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원 원장
대구광역시 비엠한방내과한의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방내과 전문의인 이제원 비엠한방내과한의원장으로부터 한의사가 전공하는 내과학에 대해 들어본다. 이 원장은 내과학이란 단순히 몸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질환의 내면을 탐구하는 분야이며, 한의학의 근간이 곧 내과학이라면서, 한방내과적으로 환자를 어떻게 진료할 것인가의 해답을 제시해 나갈 예정이다.
‘건강’이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함 또는 그런 상태를 의미한다.
즉, 의료인은 약을 끊임없이 처방함이나 검사, 시술 또는 수술함이 아니라, 국민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튼튼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이바지함을 사명으로 한다.
“4개월 전, 소화불량과 복통이 나타나 양방내과에서 위내시경, 복부초음파 검사를 하고 양약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며칠 전에 다시 위내시경을 하고 약을 처방받았어요. 하지만 역시 차도가 없고, 최근에는 설사까지 하고 있습니다.”
60대 여성 환자가 보호자의 부축을 받으며 내원했다. 보호자는 환자가 소화기 증상으로 식사를 거의 못 하고 있어 크게 걱정된다고 했다. 내원 시 환자의 체질량지수(BMI)는 18.4㎏/㎡로 최근 3개월 동안 체중이 약 3.5㎏ 줄어든 상태였다.
환자는 수면제를 복용 중이었다. 불면증은 내원 약 5년 전부터 있었는데 처음부터 양약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증상 초기, 환자는 한의의료기관에서 치료받았고, 증상 개선에 다소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원 2년 전부터는 한의 치료로 불면증이 개선되지 않아 양약을 처방받기 시작했다. 환자는 수면제가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약을 꼭 필요한 경우에만 복용했다. 그래서 실제 복용 횟수는 수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수면제로서 양약을 매일 복용하기 시작한 것은 내원 4개월 전부터였다. 환자는 양방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약 3개월간 매일 복용했다고 했다. 이는 소화불량과 복통 증상의 시점과 거의 일치했다.
양약으로도 수면의 질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양약을 먹으면 생각하지 않게는 되지만, 몸이 이완되어 온전한 잠을 잔다는 느낌이 아니라 누워만 있다 일어나는 느낌이라고 했으며, 양약을 먹고 난 후부터 생각하는 것이 싫고, 기억력도 크게 떨어졌다고 했다.
이에 내원 1개월 전부터 상급 의료기관으로 옮겨 진료 받았다. 대학병원에서는 수면제를 중단할 것을 권고하고, 약을 점진적으로 감량하여 중단하기까지 약 12개월의 치료 기간을 제시했다.
요약하면, 환자는 불면증으로 내원 4개월 전부터 수면제를 매일 복용하였지만, 수면의 질은 개선되지 않았다. 수면제를 복용하며 발생한 소화불량, 복통 등의 증상에 대해서 양방내과에서 검사하고 양약을 처방받아 복용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또한 3개월 복용했던 수면제는 약 1년에 걸친 점진적 감량을 권고받았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환자는 식도위십이지장 내시경(EGD), 복부초음파, 복부 전산화 단층촬영(abdomen CT) 검사에서 만성 표재성 위염, 1㎝ 크기의 간낭종 2개 외 특이 소견은 없는 상태였다(그림 1, 2). 진단의학적 검사에서도 WBC 3.6×103/㎕, RBC 3.89×106/㎕, Hb A1c 5.8 %, HBsAg Positive(2046.00 S/CO) 외 이상 소견은 없었다.
불면증 심각도 평가척도(ISI) 및 피츠버그 수면의 질 지수(PSQI)를 평가했다. 양약 복용 중이었으나, 불면증의 정도는 매우 심각했고 수면의 질은 많이 나빠져 있었다.
환자의 舌質은 榮•淡•紅, 舌苔는 白•厚•潤하였고, 脈象은 대체로 虛•細•弦•緊하였으며, 특히 寸脈이 浮했다.
하지만 환자의 건강을 위해 이들 결과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었다. 그것은 3개월밖에 복용하지 않았던 향정신성의약품을 1년에 걸쳐 감량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는지였다.
특히 환자는 B형 간염 보균자였고, 수면제 복용과 함께 발생한 소화기 증상으로 식사를 거의 못 하는 상태였다. 지금 상태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환자의 건강 및 예후는 안 좋아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에 한의학적 치료와 함께 감량 기간을 3개월로 줄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이러한 내용의 진료 의뢰서를 가지고 대학병원 진료 후 치료 계획에 동의했다.
치료 과정은 쉽지 않았다. 환자는 약물 감량에 따른 반동 현상으로 수면 상태 및 소화 기능의 악화, 체중 감량 등 많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때마다 歸脾湯 合 聰明湯, 半夏瀉心湯, 逍遙散, 半夏厚朴湯, 白虎湯, 香蘇散, 大和中飮, 眞武湯, 香砂平胃散 등을 4~5일 간격으로 처방하고 침구 치료를 시행했다.
결과적으로 환자는 2개월 만에 모든 향정신성의약품 복용을 중단했다. 양약 중단 2주가 지나자, 불면증 개선을 위한 한약 없이도 몇 시간이나마 잠을 잘 수 있게 됐고, 소화 기능도 조금씩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양약 중단 4주가 지나자, 명치를 찌르는 통증이 덜해지고, 식사량이 증가해 하루 3회 식사를 하게 됐다.
하지만 소화 기능이 정상적인 수준으로 회복하기까지는 약 1년 정도의 치료와 노력이 필요했다. 내원 후 약 2년이 지난 현재, 환자는 어떠한 약물 복용 없이도 스스로 잠을 5시간 잘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최근에는 가족의 간병을 위해 소란스러운 병실에서 잠을 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잠을 이룰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가 의료인의 사명에 충실하다 보면, 한의학을 통해 한 사람의 삶과 인생이 바뀌는 이 같은 순간을 함께 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이처럼 한의학, 한방내과학은 국민의 건강 및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