 결론 — 천지개벽은 없지만 미래의 나 또는 우리에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 그것이 시스템적으로 안착하여 당연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현재. 그런 현장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기회이자 본과 3학년 시점에서 큰 울림이 되었다. 그렇다고 결론을 참 의료인으로서 천지개벽을 겪었다고, 사회적 의료에 완전히 헌신하도록 이 연수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라고 말하진 않겠다.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별로 현실적이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저렇게 말하고 나서 분명히 지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소속을 두고 활동하는 단체의 전체 이름은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라서, 나는 참의료실천을 위한 길을 항상 고민해왔다.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건 의외로 쉽다. 그런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렵다. 문제를 내가 나의 공간에서 해결하는 일이 제일로 어렵다. 문제를 느끼고, 항의하고, 사회를 바꾸는 일은, 무척 지친다.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이곳에 많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나는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가노에서의 4일 동안, 지치지 않고 언제나, 오래, 당연하게 평등한 의료를 해내는 사람들 하나하나에 감명을 받았다. 나가노현에서 만난 분들은 세 번째 단계, 나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구체적인 현장이었다. 물론 모든 일본의 의료기관이 이렇게 빈곤 계급, 노인, 아동, 이와 같은 취약 계급에게 친화적이지는 않을 것이며, 모든 한국의 의료기관이 나의 뿌리 깊은 삐딱함처럼 자리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사회적 의료 실천이 “즐겁다” 라고 해 주신 와다 선생님 강연이 인상 깊다. 누가 어떻게 뭘 희생해서 해낼 건데? 라는 앞 질문에 대해서,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한번 해 볼게. 또 지치고 또 널브러져서 또 ‘어차피 안 돼’에 사로잡히더라도, 실제로 하는 사람이 있는 걸 잊지 않을게. 나가노의 현장을 기억할게.’ 정도의 답은, 다시 지쳐서 삐딱해져버린 미래의 나 또는 우리에게 쥐어줄 수 있을 것 같다. -
언어를 넘어 전해진 한의약의 따뜻함, 비의료인이 발견한 봉사의 진심[한의신문] 한의약을 중심으로 의료 사각지대에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는 KOMSTA(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는 지난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1997년부터 한의약 의료 지원을 이어온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17명의 단원과 함께 제185차 해외 봉사를 진행했다. 이번 봉사는 사마르칸트 국립 의과대학교 산하 재활의학 및 스포츠의학 과학연구소에서 이뤄졌으며, 4일간 863명의 환자가 방문할 정도로 현지의 관심이 뜨거웠다. 필자는 평소 한의약에 애정을 가져온 터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의약이 가진 힘을 전파하는 데 동참하고자 일반 단원으로 참여했다. 언어적 장벽을 넘어 언어는 이번 봉사의 가장 큰 변수였다. 현지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평소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 생소한 데다, 사람에 따라 러시아어와 우즈베크어, 타지크어를 단독으로 쓰거나 혼용하기도 해 단원 개인이 미리 언어를 익혀 대응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진료가 시작되자, 곧 해소되었다. 통역 선생님들과 단원들이 한 마디라도 정확히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덕분이었다. 통역 선생님들을 통해 모든 단원이 자발적으로 배운 간단한 러시아어와 우즈베크어는 환자와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언어 외적인 수단으로 한의약이 가진 '정'을 전달하니 응대와 치료 과정에 대한 환자들의 만족도 또한 현장에서 체감될 만큼 높았다. 