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대한한의사협회 보험/약무이사
[편집자주]
MBC 드라마 ‘연인’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가운데 극중 어의 이형익이 인조에게 침을 시술하는 장면에서 대한한의사협회 김주영 보험/약무이사(K-콘텐츠 지원위원회 위원)가 자문 및 시술 대역을 맡아, 기존 사극 드라마에서도 생소한 ‘번침(燔鍼)’을 시술했다. 본란에서는 김주영 이사로부터 번침에 대한 소개와 한의사의 대중매체 참여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Q. 한의약 자문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는?
‘연인’의 PD가 조선시대 인조 침전에서 침의가 왕에게 침을 놓는 장면에 대한 자문 및 손 대역을 촬영 이틀 전 한의협에 급히 요청했고, 대한한의사협회 K-콘텐츠 지원위원회를 통해 참여하게 됐다.
Q. 촬영 현장의 분위기는?
용인에 위치한 대장금파크 드라마 세트장에서 총 3일에 걸쳐 촬영이 진행됐다. 드라마 촬영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진료를 빼고 갈 때도 있었다.
촬영을 갈 때마다 거리상 이동시간을 제하고도 5시간 정도가 소요됐고, 야외촬영이 있는 경우에는 우천 등 날씨와 같은 변수들도 많아 앞 씬의 진척도와 더불어 몇 시간씩 기다리기도 했다.
순수 촬영 시간 또한 상당히 길었는데 일반 스튜디오 촬영과 달리 낮과 밤, 창문 위치에 따른 조명의 조절, 다양한 각도에서 배우의 디테일한 표정 및 연기 촬영 등 고려할 요소나 변수가 많았고, 현장에서 찍어가면서 구도와 조도 등을 구체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Q. 자문 및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나?
촬영 현장에서 어의 이형익을 연기하는 이남희 배우에게 자침 자세 및 각도와 깊이, 주요 혈자리의 위치와 취혈 방법 등을 알려줬다.
특히 인조가 어의 이형익에게 자주 맞았다는 번침의 경우 조선시대 일반적인 침법들과는 달라 인조실록에 보면 대사간 김광현이 평하기를 ‘괴이하다’고 했으며, 번침술의 방법에 대해 추정할 수 있는 간접 기록만 있을 뿐 자세한 시술방법에 대한 기록이 없어 관련 논문들과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침구의학과 양기영 교수님에게 자문을 구해 이를 토대로 촬영 현장 상황에 맞게 시술법을 자문할 수 있었다.
Q. 어의 이형익은 어떤 인물인가?
내의원에서 활약한 침의는 대개 지방의 의원으로, 침구술이 뛰어나다고 소문이 나면 중앙으로 불러올려 서용(敍用)된 경우가 많았다.
어의 이형익도 이런 경우로, 인조의 신임을 받고 후일 용인현령을 거쳐 김포군수에 제수되기까지 한 인물이다.
인조 10년 11월 대흥 사람인 이형익이 침술로 사기(邪氣)를 다스린다는 소문이 있어 내의원에서 그를 중앙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급료 지급을 요청했으나 인조는 당초 이에 대해 별로 신뢰하지 않아 거절했다.
하지만 인조의 이런 태도가 얼마 안가 바뀌었는데, 인조 11년 1월에 내의원에서 다시 번침술로 병을 고친다고 이름이 난 이형익을 서울에 머물러 치료를 할 것을 청하니 인조가 이를 허락했으며, 이후 그에게 침 시술받고는 죽기 직전까지 그를 절대적으로 신임했다.
인조시대 침의로 거론된 인물로는 허임(許任), 유달(楡達), 반충익(潘忠翼) 등이 있지만 그중 이형익의 활동이 단연 두드러졌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MBC 드라마 '연인'
Q. ‘번침(燔鍼)’은 어떤 침술인지?
번침에 대해 자세한 시술방법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기타 간접 기록들과 관련 문헌들을 참조하면 대략적인 시술 양상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문헌에 따라 번침(燔鍼)과 화침(火鍼), 온침(溫鍼)에 △뜸과 침을 사용하는가 △침체를 먼저 달구고 시술하는가 △시술을 먼저 하고 달구는가 △달구는 온도의 정도 등에 따라 분류하는 문헌도 있으며, 혼용해서 사용하는 문헌도 있다.
그러나 승정원일기 인조 25년 기록에서 침을 놓는 의원 외에 침을 달구는 화로를 담당하는 의관이 배속돼 있음을 미뤄본다면 침을 먼저 직접 달구고 시술하는 것은 화침(번침)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침은 이형익이 잡았고, 화로를 담당한 것은 김상성이라는 의원이었다. 다만 이번 드라마 제작진들은 제작 환경상 화로를 두고 달구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서 촬영 현장에서는 등잔불에 달구는 것으로 협의했다.
또한 시술 과정에서 유침(留鍼)을 하였는가에 대해서도 문헌에서 확인된 바는 없었으나 승정원일기 41책 인조 11년 10월 기록에 따르면 농이 생기면 번침의 한도라고 하나 이형익이 침을 놓았던 자리가 대부분 같은 혈자리를 수회 자침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침해도 농이 생기지 않아 인조가 무한히 맞아야 하는지 반문했다는 내용을 참고했다.
이러한 화침(火鍼)류의 경우 침을 혈위를 짧게 자극했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형태의 침 시술방법이 존재하고, 중국에서는 현재도 그러한 시술방법이 일부 쓰인다는 점을 참고해 자문했다.
또한 당시에는 현대보다 훨씬 굵은 침을 쓰고, 화로에 매우 뜨겁게 달궈 사용했는데 인조실록 49권, 인조 26년 8월2일 기록에 의하면 침을 맞을 때 옥체의 살갗에서 불에 타는 것 같은 소리가 창문 밖으로 들려왔다고 한다.
인조 11년 초기에는 이형익이 안면부에도 번침을 놓았었던 사례들을 살펴볼 때 유침은 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Q. 한의사 및 한의약의 대중매체 참여에 대한 견해는?
우리나라 전통의학으로 시작해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현대 한의약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 흐름에 따라 현대 과학기술과 접목해 진단과 치료 등 여러 영역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다만 이러한 진전이 가능한 것은 반대로 과거 수많은 한의약의 학술적·경험적 데이터들이 풍부하게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부는 한류열풍과 함께 OTT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K-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는 이 시기에 앞으로 K-콘텐츠의 한 축으로 K-Medicine(한의약)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 다양하게 노출됐으면 한다.
이를 통해 한의약과 그 발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한 전통의학으로서 그 안에서 숨겨져 있는 애민(愛民)과 중용(中庸)을 비롯한 다양한 철학적 가치들도 소개하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