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협, 제21회 중앙이사회(19일)
김태우 한의대 교수
경희대 기후-몸연구소 소장, 『몸이 기후다』 저자
불사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산사태가 밀려오듯 불사태가 들이닥친다. 산사태라면 밀려오는 흐름이 있겠지만, 이번 불사태는 그와 달랐다. 보통 산불도 타들어오는 흐름이 있지만, 이번 산불의 흐름은 단절적이었다. 강풍을 타고 산불은 간극을 넘어 밀어닥쳤다.
뉴스 영상이 전하는 폐쇄회로 화면은 다른 세계의 모습 같았다. 사람들이 대피한 집에 불씨들이 몰려온다. 바람을 타고 마당을 휘졌는다. 불씨라고 하기에는 덩어리가 크다. 본 적 없는, 불씨라고 할 수 없는 불덩어리들이 날아다닌다. SF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호러무비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불의 형태를 한, 갑자기 밀려오는 좀비 떼 같기도 하다. 불씨가 휘몰아치자 지붕에 불이 붙는다. 마당에 세워 놓은 차도 불탄다.
이번 영남 지방의 산불은, 전에 없던 규모와 그에 따른 피해로 충격을 주었다. 특히 경북지방의 피해가 심했다.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경상북도 도청소재지가 있는 안동이 위험에 처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에도 산불이 덮칠 판이었다. 강풍을 타고 급속하게 산불은 동진, 북진했다. 급격하게 번지는 불사태라고 해야 할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산불은 번져나갔다.
이번 산불은 인간이 제어하기 어려운 강력한 현상에 대해 보여준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산불의 진화는 더 늦어졌을 수도 있었다. 강풍이 불고 계속 번지는 산불을 걷잡을 수 없었다. 소방헬기가 쉴 새 없이 물을 실어 나르고, 가용한 모든 소방 인력이 총동원되었지만, 불사태를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산불을 멈춘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3월 27일 비가 내렸다. 양은 많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려 경북 산불이 잦아들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지만, 강우량은 적었다. 산불이 만연한 경북 지방에 특히 조금 내렸다. 그래도 그 비들은 재난을 멈출 수 있는 비였다. 진화를 가능하게 했다.
이번 산불의 진화를 가능하게 한 3월 27일의 비는 인간의 입지를 돌아보게 하는 비였다. 몰아치는 산불에 속수무책인 인간을 돌아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현재 기후변화의 가장 큰 문제는, 예측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예측을 할 수 있다면, 대비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기후위기는 대비할 기회를 놓쳐버리는 위기 이상의 상황이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던 산야에 전에 없던 기압배치의 흐름을 타고 강풍이 불자, 경험하지 못했던, 예측하지 못했던 산불이 휘몰아 쳤다. 조용했던 마을이 아비규환의 재난 현장이 된다. 멀리 가물가물 보이던 산불이 갑자기 앞마당으로 들이 닥친다. 믿을 수 없는 산불 뉴스에 사람들은 지도를 다시 확인한다. 벌써 영양군까지 번졌다고? 이미 영덕까지 갔다고? 삽시간에 육지 끝까지 번진 산불은 동해안까지 다달았다. 정박한 어선까지 태우고 동해안의 양식장에까지 피해를 입혔다. 양식장을 유영하던 도다리까지 느닷없이 산불 피해를 당하는 들어보지 못한 산불이었다.
이번 산불은 앞으로 닥칠 기후재앙의 예고편 같다. 그리고 자연의 일이 바로 우리의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산불은 멀리 인간의 영역과 떨어져서 불타다가, 다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꺼지는 산에만 있는 불이 아니다. LA 산불같이 바다 건너 다른 나라, 이국 도시의 이야기도 아니다. 지금 바로 여기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번 영남 지역의 대형 산불은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산불로 31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는 44명으로 총 인명피해는 75명이다. 주택 4천여 채가 불타고 사찰도 7곳이 불탔다. 축사까지 합치면 6천 곳이 넘는 시설물이 불탔다. 경북지역의 산불 피해지역이 4만 5천 헥타르에 이르면서 최대 피해 산불의 기록을 갈아 치웠다.