또한 몸에 직접 손을 대는 치료이기에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 신뢰가 빠르게 자리 잡았다. 진료실 문을 나서며 "라흐마트(우즈베크어로 '감사합니다')" 하고 단원들을 꼬옥 안아주던 환자들의 모습에서, 한의약만이 가진 다정한 치료가 언어적 장벽을 넘어 몸과 마음에 함께 닿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비의료인이 바라본 KOMSTA 봉사 현장 한의사도, 한의대 학생도 아닌 일반 단원으로서 참여한 이번 봉사는, 의료 봉사의 현장에서 치료하는 사람들의 일부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예진과 진료실 안내, 발침, 복약지도, 배웅에 이르는 과정은 직접적인 의료행위는 아니지만, 사람을 깊게 들여다보고 질병의 근원을 치료하는 한의약 치료의 연장이라 생각했다. 한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와 다시 문을 나서기까지의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다 보니, 어떤 파트를 맡아도 봉사의 모든 시간이 보람찼다. 국내에서도 의료 봉사에 참여했었지만, 이번 봉사에서는 나흘 내내 진료실 곁을 지키며 한 사람의 진료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전 과정을 오래 지켜보며 평소 한의원을 다니며 보았던 것보다 훨씬 넓고 깊은 한의약의 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다. 특히 한 진료실 한의사 선생님이 우울증을 앓던 아주머니를 치료하던 과정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마침 대기 환자가 많지 않아 진료를 길게 볼 수 있었던 덕분에, 선생님은 통역 선생님을 사이에 두고 오랜 시간 상담을 이어갔다. 이어 침을 놓고 유침 후 발침하고 환자의 상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며 조금씩 나아지는 지점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증상 하나를 두고도 사람 전체를 보려는 한의약 진료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임상적인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환자를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하려는 정성만큼은 곁에서도 분명히 전해졌다. 봉사를 마무리하며 첫날을 제외하면 나흘 내내 재진 환자가 많았고, 마지막 날 오전에 방문한 219명은 대부분 다시 찾아온 환자들이었다. 먼저 치료를 받아본 이들이 가족을 데려와 함께 진료받기도 했고, 어린아이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어린아이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까지, 저마다 다른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이어가는 단원들을 지켜보고 함께 하며 한의약 진료의 섬세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대가가 없는 봉사였지만 단원들은 환자가 건강한 일상을 되찾는 것 자체를 보람이자 대가로 여기며 진심을 다했고, 그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자니 봉사를 하는 모든 순간에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진심으로 대하게 되었다. 4일간의 봉사를 마치고 진행된 병원장님과의 만남에서 병원장님은 "여기 계속 있어도 된다"라며 웃으며 말씀을 건넸다. 185차 봉사단의 나흘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분의 감사 인사였지만, 그 한마디가 한의약을 향한 애정으로도 들려 오래 마음에 남았다. 비의료인인 까닭에 자세한 치료 과정과 내용을 알지 못해 이번 봉사의 결과를 의학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안내와 배웅을 하며 직접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포옹했던 863명 환자들의 따스한 미소와 온기를 통해, 17명의 단원이 한 몸처럼 움직여 한의약 치료의 힘을 전달했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봉사를 지탱한 것은 사마르칸트팀 단원들의 끈끈한 팀워크와 우애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바쁜 와중에도 서로를 먼저 신경 쓰고 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안에 있는 동안은 몸이 힘든 것마저 즐거워, 일주일이 7분처럼 짧게 느껴질 만큼 고마운 시간이었다. -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과 케어의 윤리전국의 보건의료계열 대학생 12명이 사의련(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의 연두 선생님과 함께 지난 7월 22일 일본으로 떠났다. 