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신(補身)과 보신(補腎)
“부신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해 피로가 생기며, 참을성이 없어지거나 화를 많이 내고, 정신집중이 안 된다.”
보신(補身)과 보신(補腎)의 개념은 비슷하게 쓰였다. 보신은 몸을 보한다는 일반적인 뜻이지만 보신은 간, 심, 비, 폐, 신 중의 하나인 콩팥을 보한다는 뜻으로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번에도 언급하였지만 신장은 ‘생명의 정을 간직하는 부위로 정신과 원기가 생겨나는 곳이며, 남자는 정액을 간직하고 여자는 포(胞) 즉 자궁이 매달린 곳’이라고 난경에서는 풀이하였다. 신장이 생명활동을 영위케 하고 성행위와 생식활동을 주관한다는 것은 보신(補身)의 핵심이 보신(補腎)이라는 말과 잘 통하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氣의 형태 중 신장이 저장하는 것은 精氣
신장이 생명의 활동에너지를 축적한다는 의미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이 돈을 벌면 가장 어둡고 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금고에 보관하듯이 인체도 에너지를 섭취하면 가장 낮고 어둡고 비밀스런 곳인 신장에 저장한다.
기(氣)의 형태 중 신장이 저장하는 것은 정기(精氣)다. 정신이란 말도 신장이 저장하는 정기(精氣)를 바탕으로 사유 활동인 신(神)이 펼쳐지는 것이고 정력이란 말도 정을 바탕으로 생식활동이 펼쳐지는 곳이다. 생명활동을 주관한다는 말은 우리 몸의 생명 유지 장치인 자율신경이나 호르몬 분비, 면역 활동이 바로 정기라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생명현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심장박동이나 혈액 순환, 체온 유지는 자율신경이나 갑상선 호르몬의 도움을 받아야 유지되는 생명활동 현상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체를 움직이는 힘의 에너지원이 바로 정기다. 다리 팔 눈 한쪽이 사라져도 살 수 있지만 혈액 순환, 심장 박동, 체온 유지 이것이 멈춰버린다면 생명은 한 순간도 유지될 수 없는 중요한 대사물질이다.
동의보감은 정기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대체로 정은 쌀(米)자와 푸를 청(靑)자를 합해서 만든 것으로 아주 좋다는 말이다. 사람한테 정은 아주 귀중하면서도 매우 적다. 사람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목숨이며 아껴야 할 것은 몸이고 귀중히 여겨야 할 것은 정(精)이다”라고 강조한다.
재미있는 구절도 있다. “사람이 성생활을 하지 않을 때는 정이 혈액 속에서 풀려있어 형체가 없다. 그러나 성생활을 하게 되면 성욕이 몹시 동하여 정액으로 되어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쏟아낸 정액을 그릇에 담아 소금과 술을 조금 넣고 저어서 하룻밤을 밖에 두며 다시 피가 된다.”
현대의학적으로 신장을 일본인 시수도명(矢數道明)은 이렇게 정의한다. “신장이 비뇨기 작용만이 아니라 부신의 작용, 내분비, 뇌하수체의 기관들을 통괄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여기서 부신의 작용과 의미는 무엇일까. 부신은 신장 옆에 붙어 있다고 하여서 부신이다. 부신의 가장 큰 역할은 보일러와 같다. 인체는 36.5°C 를 유지하여야 하는데 날씨 변화를 감지하여 보일러의 가동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
이때 뇌의 시상하부가 센서 역할을 하여 체온이 떨어지면 부신에 명령을 내려 영양분을 태워 열(에너지)을 만든다. 부신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알레르기 질환이 생기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하여 피로가 생기며, 참을성이 없어지거나 화를 많이 내고, 정신집중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신을 연구하는 분들은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부신기능 의심환자로 지목한다. “① 출산이나 수술 후 체질이 변했다. ② 많이 먹지도 안는데 살찌고 체형이 변한다. ③ 이전에 없던 알레르기나 만성 알레르기가 생긴다. ④평생 이런 감기 처음이라고 한다. ⑤ 배고프면 허기를 참기 힘들다.”