수치화되지 않은 피해
피해는 위에서 표기된 수치들 보다 더 극심했다. 서울 크기의 80%에 해당하는 면적이 불탄 와중에, 그 넓은 지역의 나무와 풀과 동물과 곤충들을 합치면 그 피해는 숫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거기에는 농작물도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도다리와 함께, 축사의 소와 돼지, 닭들도 있을 것이다. 인명피해도 중요하지만 이들 인간 아닌 존재들의 산불 피해를 생각하는 것도 인명 피해를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이것은 연결의 문제다. 인간과 비인간은 연결되어 있고, 비인간의 피해를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피해를 고려하는 것과 연결된다.
그 연결성을 무시한 것을 우리는 다시 받고 있다.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 “가이아의 복수”라고 말하는 일들이 이번에 일어났다1). 하지만 가이아의 복수는 여전히 가이아와 인간을 나누는 관점을 유지하는 것 같다. 인간이 가이아에 해를 가하고, 다시 가이아가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것 같은 구도가 “가이아의 복수”에는 있다. 하지만 가이아는 인간과 떨어질 수 없다. 가이아에 해를 가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 스스로에 해를 가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기후위기는, 복수라기 보다는 연결된 상태를 인지하지 못한 인간중심의 생각, 인간 외의 존재들을 인정하지 않는 생각의 구도가 만들어 낸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구분하고 위계화하고 자연의 영역을 인간의 영역을 위해 사용하는 자원화를 통해 구분한 선긋기가 재난의 방식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쓰고 남은 쓰레기를 버리는 공터로 자연을 생각하는, 또한 실천하는, 이분화의 구도가 폐해를 키웠다.
인간이 가이아와 연결되어 있는 만큼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속수무책의 산불이라고 하지만 그 산불에 인간이 기여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또한 앞으로의 산불에 대비하고 준비해나가야 할 일도 적지 않다. 그 중 하나는 이격된 연결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만물(萬物)과 본초(本草)
동아시아에서 자연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연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은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용어이지만, 현재 사용하는 번역어 자연의 의미인 인간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는 대상의 의미는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자연 개념이 없는 문화가 더 일반적이다. 근대적 자연 개념의 세계화를 통해 지금의 자연 개념이 전 지구화되었지만, 근대화가 진행되기 전 그러한 개념을 공유하지 않는 지역과 문화가 더 많았다.
동아시아의 만물(萬物) 개념은 이에 대한 예시이다. 만물에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생물, 무생물, 인간, 비인간, 그리고 공간을 차지하는 것과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된다. 비어있는 공간 자체도 만물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만물은, 공간을 차지하고, 시각으로 확인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어떤 리듬을 공유하는 존재들의 모임이다. 그것은 생명의 리듬인데, 그 리듬을 공유하므로 만물은 만 가지로 다양하지만, 그래도 서로 관계를 맺고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다.
동아시아의 본초 개념 또한 이러한 만물의 다양성과 관계성의 관점이 녹아 있는 존재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생명의 리듬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본초들은 인간들의 고통을 경감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생명의 리듬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인간은 본초의 효능을 알고, 그것을 자신들의 고통에 적용할 줄 알았다. 그러한 연결성으로 인간의 몸은 본초의 효능을 접수할 수 있는 준비된 존재이다.
리듬을 공유하므로 산불 이후에 한의학이 할 일도 있다. 이번 산불 재난 이후 이재민을 돕기 위한 한의계의 활동이 하나의 예시를 보여준다. 몸도 마음도 만물이 공유하는 리듬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산불을 직접 경험한 분들의 심신을 함께 돌볼 수 있는 가능성이 한의학 진료에 열려 있다. 기후변화의 상황 속에서 앞으로 있을 재난에 대해, 또한 이러한 연결의 이해를 바탕한 의료가 할 일이 적지 않다(다음 연재글 “기후위기와 본초의 위기”V에서 계속).
1) 가이아 이론을 주창한 러브록은 2006년에 『가이아의 복수』를 출판하여 (한국어 번역본은 2008년에 출간), 기후생태 문제의 경각심을 고취하고 이에 응대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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