우리가 만난 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5월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이하 청한)의 제안으로 민의련(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 연수에 참가하겠다고 결정한 이후로 본 연수를 위해 3번의 사전 모임을 가졌었다. 각자 배정받은 주제 – 전일본민의련의 역사적 흐름, 일본의 차액병상료 미징수 원칙,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SDH), 한국과 일본의 아동 의료비 부담 경감 제도 비교, 만몽개척단의 역사 – 에 대해 조사하여 사전모임 때 발표하며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때 공유한 정보들이 연수의 꼭 필요한 배경지식이 되었다. 비행시간은 짧았지만, 나고야 공항에서 나가노현의 마쓰모토시까지 들어가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평생을 대도시에서 살았던 내게 나가노는 완전히 새로웠다. 긴 이동 끝에 도착한 곳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다. 나가노현의 민의련 회장인 사노 다쓰오 선생님께서 민의련의 역사와 활동에 대해 설명해 주셨는데, 그중 민의련 강령의 첫 문장인 “무차별·평등의 의료와 복지의 실현”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를테면 (사전모임 때 다룬) 차액병상료 미징수 원칙 같은 것이 무차별에 해당하는데, 민의련에서 1인실은 부자가 아니라 1인실이 꼭 필요한 환자들(전염병 환자, 임종을 앞둔 환자 등)에게 배정된다고 한다.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참으로 어색한 제도이지만, 돈이 아닌 필요에 의한 병실의 분배가 훨씬 인간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오티가 끝난 후, 한국 연수단과 일본 직원분들이 다 같이 저녁식사를 했다. 미리 조사한 식이제한을 반영하여 섬세하게 준비해주신 식사에 굉장히 감사했다. 이렇게 사람 한 명 한 명을 신경 써서 귀찮음을 기꺼이 감수하는 모습까지도 민의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식사를 하면서 서로에게 궁금증을 가지고, 잘 통하지 않는 언어이지만 번역기를 사용하며 질문하고 대답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노력들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나가노는 동서남북 어디에나 산이 있고, 그 산 사이사이에 여섯 개의 분지가 있는 구조인데, 이번 연수 기간 동안 세 군데의 권역을 방문했다. 우리의 숙소가 위치한 마쓰모토시에서 첫 날과 마지막 날을 보내고, 둘째날은 나가노현의 나가노시, 셋째날은 이이다·시모이나 권역을 방문했다. 매일 마을 하나를 둘러보면서 각 지역의 의료기관을 방문할 수 있었다. 7월 23일, 나가노 중앙병원에 방문하여 병원장 반바 다카시 선생님의 강연을 들었다. 선생님께서 민의련의 가장 큰 2가지 과제인 SDH(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와 케어의 윤리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SDH는 자기책임론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질병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사회적 요인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자기책임론을 지지하는 사람이 38%라고 한다. 강연자료에 한국의 통계는 언급되지 않아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이와 관련한 연구조차 없어서 수치를 명확히 할 수 없다고 한다. 자기책임론이 당연시되어서일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최소한 의료계열 학생들에게는 SDH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SDH와 관련하여 강연에서 인상 깊었던 삽화가 하나 있다. 바로 환경, 돌봄, 의료를 각각 상류, 중류, 하류에 대응시킨 그림이다. 환경에 의해 사람이 물살에 떠밀려 내려오기 시작하고, 돌봄이 잘 제공되면 그들을 구출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하류에 이르러 의료에 도달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즉 의료인들은 보통 하류만 접하고 살게 된다. 