부신이 보일러라는 점은 옛날 사람들이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의학입문에 신장이 두개가 있는데 왼쪽은 水에 속하는 신이고, 오른쪽은 火에 속하여 명문이라고 한다. 이런 사유는 자연 철학적인 관점과 맥락을 같이한다. 신장은 겨울이다. 겨울은 계절의 시작과 끝이다. 1월이 두 얼굴의 사나이인 야누스를 뜻하는 january인 점과 같다. 가장 차가운 계절인 겨울과 가장 뜨거운 시작인 봄의 기운을 내재하는 그런 의미다.
정기의 보존이 가장 중요한 건강의 핵심
신장의 한쪽 부분인 보일러를 맡고 있는 명문은 흔히 단전이라는 붉은 밭과 맥락을 같이 한다. 현대의학의 부신이 보일러라는 것과 같은 의미를 내포한다.
명문은 인체의 보일러인 만큼 생명의 유지라는 가장 핵심적인 기능을 맡고 있다. 명문에도 에너지를 만드는 원료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정기다. 정기가 사라지면 면역, 신경, 호르몬 이라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질이 줄어든 만큼 정기의 보존이 가장 중요한 건강의 핵심이라는 것이 보신(補腎)의 핵심사상이다. 정기를 보존하는 신장이 신체의 아래 부분에 있어서 하초라고 불리고 다리 부분의 건강과 연결된다.
하초, 신장, 다리를 보하는 가장 중요한 약물은 육미지황환이다. 나이 칠십이 되어 삼일동안 화투놀이를 해도 허리가 아프지 않는다는 전설의 한약이다.
옛날 어른들이 토끼 쥐똥같이 생긴 환약을 지어 늘 장복하던 약이 바로 이것이다. 처방 적용과 용도를 보면 이렇다. 정수결핍으로 인한 만성요통, 뼈마디통증, 성기능쇠약, 당뇨병, 전립선 질환, 식은땀, 귀에 소리가 나는 것 등이다.
한의학은 언제나 같은 논리로 시대에 적응
이 처방에 기재된 중심약물은 지황인데 다른 이름이 지정(地精)이다. 땅의 정기를 모조리 뽑아 올리는데 착안한 이름이다. 마와 산수유도 신을 보하여 정기를 채우는 작용을 돕는다.
나머지 세 약, 목단피·택사·백복령은 신장의 정기가 허한 결과로 생긴 허화를 없앤다.
여기서 산수유는 대표적인 자양강장제다. 수는 붉다는 뜻이고 유는 좋다는 뜻이다. 붉은색은 사물을 활발하게 하는 불꽃같은 힘을 상징한다. 산수유의 붉은 열매도 불꽃같은 힘이 내재되어 있으면서 맛이 신 열매다. 시다는 것은 수렴하는 작용을 가지고 있고 열매는 에너지를 아래로 이끌어 준다. 인체의 에너지를 아래로 수렴하여 하부가 따뜻해지고 힘도 세진다는 약효를 의미한다.
몇 년 전 법원에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산수유가 정력에 효과가 있는지 전화로 문의를 받았다. 중국산 산수유 제품을 수거하여 보니 그 속에 비아그라 복제품이 섞여있어 기소했지만 불법 유무가 애매하다는 것이었다.
산수유는 대표적인 자양강장제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만큼 금방 효과를 볼 수 있는 약은 아니다. 한의학과 과학의 차이는 긴 시간과 공간에서의 증명이냐 짧은 시간과 공간에서의 증명이냐가 핵심이다. 과학은 어제 발표한 결과를 오늘 수정하지만 한의학은 3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논리적 바탕 위에서 시대에 적응해 약간 첨가된 변함없는 이야기를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산수유는 적금처럼 꾸준하게 약을 복용하여야 효능을 볼 수 있다.
명문의 기능이 과열된 사람이나 염증으로 소변기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좋은 것이 약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것이 약이 된다는 것도 한의학의 진리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