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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憲泳(1900-1988)의 醫學思想(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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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憲泳(1900-1988)의 醫學思想(6)

한의학과 의학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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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상 교수 경희대학교 원전학교실

의사로서 환자를 보살피고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기본 원칙은 한의사로서 누구나 지니고 있는 소양이라 생각한다. 단, 그러한 원칙에 얼마나 집중하여 실천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실제 양상은 달라질 것이다. 최근 들어 한의학에서도 의학윤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교육과정 속에서도 윤리 교육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趙憲泳은 1935년 10월 『新東亞』에 기고한 「漢方醫學의 危機를 앞두고」라는 글에서 몇 가지 한의학의 발전책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한의학 교육의 보급으로, 당시의 일반 학교에서 2~3년만이라도 한의학 교육을 시행함으로써 의술의 민중화를 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지금으로 보면 초중고 및 일반 대학의 교육에서 한의학에 대한 소개를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의학자를 양성하고 의서를 간행하자고 하였는데, 평범한 ‘의사’보다는 ‘연구자’가 되어서 자신의 학문을 정리하여 책으로 출간하게 되면 많은 의사들이 이를 바탕으로 공부하여 치료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趙憲泳은 儒醫 제도의 부활과 漢醫의 嚴選主義를 주장하였다. 이 부분이 바로 의학윤리와 관련이 있다.

  

한의사의 자격과 자질을 강화하는 嚴選主義 주장

우선 趙憲泳이 주장한 解放主義와 嚴選主義의 의미를 살펴보면, 한의학에 대한 문호를 개방하여 누구나 한의학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解放主義이다. 근현대 이후 의사의 신분을 규정함에 있어서, 국가가 제도적 관리를 통하여 배타적인 의료의 권한을 인정하는 즉, 라이센스를 부여하는 면허제도가 성립되었다. 

이전의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醫科 제도가 시행되었으나 관료에 해당하는 醫官을 선발하였을 뿐이다. 아마도 趙憲泳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자신이 생각하는 민중 사상에 입각하여 지나치게 배타적으로 일부의 한의사만이 한의학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는 것에 대하여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趙憲泳은 동시에 전문 한의사의 자격과 자질을 강화하는 嚴選主義도 주장하였다.  

직업적으로 한의약업에 종사할 사람에게는 인물적 전형과 학술적 고시를 시행하여 선발하자고 하였는데, 이 가운데 인물적 전형이란 지방 관청에 의뢰하여 해당자가 그 지역에서 어떠한 인물적 신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고토록 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사회 구조가 아직까지 지역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으므로 의사를 지원하는 인물이 의학을 연구하고 의술을 펼치기에 적합한 자인지를 그 사람이 살아온 지역 커뮤니티를 통하여 검증하려 한 것이다. 지금으로 보면 한의과대학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지원자의 경력, 자기소개서 등을 검토하고 면접을 통하여 인성을 평가하는 제도와 유사하다.   

그러면 趙憲泳이 생각한 한의사의 자질과 자격은 어떠한 것이었는가. 바로 儒醫를 모델로 하였는데, 여기서 儒醫는 유학 철학사상으로 무장된 의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趙憲泳은 같은 기고문에서 동양의 의학자는 전통적으로 民衆을 사랑하며 蒼生을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구하려는 사람이었다고 규정하고, 그 예시로서 伊尹, 張仲景, 張景岳, 李東垣, 朱丹溪 등의 의가들과 한국 역사 속의 柳成龍, 丁茶山, 중국 성리학자인 朱子, 그리고 현대사의 孫文 등을 거론하고 있다. 


양의학은 覇道的, 한의학은 誘導的이고 王道的 

의학의 종류를 王道와 覇道로써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당시 전 세계적으로 치열한 제국주의 경쟁 속에서 식민지의 비참한 현실을 겪고 있었던 상황을 감안한다면, 민중들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구제하려는 생각을 가진 趙憲泳으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趙憲泳은 한의학 자체가 민중의학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양의학이 强力的이고 覇道的인데 비하여 한의학은 誘導的이고 王道的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의학에는 文武王覇의 구분이 있어서 攻瀉法은 武斷的이고 覇道에 속하며, 補養法은 文化的이고 王道에 속하는데, 현대 문명이 물질적 번영을 숭상하여 재산적 이익과 권력의 위세를 탐하게 됨으로써 생존 경쟁이 극렬한 覇道的 시대를 맞이하였으므로 필연적으로 의학도 攻瀉法에 주력하게 된다고 보았다. 만약에 정신적 생활에 치중하고 청렴을 숭상하며 평화를 애호하는 王道的 시대가 된다면 의학도 필연적으로 補養法에 힘쓰게 된다는 것이다. 

攻瀉法을 쓰는 覇道的 의학에 대한 비판은 서양의학뿐만 아니라 일본 古方派에까지 이르렀는데, 趙憲泳은 당시 양의적 한의로 조직된 日本漢方醫學會에서 外感에만 쓰는 傷寒治法을 內傷雜病에도 일률적으로 써서 예를 들어, 폐결핵에 補養法을 쓰지 않고 麻黃, 半夏 등을 쓰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늘 인간과 사회 생각하며 한의사의 올바른 역할 고민

또한 趙憲泳은 현대 문명이 물질주의에 치우침으로 인하여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 가운데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지적하였는데, 물질문명이 동양에 수입된 이후로 생존경쟁이 극렬해졌으며 그 결과 민중들은 불안과 초조, 煩鬱 등으로 충만하여 병이 발생하였고, 이 병을 고치기 위하여 더욱 불안과 초조에 빠지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았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초조해진 환자들이 치료 행위만이라도 눈앞에 보이는 것을 쫓아가고 일시적으로 고통을 면하려고만 하여, 근본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정직한 의사에게는 환자가 가지 않고 거짓으로 치료를 약속하는 ‘얼치기’ 의사에게만 물밀 듯이 몰려드니, 이러한 시대 상황을 무시하고 자기 소신대로 견뎌나갈 의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하고 한탄을 한다. 

근본적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정신과 육체를 모두 건강하게 만드는 것을 의학의 목표로 삼았으며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돌파구로서 한의학을 선택한 것이다. 

의학윤리는 의사 개인이 단지 몇 가지 선서나 서약을 지키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주변 사회, 문화 등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어떠한 목표를 추구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자각이 선행되어야 한다. 趙憲泳은 1932년에 의료 계몽운동 단체인 朝鮮理療會를 결성하였고 한의계에 투신한 이후에도 많은 사회 활동을 해나갔다. 

그가 행했던 사회 활동이나 정치적 행보에 대하여 단순히 민족주의 노선 상에 있었다고만 평가하는 것은 부족하다. 전통적 애민 사상을 바탕으로 민중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궁극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만드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목표의 실현을 위하여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물론 모든 한의사들이 NGO 단체에 들어가 활동할 수는 없다. 그러나 늘 인간과 사회를 생각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한의사가 될 필요는 있다. 

근현대 한의계의 인물인 趙憲泳의 삶을 조명해 보면서, 以力假仁이 覇道요 以德行仁이 王道며, 永言配命이 自求多福이라는 구절과 같이 어떠한 한의사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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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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