그러나 궁극적인 해결책을 위해서는 시선을 넓혀 상류를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사전모임 때, 노원구에 위치한 마을의원에서 강연을 들었었다. 원장님께서는 매일 오후에는 방문진료만 하시는데, 여러 사례를 들며 각각의 상황에서의 어떤 처방을 내렸는지 알려주셨다. 그 처방들이 꼭 의료행위라고만 하기는 어려웠다. 예를 들면 마당으로 나오면서 자주 넘어지는 할머니를 위해 계단이 아닌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과 같은 처방이다. 결국 아픔을 줄이기 위해서는 의료에 도달하기 전, 즉 환경에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사의련에서의 배움이 일본 민의련에서의 연수경험과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점심 전후로 나가노 중앙 케어 센터에서 재활운동을 체험해보고, 노인보건시설 후루사토(일본어로 고향이라는 의미)를 방문하고, 여러 시설을 견학하며 개호(신체나 인지 기능이 저하된 사람의 일상생활을 돕는 돌봄) 사업에 대해 배웠다.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이 머무는 시설을 걸으면서 최근에 읽었던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의 내용이 계속 떠올랐다. 이 책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얘기한다. 보통의 요양원은 생명 연장에 초점을 맞추어 입소자들의 삶의 질은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그래서 많은 입소자들이 “여긴 집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개인의 우선순위가 존중되는 집에 대한 갈망을 품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가노에서 방문한 시설들에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넘어 개인의 선택이 가능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방 안에 원하는 전자기구를 들일 수 있다는 점, 충분히 식당 하나로 수용 가능한 인원임에도 사이가 틀어진 관계를 고려하여 두 개의 식당을 설치한 점,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텃밭을 두어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감각을 높이는 활동이 있다는 것, 혼자 변기에 앉고 일어나고,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 등이 인상적이었다. 책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요양원을 실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이런 곳이라면 보통의 요양원보다는 훨씬 ‘고향’ 같다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마쓰모토시로 돌아와서 사의련의 두 선생님께서 사주시는 저녁을 먹고, 연수단끼리 중간점검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7월 24일, 버스를 가장 오래 타는 날이다. 얼마나 교통이 불편하면, 일본 내에서 도쿄로부터 가장 오기 힘든 곳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지역이다. 견학 장소가 개관하기 전, 잠깐 마을을 돌아보았다. 이 곳에서는 의사 1명이 5개의 진료소를 요일별로 돌아가면서 진료를 본다고 한다. 38도에 이르는 뜨거운 날씨였지만, 푸릇함을 담기에는 더할나위 없는 맑은 날이었다. 2시간을 이동하고 땀을 주륵주륵 흘리며 어렵게 도착한 곳에는 이번 연수 중 가장 큰 충격을 준 곳이 있었다. 만몽개척평화기념관이다. 만몽개척단은 1930~1940년대에 일본 제국이 만주 지역을 식민화하기 위해 일본 농민들을 이주시킨 집단이다. 나가노는 원폭 피해지역이 아니고, 현재 일상에서 전쟁의 흔적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지역이지만, 만몽개척단이라는 전쟁의 역사가 깊게 남아 있다. 지금 나가노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몇 다리 건너면 모두 이 아픔을 겪은 가족이 있다고 한다. 당시 일본 제국은 전쟁을 옹호하는 다수의 포스터를 만들어 만몽개척단을 국가를 위한 활동으로 세뇌시키며 홍보하였고, 패전 이후 백 종류가 넘는 포스터를 모두 없애려고 시도하였으나 누군가 몰래 숨겨놓아 지금 기념관에서 볼 수 있었다. 그 포스터를 마주한 순간, 형용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식민 지배국의 시민이더라도 피해자임이 순식간에 와 닿았다. 버스를 타서도 자꾸 생각이 났다. 