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신문=하재규 기자] 50년 간 박물관 외길 인생이라는 역사를 써온 김쾌정 관장. 그가 허준과 <동의보감>의 역사를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재창조한 ‘허준박물관’의 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안한 쉼의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쾌정 허준박물관장 (2005~2023년)
그럼에도 그는 1일 허준박물관을 찾아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의성 허준과 동의보감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배경 및 가치를 비롯 현재의 한의학과 국민건강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는 등 자원봉사자로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후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박물관인 한독의약박물관 학예직으로 1973년에 입사한 것이 박물관 외길 인생을 걷게 된 운명의 첫 시작이었다. 이후 1984년에 한독의약박물관 관장으로 승진하는 등 2004년까지 32년 2개월을 박물관의 삶으로 보내다 정년퇴임했다.
그 이후 2005년 개관한 초대 허준박물관장으로 취임, 지난해 말 퇴임하기까지 18년 11개월 동안 또 다시 박물관의 역사를 써내려왔다.
-햇수로 따지면 만 50년 1개월간 박물관이란 한 분야에서 일하셨습니다. “40년간 박물관장으로 활동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시원섭섭한 느낌도 많지만 너무나 큰 영광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허준박물관은 조선시대 명의 허준(許浚)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자 설립됐다. 그는 이 같은 목적에 충실한 것이 허준박물관장의 역할이라는 신념으로 재직하는 동안 숱한 전시와 관련 사업을 통해 허준박물관의 퀄리티를 높였고, 한의약 전문 박물관이라는 확고한 위상을 세웠다.
<역병을 이겨내는 마음의 백신>, <동의보감 속 약초 민화전>, <세계의 약초 특별전>, <동의보감 속 동물약재 특별전>, <한의학의 맥을 찾아서>, <약장, 건강을 염원하다>, <동의보감 특별전>, <동의보감과 약재의 향기> 등 수많은 상설전과 특별전이 모두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많은 업적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부분은 따로 있을 것 같습니다. “의성 허준 선생께서 지으신 저서 중 전염병 관련 의서인 <신찬벽온방>(보물 제1237호)과 현존하는 한글 의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언해구급방>(보물 제1087호)을 수집해 각각 국가 지정문화재인 보물(寶物)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큰 보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의보감> 2015년 국보 제319호로 승격
시민과 함께하는 ‘허준박물관’으로 큰 인기
‘문화유산보호 유공자’로 대통령표창 수상
<신찬벽온방>, <언해구급방> 보물로 지정
-<동의보감>의 국보 승격도 이뤄내셨습니다.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은 2009년 등재 당시에는 보물(제1085호)로 지정된 상태였습니다. 이를 문화재청에 여러 차례 국보(國寶)로 승격시켜 줄 것을 건의해 마침내 2015년 6월 22일에 국보 제319호로 승격이 된 쾌거가 있었습니다.”
그는 ‘2022 문화유산보호 유공자 시상식’에서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 부위원장, (사)한국박물관협회 제10대 회장,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한독의약박물관장, 허준박물관장으로 재직하면서 국내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박물관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일조한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다.
-박물관이라는 외길 인생의 마침표를 멋지게 찍었습니다. “나름 박물관 지킴이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던 나날들이 벌써 50년을 넘어섰습니다. 최근에는 오프라인만이 아니라 메타버스의 가상공간을 통한 박물관 문화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특정한 주제와 공간이 언제 어디서든 모두의 주제이자 공간으로 각광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만큼 박물관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책임감과 역량도 남달라야 할 것입니다.”
허준박물관은 올 초 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홍보과장으로 활동했던 김충배 신임 관장을 맞아 들였다. 그의 임기는 2026년 1월15일까지다.
-신임 관장에게 바라는 바도 있을 것 같습니다. “허준박물관은 의성 허준 선생의 숭고한 이념과 뜻을 기리는 기념관 성격의 박물관으로 설립된 만큼 각종 행사나 특별전 등을 개최할 때 그 중심에는 늘 허준 선생과 <동의보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50년간 마치 박물관의 박제된 전시 물품처럼 박물관의 일부이자, 모든 것이기도 했던 그가 마침내 햇살 찬란한 유리문 밖으로 외출을 감행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실 계획이신가요? “50년간 한 번도 제대로 쉬어 본 적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이제 한동안 좀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혹시 인연이 닿아 마지막으로 봉사할 박물관이 있는 지도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동안 저와 허준박물관을 사랑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