한국과 일본이 부정적으로 얽힌 역사 때문에 일본인 개인에게 역사적 가해의 책임을 직접 돌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의 화살은 엄한 곳을 향했구나, 피해와 가해는 때때로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는구나, 여러 깨달음과 반성이 오갔다. 만몽개척단을 아는 것이 나가노를 방문하는 예의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제주 43 평화공원에서의 기억이 겹쳐지며 공통점이 보였다. 한 지역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사건이었고, 지금도 그 아픔이 남아있지만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간다는 것이었다. 다음 일정으로는 이이다시의 카나에 공민관에 도착하여 켄와카이 병원 와다 히로 의사 선생님의 어린이 빈곤 워크숍을 들었다. 일본의 아동의료비 제도와 관련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병원에 방문한 아동의 생활 상황을 부모의 모습을 통하여 추측한 사례들은 미래에 의료계에 종사할 때 활용할 점이 많아 보였다. 예를 들어 대기실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계속 책을 읽어주는 모습도 의심해볼 수 있다. 이런 힌트들은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사무직 모두가 함께 주시해야 하고, 서로 의견을 공유하는 회의 자리도 필요함을 알았다. 흔히 진상이라고 표현할 법한 사람들의 행동에는 어떤 환경적인 문제가 숨어있을 수 있으며, 스스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거나 도와달라고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일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저녁에는 일본의 의대생도 함께 모여 식사자리를 가졌고, 이후에는 그간 우리를 도와준 일본인들과 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7월 25일,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며 연수 마무리를 위해 첫 만남의 장소에서 모였다. 오티를 들었던 그 장소였지만 지식이나 마음가짐에는 큰 차이가 생겼다. 한 명씩 돌아가며 소감을 발표할 때 모두에게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감을 준비하며 이번 연수를 되돌아봤다. 가장 예상과 달랐던 것은 의사의 사회적 지위였다. 일본에서는 의료가 한국에서만큼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 아니었고, 강연을 통해 만난 민의련의 책임자들도 의료를 영리사업으로서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도 민의련의 의료종사자들의 경제적 안정은 중요하다고 말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렴 마무리 토론 때 민의련에 자리 있냐고 묻는 학생이 있을 정도였으니, 우리는 민의련의 좋은 모습을 많이 보고 배우고 온 것 같다. 사전모임부터 각자의 고민을 안고 의료업에 임하는 여러 의사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의사로서의 추구미를 찾아갔다. 좋은 의사는 결국 타인에게 관심이 많고 애정이 있는, 결국 좋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소외된 사람을 살리는 것은 전문성보다도 관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을의원의 원장님께서 부상의 원인을 파악하고 내린 진단, 어린이 빈곤 워크숍에서 빈곤을 알아차리는 예리한 센서는 모두 환자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주변에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를 갖추고 싶다. 나가노는 연수가 아니었으면 방문하기 어려웠을 도시이다. 그렇기에 이 연수가 더욱 소중했다. 비슷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과 공감대를 공유하며, 비슷한 궁금증을 갖고, 잘 통하지 않는 언어였지만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우리 12명을 도와준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친절 덕에 민의련을 너머 나가노에 대한 애정이 커졌고, 언젠가 이 친절을 다시 돌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만몽개척평화기념관에서 강연자분이 의료인이 왜 반전평화까지 공부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사실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잘 하지 못하겠다. 의료인의 공부 영역은 어디까지이고, 우선순위는 무엇인지 아직 흐릿하다. 그러나 이 견학이 가장 울림이 컸던 것을 보면, 마음이 반전평화도 공부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년에는 반전평화 연수에 참여하고 고민을 이어가고 싶다.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324)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조선 의학사에서 조선 후기 국왕들의 치병 기록은 단순한 질병 치료를 넘어 당대 한의학 학술 이론의 수용과 실천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승정원일기』 영조 15년(1739) 11월 27일의 입진 기록은 영조와 약방 삼제조, 그리고 御醫들이 나눈 대화를 통해 氣와 血, 陰과 陽을 바라보는 조선 의관들의 정교한 변증론치를 생생하게 전한다. 이날 연석의 핵심 화두는 영조의 탕약 선택이었다. 어의들의 맥진이 겨울철의 정상적인 沈脈을 두고 엇갈린 견해를 보이자, 도제조 김흥경은 편차를 바로잡을 탕제를 물었다. 이에 영조는 스스로 醒心散과 滋陰降火湯의 복용 가능성을 타진했다. 성심산은 心火를 내리고 담을 삭이는 응급 처방이며, 자음강화탕은 陰虛로 인해 虛火가 위로 치솟을 때 腎水를 자양하고 화를 가라앉히는 대표적인 養陰降火의 방제다. 영조는 과거 경술년(1730) 어지럼증과 痰癖 증세로 이를 복용했던 경험에 기대어 허화의 제어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수의 김응삼을 비롯한 어의들의 시각은 달랐다. 성심산은 일시적인 대증 처방에 불과하고, 자음강화탕 역시 찬 성질의 지모와 황백 등이 들어 있어 노경에 접어든 임금의 脾胃를 상하게 할 우려가 있었다. 여기서 김응삼은 補中益氣湯과 滋陰健脾湯을 대비해 거론한다. 李東垣의 脾胃論을 대표하는 보중익기탕은 중초의 비위 기운을 올려 升陽益氣하는 溫補의 묘약이며, 朱丹溪 계열의 자음강화탕은 음을 길러 下降시키는 약제다. 온보와 청량, 승양과 강심이라는 서로 상반된 두 축의 병리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어의들은 이 양극단의 대립 속에서 절묘한 절충안으로 자음건비탕을 강력히 건의했다. 당시 영조는 춘추가 40대 중반을 넘어서며 기혈이 모두 쇠약해진 데다, 어지럼증과 痰飮이 겹친 상태였다. 자음강화탕의 寒凉함도, 보중익기탕의 지나친 升發과 건조함도 완전한 해법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백출, 진피, 반하로 비위를 건실하게 하여 담을 삭이고, 숙지황, 당귀, 백작약으로 혈과 음을 자양하는 자음건비탕이야말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와 혈을 아울러 보하는” 중용의 방책이었다. 여기에 김응삼은 담음을 열고 정신을 맑게 하는 석창포 3푼을 가미하여 만전을 기할 것을 청했고, 영조는 이를 흔쾌히 윤허하여 5첩을 지어 올리도록 명했다. 『古今醫鑑』에서 정리한 자음건비탕이 조선 어의들에 의해 임상 현장에서 얼마나 유연하고 엄밀하게 취사선택되었는지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동시에 연석에서는 왕세자(훗날 사도세자)를 위해 腎水를 보하는 六味元의 복용 여부와 무[菁]의 금기 문제를 세밀하게 논구했다. 이처럼 1739년 초겨울 시민당에서 펼쳐진 문답은 단순한 진료가 아니었다. 이동원의 溫補脾胃와 주단계의 滋陰降火라는 한의학의 두 거대한 조류를 주체적으로 조율하며, 군주와 세자의 체질에 최적의 처방을 찾아낸 조선 한의학 변증의 수준 높은 실천을 보여준다. 이동원의 온보비위와 주단계의 자음강화라는 동아시아 한의학의 양대 조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환자의 연령과 맥후, 계절적 맥락에 맞추어 주체적으로 조화시켰다. 중국의 이론을 흡수하면서도 임상 실정에 맞게 체화하여 독자적인 변증 체계를 구축해 낸 조선 의학의 학술적 깊이와 실용적 진면목이 이 기록 속에 담담히 묻어나고 있다. -
대한형상의학회에서 전하는 임상치험례 <55>전나무 남산당한의원장 남자. 78년생. 만 45세. 2024년 4월4일 내원. 【形】 177cm/74kg. 【腹診】 심하 3 중완 3 【旣往歷】 2023년 5월에 알러지가 생겼다. 면역체계가 무너져서 생겼다고 하더라. 몇 달 되었다. 아직까지도 저녁에 밤 되면 간지럽거나 빨갛게 모기 물린 것처럼 올라온다. 주로 저녁에 올라온다. 밤 되면 전신이 등이고 빨갛게 긁은 것처럼 올라온다. 피부과약 먹고 있는데 약이 독해서 졸리고 무기력하다고 하더라. 6시간 정도 잔다. 양혈사물탕 30첩 2번 투여. 별무호전. 【生活歷】 식당 주방에서 일을 해서 항상 열에 노출이 많다. 흡연·음주 거의 안 한다. 【症】 ① 피부 알러지. 피부 가려운 게 작년부터 지속되고 있다. 안 올라올 때도 있는데 피곤하면 올라온다. 묘기증처럼 올라온다. 가렵고 쓰라린 증상도 동반된다. 리도맥스(스테로이드 연고) 바르면서 피부과약 먹는데 피부과약이 너무 독하다. 씨잘(항히스타민제)도 꽤 오래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려움증이랑 어지럼증이 같이 와서 쓰러진 적이 있다. 두피가 간지러울 때도 있다. 사타구니도 간지럽고 아토피 증상이 올라오면서 팔이나 발목, 무릎 이하 쪽으로 빈도수가 더 많다. 빈도수가 팔 다리가 더 많다. 여름에는 팬티라인 밴드 있는 쪽에 많이 올라온다. 밤에 심하다. 낮에 활동할 때는 괜찮다. 컨디션 괜찮을 때가 일주일에 2번 정도 올라온다.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심하게 올라오고, 어떨 때는 손가락 사이도 간지럽다. ② 현훈. 한 번씩 어지럼증이 있어서 눈 감고 있을 때가 있다. 어지러운 게 정도의 차이가 있지 자주 있다. ③ 땀. 사타구니에 땀이 있다. ④ 피로. 많이 피곤하고 무기력하다. ⑤ 주방에서 일을 하니깐 목 어깨가 항상 아프다. 【治療 및 經過】 ① 4월4일. 평혈음 가 녹각교 1제 투여. ② 4월11일. 아직 빈도는 비슷한데, 강도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③ 4월24일. 확실히 좋아졌다. 피부증상이 없는 날이 더 많고 있어도 아주 약하다. 평혈음 가 녹각교 1제 투여. ④ 5월30일. 피곤하고 한 거는 있다. 간지러운 건 없다. 한 번씩 계속 어지럽다. 기립성 현훈 저혈압 그런 증상이 있다. 자려고 누으면 좌우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면서 눈알이 왔다갔다 할 때가 있다. 이석증 때문에 쓰러진 적이 있어서 피곤할 때 그런 거 같다. 평혈음 가 녹각교 1제 투여. ⑤ 6월13일. 피부는 가렵거나 그런 건 없었다. 어지러운 건 조금 있었다. 평혈음 가 녹각교 1제 투여. ⑥ 9월5일. 약 다 먹고 일주일 이주일 사이에 슬금슬금 올라오는데, 예전만큼은 아닌데 조금 올라온다. 밤에만 올라온다. 리도맥스 바르고 했다. 양말 라인이나 손가락이나 접촉이 있는 부분에 올라온다. 맥 64/66 평혈음 1제 투여. ⑦ 9월26일. 평혈음 1제 투여. ⑧ 10월25일. 이제 안 올라온다. 【考察】 상기환자는 체격이 좋은 남성으로 피부 알러지 증상으로 내원하였다. 피부알러지 증상은 단독증으로 판단되었다. 이 남성은 주방장으로 항상 더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 초진 시에는 미려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양혈사물탕을 선방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이후, 증상이 단독증이고 주방에서 열을 가까이한다는 점과 어깨가 항상 아프다는 증상을 참고하여 평혈음을 선방하여 효과를 본 케이스이다. 【參考文獻】 <1> [임상한의사를 위한 형상의학. p746.] 平血飮(평혈음):治諸瘡, 遍身出膿血, 痛痒, 卽升麻葛根湯[方見寒門], 加天麻, 蟬殼也. 右剉, 與人參敗毒散合和, 加生薑, 薄荷, 生地黃, 麥門冬煎服.『得效』 여러 가지 창으로 온몸에서 피고름이 나오면서 아프고 가려운 것을 치료한다. 곧 승마갈근탕[처방은 상한문에 나온다]에 천마·선퇴를 넣은 것이다. 이 약들을 썰어 인삼패독산과 합하고, 여기에 생강·박하·생지황·맥문동을 넣어 달여 먹는다.『득효』 - 형상: 양명형, 삼양경이 발달한 사람 : 안면 돌출형 - 해설 1) 승마갈근탕에 가미한 처방으로 인체의 양경에 작용하는 약으로 체격이 좋고 양명형처럼 체력이 왕성한 사람에게 쓴다. 2) 승마갈근탕과 인삼패독산이 외감과 온독에 쓰는 처방이므로 외사가 피부에 침습 내지 잠복하여 피부에 병변을 일으킬 때 쓰는 처방이다. 3) 양명형인 경우는 승마갈근탕을 주된 처방으로 쓰며, 삼양경이 발달한 사람에게는 인삼패독산을 합해서 쓴다. <2> [동의보감] 升麻葛根湯(승마갈근탕):治溫病, 及時令感冒. 葛根二錢, 白芍藥, 升麻, 甘草各一錢. 右剉, 作一貼, 薑三葱二, 煎服.『局方』 온병과 유행하는 감기를 치료한다. 갈근 2돈, 백작약·승마·감초 각 1돈. 이 약들을 썰어 1첩으로 하여 생강 3쪽, 총백 2줄기를 넣어 달여 먹는다.『국방』 <3> [동의보감] 人參敗毒散(인삼패독산):①治傷寒時氣, 發熱頭痛, 項强, 肢體煩疼, 及傷風, 咳嗽, 鼻塞, 聲重. 羌活, 獨活, 柴胡, 前胡, 枳殼, 桔梗, 川芎, 赤茯苓, 人參, 甘草各一錢. 右剉, 作一貼, 入薑三片, 薄荷少許, 水煎服.『醫鑑』②本方, 加天麻, 地骨皮等分, 名曰人參羌活散. ③加荊芥穗, 防風等分, 名曰荊防敗毒散. ①상한이나 유행성 질병으로 발열·두통이 있고 목덜미가 뻣뻣하며, 팔다리와 온몸이 괴롭고 아프거나, 상풍으로 기침하고 코가 막히며 목소리가 가라앉은 것을 치료한다. 강활·독활·시호·전호·지각·길경·천궁·적복령·인삼·감초 각 1돈. 이 약들을 썰어 1첩으로 하여 생강 3쪽, 박하 약간을 넣어 물에 달여 먹는다.『의감』 ②본방에 천마·지골피를 같은 양으로 넣은 것을 인삼강활산이라고 한다. ③본방에 형개수·방풍을 같은 양으로 넣은 것을 형방패독산이라고 한다. -
한의원 세무 1:1 맞춤 퍼스널티칭 <41>이주현 세무사/세무법인 엑스퍼트 창원점 지난달 발표된 세제개편안에서 부동산 관련 세제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세율 자체의 인상보다 기존의 ‘보유’ 중심의 세제혜택을 ‘거주’ 중심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즉, 실제 거주하지 않는 주택에 대한 세제 혜택을 대폭 줄여 세수를 확보하는 것이 정부의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호에서는 2026년 세제개편 중에서도 부동산 관련 변화에 중점을 두고 향후 부동산의 처분 전략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장기보유특별공제 폐지 2008년부터 이어져오던 장기보유특별공제가 폐지되고, 장기거주소득공제라는 새로운 공제제도가 등장한다. 장기보유특별공제란 토지나 건물을 장기간 보유한 경우 1년에 일정 공제율을 적용하여 보유기간 수만큼 양도차익에서 공제 해주던 제도를 말하는데, 일반 토지 및 건물의 경우에는 공제율이 최대 30%에 달하고, 1세대 1주택의 경우에는 보유시 공제율과 거주시 공제율을 합하여 최대 80%까지 공제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양도차익이 큰 부동산을 장기간 보유한 납세자의 양도소득세 부담을 상당 부분 줄여주는 중요한 절세제도로 활용되어 왔다. 이러한 장기보유특별공제가 이번 세제개편을 통해 거주공제로 단계적 전환될 예정이기 때문에 고가의 임대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임대사업자들은 늦어도 ’28년 중에는 주택을 양도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1세대 1주택> 1주택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는 ’27년 12월 말까지는 현행 공제율 그대로 적용되지만 ’28년도부터 거주 공제율 연 6%, 보유 공제율 연 2%로 개편되며 ’29년도부터는 거주시에만 연 8% 최대 80%까지 공제받을 수 있도록 개편된다. <다주택자> 다주택자의 경우 27년 12월 말까지 현행 공제율 그대로 적용되다가 28년도부터 거주시 연 2%, 보유시 1%의 공제율 중 큰 금액으로 공제해주는 방식으로 개편, 29년도부터는 거주시에만 연 2% 공제하는 방식으로 개편된다. 2. 장기거주소득공제 한도 신설 이번 세제개편안에서는 보유요건이 거주요건으로 개편된 것 뿐만 아니라, 종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공제 한도가 신설되어 공제 효과가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3.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기본 공제금액 변화 종합부동산세는 과세기준일(매년 6월1일) 현재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공시가격 합계가 기본공제금액을 초과하는 경우에 부과되는 보유세의 일종이다. 세제개편안이 발표되었을 때, 비거주 주택분의 기본 공제금액을 기존 12억원에서 9억원으로 하향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으나, 9월1일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정부안에서는 비거주 주택분의 기본공제금액은 12억원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발표했다. 부부 공동명의로 보유한 비거주주택의 기본 공제금액은 9억원에서 4억원으로 하향하는 것으로 발표했다가 이번 정부안에서 6억원까지만 하향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4. 다주택자의 조정대상지역 주택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 완화 다주택자의 조정대상지역 보유 주택에 대한 중과세율 적용이 2028년까지 한시적으로 완화되었다. 당초 ’26년 5월10일자로 종료되었던 중과세 유예 규정이 세제 개편안에서 단계적 완화의 형태로 부활한 것이다. 5. 마치며 이번 세제개편안의 주요 내용을 종합해 보면, 향후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세제상 규제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정부가 5월9일 이후 부활한 다주택자 중과세율 적용을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한 만큼,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자라면 이러한 한시적 완화기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해당 주택의 처분을 고려하고 있다면, 세부담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2028년까지 양도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세무법인 엑스퍼트 창원점 이주현 세무사 카카오톡채널] https://pf.kakao.com/_xgJrFK, E-Mail: sjtax0701@gmail.com, 연락처: 055-282-7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